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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30. 2020

전화위복 정전 스파게티 파티

그래서 더 로맨틱했던 저녁식사

우리 집에는 당번이 없다. 식사 당번도, 설거지 당번도... 누가 뭐를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밥은 아내가 해야 한다는 그런 기준은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거, 너는 저거... 이렇게 정해놓은 것도 없다. 오늘 내가 저녁을 했으면 설거지는 네가 해... 이러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고맙게도 남편이 나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한다. 


그는 깔끔한 사람이다. 나는 좀 덜렁덜렁하다. 내가 주방을 정리하고, 설거지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으면, 남편은 옆에서 싱크대를 깨끗하게 닦고,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한다. 내가 영어 수업 준비를 하느라 바쁘면, 어서 가서 일 하라고 밀어내고 자기가 다 해준다.


저녁식사는 그날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준비하는 사람이 달라진다. 한식을 먹는다면 내가 준비할 것이고, 양식을 먹는다면 남편이 준비한다. 이날 저녁은 양식이 당첨되었다. 저녁으로 뭘 먹고 싶냐고 하길래, 마침 냉장고에 다짐육이 있으니 볼로네제(Bolognese) 소스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밀가루를 못 먹지만, 우리 집에는 그에게 맞는 스파게티도 있다. 퀴노아 가루를 메인으로 해서 판매되는 스파게티 국수를 이용하면 상당히 그럴듯한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소고기 다짐육을 이용한 스파게티 만들기는 한국에서도 그리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 잘해 먹던 메뉴 중 하나였다. 남편의 레시피는 뭐가 다를까? 구경해보면, 우선 고기를 따로 볶는다. 적당히 달궈진 팬에 다짐육을 던져 넣는데, 손으로 적당량씩 뜯어서 던진다. 약간의 덩어리처럼 느껴지도록...  그렇게 해서 고기의 표면을 구워준다. 여기서, 육즙이 새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래서 너무 낮지 않은 온도로 구워야 한다. 겉면을 먼저 불로 지져주는 느낌이랄까? 영어로는 sear(지지다), brown(갈색이 돌게 하다) 한다고 말한다. 익어가면서 소금과 후추를 뿌려준다. 



고기가 다 되면 일단 고기를 건져내어 다른 용기에 담아두고 볼로네즈 스파게티 소스의 베이스인 미르푸아(mirepoix)를 만든다. 미르푸아란, 아주 잘게 깍둑 썰기한 야채들을 풍미가 나올 수 있도록 낮은 온도로 익혀주는 것을 말한다. 고기는 갈색이 되게 하였지만, 이 야채들은 색이 살아있도록 익힌다. 우리가 넣은 야채는, 3색 피망과 할라피뇨, 샐러리, 당근, 양파를 넣었고, 마늘도 조금 다져서 같이 넣었다. 냉장고에 있던 것들을 죄다 뒤져서 넣었다. 이 야채들은 고기를 꺼내고 기름이 남아있는 팬에 투하되어서 익히는데, 고기에 기름기가 부족했다면, 버터와 올리브유를 미리 추가해줘서 기름이 모자라지 않게 해주는 것이 좋다. 야채들이 투명한 느낌이 나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익힌다. 그리고 소금과 후추를 넣어 간을 한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 고기를 다시 넣어 저어준다. 그리고 토마토소스를 넣어준다. 시판되는 캔에 들은 토마토를 넣어주면 좋다. 우리 집에는 지난 늦가을 집에서 캐닝한 얼리걸(Early girl) 토마토가 있어서 두 캔을 넉넉히 넣어줬다. (당시에 농장에서 얼리걸 품종 토마토 80파운드, 즉 40킬로를 구매해서 보관했는데, 너무 바빠서 기록도 못 남겼다!) 농도가 너무 연하다면 시판되는 토마토 페이스트를 섞어 넣어서 농도를 맞춰준다. 이때, 말린 허브 종류도 넣어서 함께 섞어준다. 우리는 오레가노, 바질, 파슬리를 넣었다.




이렇게 소스가 완성되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정전이 되고 말았다! 이 밤중에 이렇게 불이 나갈 일이 없는데 이상하게 느껴졌다! 밖을 내다보니, 오른쪽 집은 불이 켜있고, 왼쪽 집부터는 전멸. 암흑이 펼쳐져있었다. 남편은 얼른 촛불을 가져왔고, 나는 일회용 가스버너를 꺼냈다. 자주 쓰는 물건은 아니지만 이럴 때는 정말 유용하구나!


핸드폰을 들어 페이스북의 지역 커뮤니티를 체크했다. 정전이라는 글들이 올라와있었지만, 왜 그런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다. BC Hydro (전기공사) 웹사이트를 찾아봤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고, 30분 정도 지나면 들어올 것이라고 쓰여있었다. 아무튼 원래 예고된 것이 아니었고, 보통은 금방 들어오는데, 밤에 이렇게 나간 것으로 봐서 뭔가 사고가 있었으며 쉽게 수습될 수 없으리라는 예감만 작동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정전이 참 흔했었고, 집집마다 비상용 초가 늘 구비되어있었다. 불이 나가면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모두 하나의 방에 모여서 초를 켜고는 그림자놀이를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불이 나갔다고 해서 무섭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이번 정전은 그러나 상당히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남편이 초를 넉넉히 챙겨 왔기 때문에, 그다지 어둡다고 느끼지 않고 저녁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고, 여기저기 비추이고 있는 불빛은 마치 준비되었던 행사인양 재미났다. 


남편은 일회용 가스버너에 물을 올리고 끓이기 시작하였고, 곁들일 샐러드를 준비했다. 샐러드 내용물은, 기본적인 야채들이었다. 상추, 토마토, 오이, 삼색 피망. 그리고 남편이 즐겨 만드는 앤초비 소스를 만들었다. 우리가 집에서 양념장을 만들 때 계량하지 않듯, 남편도 이 소스를 만들 때 계량하지 않는다. 물어봐도 웃기만 한다. 대략의 내용물은... 날계란, 앤초비 통조림, 파르미지아노 치즈, 소금과 후추, 레몬즙 정도이며,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진다.


국수가 어느 정도 익어가고 있었고, 남편은 국수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익은 정도를 체크했다. 이 뒤로는 과정샷이 없으므로, 말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국수를 살짝 덜 익힌 후, 나머지는 소스 안에 넣어서 프라이팬에서 익힌다. 한국식으로는 흔히 완성된 국수 위에 소스를 끼얹는 식으로 하는데 - 나도 예전에 그렇게 했었다 - 이렇게 하는 것이 소스가 국수에 더 잘 배어서 더 깊은 맛이 난다.



준비가 진행되면서 테이블을 세팅하고, 샐러드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위에 뿌릴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페퍼 플레이크도 준비했다. 분위기 너무 좋았다. 적당한 어둠 속에서 남편은 와인을, 나는 워터 케피어 음료를, 딸은 물을 놓고 건배를 했다. 어둠 속에서 요리를 마쳤지만, 파스타는 딱 적당하게 익었고, 위에 뿌린 치즈와 파슬리, 페퍼 플레이크가 아주 잘 어울렸다. 샐러드도 언제나처럼 신선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중간중간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 웹사이트를 확인하긴 했지만, 얼른 전기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바심이 일지는 않았다. 우리의 음식은 너무나 맛있었고, 분위기도 좋았으며, 상 위에서는 웃음꽃이 계속 피어났으니까. 전기가 들어온다는 시간은 계속 30분씩 연장되었고, 우리의 웃음도 계속 그렇게 연장되었다.


어차피 전기가 없으니 컴퓨터를 틀고 각자 놀 수도 없었고, 식기세척기를 돌릴 수도 없었다. 좋은 핑계가 있으니 그렇게 앉아서 한참을 놀았다. 냄비에 물을 끓여서 커피도 필터에 수동으로 내려서 마시고, 수다 떨다보니 다시 출출해지는 듯 해서 살사칩도 먹고...


결국 잠자리에 들 때까지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정전의 원인은 찾지 못한 듯했다. 걱정되는 것이라면, 밤새 이렇게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냉장고들이 걱정이었고, 특히 냉동고에 있는 최근에 새로 사 온 소고기 반마리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또한 겨울이 시작되었으므로 온도가 너무 떨어져서 집안이 추워질지 모르겠다는 것도 걱정 중 하나였다. 


남편은 아래 위층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것이 직접 침실까지 영향을 주진 못하더라도, 집안의 기본 온기를 유지시켜주리라. 딸도, 우리 부부도 촛불을 하나씩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에는 할로윈 때 사용했던 꼬마 배터리 촛불을 3개씩 켜 놓았다. 



자기 직전에 전기공사 웹사이트에 다시 확인한 바로는 여전히 30분 후에 연결될 거라 나왔지만, 우리는 그렇게 잠들었고, 전기는 새벽 3시에 들어왔다. 


아침에 깨보니, 치우지 않고 잠든 부엌과 이 예쁜 촛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촛대는 남편의 증조부님이 소유하셨던 물건으로 영국 죠지안(Georgian) 스타일이고, 바다를 건너와 이렇게 대를 물려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coal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석탄이라고 생각하기엔 무척 단단하고 묵직하다. 하나는 살짝 망가졌고, 나머지 하나는 완전히 부서졌는데 할아버님이 고치겠다고 하시다가 결국 그렇게 미완으로 남아있던 것을 남편이 다 수선해서 붙이는 데 성공했다고... 그래서 크랙이 보인다.



예기치 못했던 정전으로 오히려 근사한 저녁을 보낸 생각을 하며, 나는 그렇게 미소를 머금고 촛대를 바라보았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 굴곡도 필요하고 크랙도 필요하고, 사건도 필요한 듯!



* 정량 계량이 아니어서 레시피를 쓸까 말까 살짝 고민하였으나, 어차피 스파게티는 집집마다 요리하는 방법이 있을 테니, 팁을 전한다는 의미로 기록을 남겨본다. 




볼로네제 스파게티

(6인분 가량)


재료:

소고기 다짐육 450g

버터 또는 올리브유 약간

3색 피망 합쳐서 2개 정도 분량

할라피뇨 2개

샐러리 1대

당근 1개 

양파 1개

마늘 1쪽, 다져서

홀 토마토 캔 1리터가량

토마토 페이스트 작은 캔 하나

말린 오레가노

말린 파슬리

말린 바질

소금, 후추

스파게티

생 파슬리 - 다져서 준비

파르미지아노 치즈 - 갈아서 준비

페퍼 플레이크


만들기:

1. 팬을 예열한 후, 다짐육을 조각조각 던져 넣어 그슬리듯 익힌다. 육즙이 새어 나오지 않되 태우지 않고 브라운 한다는 기분으로 익혀준다. 마지막에 소금 후추 간 한다


2. 야채는 아주 잘게 다지듯 깍둑썰기 한다. 


3. 고기가 다 익으면 다른 팬에 건져두고, 거기서 나온 기름으로 야채를 볶아준다. 기름이 부족한 듯하면 올리브유나 버터를 추가해서 부드럽게 익혀준다. 

태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투명한 느낌이 돌 때까지, 색이 살아있도록 익힌다. 소금 후추 간 한다.


4. 이제 다시 고기를 넣어 섞어주고, 캔 토마토를 넣어준다.  묽으면 토마토 페이스트를 두 숟가락 정도 넣어준다. 드라이 파슬리와 오레가노 등 취향에 맞는 허브도 넣어준다. 


5. 뭉근히 끓여주면서 풍미와 원하는 농도가 되게 만들면 소스 완성 (팔팔 끓이지 말 것)


6. 별도의 큰 냄비에 스파게티 국수를 삶아준다. 삶는 시간은 스파게티 봉지에 쓰여있는 시간을 참고하되, 추천 시간보다 2분 정도 덜 삶아준다.


7. 별도의 팬에 그날 사용할 분량만큼의 소스를 넣고 살짝 끓기 시작하면 국수를 함께 넣어 볶아준다. 


8. 그리고 버터 1큰술과 간 파르미지아노 치즈 1큰술을 넣어서 섞어서 풍미가 안으로 스미게 해 준다.


9. 접시에 담고, 위에 파르미지아노 치즈와 다진 파슬리를 얹어서 먹는다. 취향에 따라 페퍼 플레이크를 위에 뿌리면 매콤하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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