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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21. 2020

오징어 볶음에서 느닷없이 훈제로

남은 것을 그냥 말리려 했을 뿐이고...

우리 집 식사 준비는 내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아내가 음식을 하고, 남편이 종종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우리는 그날그날의 상황에 따라서 누군가 더 마땅한 사람이 요리를 한다. 아니면 먹고 싶은 음식이 정해지면 그걸 더 잘하는 사람이 한다. 그러니까 결국 양식을 먹는 날에는 남편이 준비하고, 한식을 먹는 날에는 내가 한다. 


당번, 그런 거 없다.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결정된다. 내가 준비했으니 네가 상 치워, 이런 것도 없다. 그냥 할 수 있으면 늘 같이 하고, 또 누군가가 바쁘면 덜 바쁜 사람이 한다. 그게 진짜 공평함이라 생각되므로...


남편이 지난 이틀간 저녁을 준비했다. 스테이크에 익힌 야채를 곁들인 전형적인 양식이었고, 우리는 간만에 한식이 먹고 싶었다. 낮부터 뭘 먹을까를 생각하다가 그냥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원래 아침이나 점심때쯤 저녁거리를 생각하고 필요한 재료를 냉동실에서 내놓곤 하는데, 이번엔 냉동실에 있던 오징어를 먹으려고 했기에 꼭 미리 꺼낼 필요도 없었다.


세 개가 한 덩어리로 얼어있어서 한 개는 저녁 반찬하고 나머지는 말려서 나중에 구워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저녁식사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준비 돌입. 제일 먼저 오징어 꺼내서 찬 물로 해동 시작했다. 그리고 쌀 씻어서 앉히고, 같이 먹을 찬거리인 숙주 담아놓고, 냉동실의 명란도 꺼냈다. 김치를 제외하면 밑반찬은 거의 쓰는 일이 없어서 그때그때 해 먹는다. 가끔 나물이 남으면 두 번 정도 먹기도 한다.


오징어와 함께 볶을 야채는 물론 냉장고 안에 우연히 있는 것들이다. 오늘은 배추가 있으니 딱 좋다. 양배추를 쓰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배추 식감이 더 좋다. 배추, 당근, 양파, 파에다가 빨간 피망과 약간의 할라피뇨를 넣었다. 청양고추는 너무 맵고 아삭이 고추는 심심해서 나는 할라피뇨를 종종 애용한다. 한국에서라면 매운 고추를 써도 좋을 듯싶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마늘과 생강을 좀 다져두었다.


날이 아직 쌀쌀해서인지 오징어가 해동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손질은 그닥 어렵지 않다. 조물조물해서 내장 빼고, 눈 빼고, 입도 정리하고... 그냥 손질 편하게 다 분리했다. 원래 말리려면 한 마리 전체가 붙어있어야 근사하지만 그냥 편리하게 떼어버렸다. 사실은 딴생각하면서 손질해서 그만... 하하!

나는 오징어 껍질이 좋아서 안 벗기고 먹는다. 


볶을 것만 링 모양으로 썰고, 나머지는 넙적하게 잘라서 오븐 랙에 얹고, 그대로 오븐에 들어갔다. 건조기가 없어서 오븐 따뜻한 온도에 맞춰두면 뭐든 잘 마른다. 살짝 익기도 하는 지경이지만 별 상관은 없더라. 대략 70~80도 된다. 물론 밖에 널어놓고 말리면 좋겠지만, 우리 집에는 각종 야생동물들이 수시로 방문하므로 그리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한다. 까마귀와 청설모는 완전 단골이고, 족제비나 곰까지 출몰하므로 육류는 밖에 못 내놓는다. 심지어 소고기 뭇국도 족제비가 뒤집어엎기 때문이다.




밥이 끓기 시작하면서, 숙주나물부터 만들었다. 원래는 물 두 숟가락 넣고 냄비에 5분 정도 익히는데, 오늘은 그냥 끓는 물을 부어서 5분 정도 뒀다가 따라내고 무쳤다. 온기가 있는 게 좋아서 찬물로 헹구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맛도 빠진다. 파, 마늘, 소금으로 조물조물해주고, 참기름과 깨로 마무리.


밥이 뜸 들기 시작했으니 오늘의 주인공 오징어 볶음으로 들어간다. 야채는 프라이팬에 따로 볶고, 오징어는 바비큐 그릴에 구워서 불맛을 준 후 섞을 것이다.



먼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집에 있는 거위기름을 둘렀다. 그리고 마늘과 생강 다진 것을 넣어서 뜨겁게 휘리릭 볶아준다. 아차 하면 타버리므로 이 대목의 사진은 없다. 기름에 마늘 생강 맛이 돌면 바로 야채를 투하해서 뜨거운 불로 볶는다. 모든 요리는 뜨겁게 볶아서 그다음에 살짝 온도를 낮춰서 익혀주는 것이 식감을 살리고 더 맛있다. 처음부터 뭉근하게 진을 빼면 맛이 다 빠진다. 


야채가 살짝 숨이 죽을 무렵에 간을 해준다. 간장 한 숟가락과 멸치액젓 한 숟가락,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었다. 양념이 과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 사이 남편이 오징어를 바비큐 그릴에다가 살짝 익혀줬다. 


이제 오징어를 프라이팬에 투하하여 1분 정도만 함께 볶아주고, 참기름 깨를 뿌려서 휘리릭 섞어주고 불을 끈다. 이로서 오늘의 메인 완료.


가끔은 국물이 찐득한 고추장 오징어 볶음을 해서 소면이랑 곁들여 먹으면 맛있지만, 또 가끔은 이렇게 식감이 살아있는 방식으로 해도 좋다.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뭔가 살짝 엣지 있는 맛이 난다. 이 방식의 포인트는 어느 것도 무르게 익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오징어의 불맛을 얹으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이렇게 해서 숙주 무침과 명란젓, 나박김치에 깍두기를 얹으면 둘이 먹기에 푸짐하다. 국과 밑반찬을 충분히 깔아줘야 하는 한식 기준에는 상당히 미달되지만, 둘이서 남김없이 먹으려고 하면 이보다 많아지면 곤란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반찬을 싹싹 비우고, 이후에 홈메이드 초콜릿 젤라또로 디저트까지 잘 먹었다.


보통은 스토리가 여기서 끝나는데, 오늘은 이 이후에 다른 일이 벌어졌다. 바로, 오븐 안에서 말려지는 은은한 오징어 냄새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마른오징어를 사 먹으려면 상당히 비싸다. 2개 들어서 30불인가 했던 거 같다. 아무리 오징어 값이 비싸기로서니...! 그래서 지난번에 냉동 한치를 가지고 오븐에 살짝 말려서 구워 먹어 본 적이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 가정식 말린 오징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하면 덜 말린 오징어로 만들어서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1시간 말리고 뒤집어주는 과정. 촉촉한 기가 보인다.


그래서 남편이랑 오징어 말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걸 훈제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우리 집에는 훈제기가 있다. 남편은 연어도 훈제하고, 고기도 훈제해서 보관하고 두고두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익히면서 훈연하는 뜨거운 훈제 법도 있고, 차갑게 연기만 넣는 방법도 있는데, 어느 방법이 더 맛있을까 고민하다가, 차가운 방식을 해보자고 갑자기 발동이 걸렸다. 


앞뒤 각 한 시간씩 말린 오징어는 촉촉한 기가 제법 남아있는 완전 덜 말린 오징어였다. 다리 끝은 다 말랐지만 몸통은 어림없었다. 연기를 흡수할 여지가 여전히 있었다. 궁금증을 굳이 참고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지금 하자! 


내가 오징어를 실에 꿰어서 랙에 거는 동안 남편은 바깥으로 나가서 훈제기를 장착했다. 밖은 이미 어두워진 다음인데, 그까이꺼 상관없었다!



연기가 충분히 돌기 시작한 다음을 기준으로 해서 30분간 기계를 돌리고, 다시 30여분을 연기를 쏘이며 있도록 놔두었다. 자기 전에 들고 올라와보니, 음~ 냄새가 제법 배였다. 궁금증을 못 참고 가위로 아랫부분을 잘라서 먹어보며 낄낄 거리는 우리 부부는 정말 못 말리는 커플이다. 접시에 놓고 사진 찍어봤지만 보기엔 그냥 똑같다. 구워 먹어 보면 어찌 다를지 모르겠지만, 밤이 늦어서 그냥 자는 걸로!


잘라먹은 흔적과 더불어... 밤에 찍어서 사진이 엄청 후짐


덧붙이자면, 오늘 온수 탱크 고장 나서 샤워도 못하고 훈제 냄새 풍기며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는 사실! 아, 이 못 말리는 부부, 어쩌면 좋을까!




오징어 야채볶음

엉터리 레시피


재료:

오징어 1마리, 손질하여 링 모양으로 썰음

마늘 2쪽, 다짐

생강 엄지손톱만큼, 다짐

당근 1/3 토막, 적당히 납작하게 썰음

배추 한 줌, 나박김치처럼 썰음

쪽파 2개, 적당히 썰음

양파 1/2개, 채 썰음

빨간 피망, 고추 (옵션)

고춧가루 1큰술

간장 1큰술

멸치액젓 1큰술

소금 약간 (간 보고 결정)


만들기:

1. 팬을 달궈서 기름을 두르고 생강과 마늘을 먼저 30초 정도 볶음

2. 뜨거운 팬에 나머지 야채를 넣고 빠르게 볶음

3. 노릇하게 볶아지면 불을 줄이고 양념을 넣어서 다시 한번 섞어줌

4. 다른 팬이나 그릴에다가 오징어를 빠르게 볶아줌. 불맛을 줄 정도로만 익혀주면 됨.

5. 오징어를 야채 팬에 넣고 한 번 다시 섞어준 후, 간 보고 불을 끔

6. 참기름과 깨를 둘러 섞어주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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