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서 수고가 반, 함께 먹어서 맛이 두 배.
얼마 전 허둥지둥 김장을 마쳤다. 사실 10월 말부터 하고 싶었지만, 자가격리도 있었고, 끝나고 나서도 밀린 일들 때문에 자꾸만 자꾸만 김장이 미뤄지면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막내아들 생일 선물 주러 간다는 날이 정해지면서 내 마음이 더 바빠졌다.
원래 생일 저녁식사를 모여서 하기로 했었으나, 딸아이가 한국에서 오면서 자가격리기간이 겹쳐서 미뤄지고, 그다음에는 코비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가족모임조차 금지가 되고,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래서 결국은 아들 생일선물을 주러 아들네 집에 가기로 한 것이다.
남편의 큰 딸과 막내아들은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인가 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시저 칵테일에 넣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김치를 하면, 늘 아이들 몫까지 해서 조금씩 나눠주곤 했는데, 이번에 김장을 해서 넉넉히 나눠줘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토요일 저녁때 재료를 사다가 밤부터 절여서 그다음 날 하려고 했는데, 토요일에 다른 일이 많아지면서 결국 장을 못 봤다. 그래서 보통은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는데, 그날은 침대에 누워있어도 마음은 한인마트에 가 있었기에 결국 그렇게 일어나서 장을 보러 갔다.
여기 캐나다 와서 살면서 보니,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김치를 더 많이 먹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이제 딸까지 오니 확실히 음식 먹는 양이 늘어났다. 김치도 그렇다. 더구나 김치가 집에 있으면 찌개도 끓이고, 만두도 하고, 찜도 하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만들어놓은 김치가 정말 똑 떨어져서, 얼마 전에 급한 대로 조그만 통을 하나 샀더니 어찌나 맛이 없던지! 흑! 한국처럼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 않아서 사 먹는 김치는 정말 꽝이다. 부대찌개랑 청국장, 만두 하느라 할 수 없이 구매하였더니, 남편이 장난으로 놀린다. 한국 사람이 어찌 김치를 살 수 있느냐며! 옆에서 딸아이가 거든다. 이것은 먹는 용으로 구매한 김치가 아니고, 요리 재료로 구입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쿠킹 와인 같은 것이니, 그냥은 못 먹는다고! 하하!
그래서 일요일, 피곤한 남편을 끌고 허둥지둥 나가서 결국은 배추 한 박스, 무 한 박스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갓도 조금 사고, 파도 듬뿍 사고, 양파랑, 배랑, 달랑달랑하던 국산 고춧가루까지 사서 들어와서는 만사 제쳐두고 배추 먼저 절였다. 배추가 절여져야 김치를 하는데, 이제야 시작해서 오늘 밤에 김장하겠나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일은 벌어졌다.
배추를 손질해서 어그적거리면서 가르고 있으니, 딸아이와 남편이 옆에서 덤벼들었다. 내가 혼자 하던 것이랑은 차원이 다르게 진도가 나갔다. 그렇게 해서 다듬어서 절인 배추가 18개였던가? 세어보다가 허둥지둥 하나를 건져냈다. 나박김치 담가야지!
그래서 무 하나 썰고, 배랑, 생강이랑, 마늘, 양파... 등등 넣어서 나박김치를 후다닥 만들었다. 떨어지면 안 되는 김치 중 하나인데, 한참을 안 해 먹었구나!
점심은, 전날 저녁에 먹고 남아있던 훈제연어로 샌드위치를 해서 든든히 먹었다. 그러고 나서 김치통을 사러 나갔다. 김치를 이렇게 많이 담근 적이 없기 때문에 김치통이 모자랐다. 한국에 두고 온 락앤락 유리 김치통이 아쉬웠지만 여기서는 그런 것은 안 팔고, 그냥 플라스틱 김치통으로 타협을 했다. 나간 김에 굴도 한 통 사 왔다. 김치를 할 때 시원한 굴이 있어야지! 한인 마트에서 파는 냉동굴을 아쉬운 대로 사 왔었는데, 마침 중국 마트에서 신선한 굴을 세일 중이었다. 생강도 유기농을 팔길래 하나 집어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손질할 때 떼어놓은 배추 겉대를 손질해서 삶았다. 팔팔 끓는 물에 소금 한 숟가락 넣고, 손질한 배추 겉대 투하! 1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단물 다 빠진다. 숨 죽은 것 같으면 건져서 찬물에 씻어주고, 널어서 물기 어느 정도 뺀 다음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소분, 냉동 보관하면, 배추 된장국으로 먹기 요긴하다. 배추가 질기면 껍질을 벗겨야 하지만, 우리 배추는 상당히 순했다. 사실 우거지 만들기 아까운 수준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배추 된장국을 좋아하므로 꿋꿋하게 우거지 완성. 말려서 시래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번거로우니까 패스!
그러고 나서는 깍두기를 시작했다. 사실 배추 한 박스는 괜찮았지만, 무 한 박스는 좀 많았기에 뭔가를 해서 소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깍두기도 해 놓으면 든든하지 않겠는가! 준비를 시작했더니 남편이 옆에서 무를 썰어줬다. 김치 할 때 남편 없이는 못 한다. 정말 손도 빠르고, 요리 감각도 좋다. 마늘 필요하다니까 다 까주고, 파도 썰고, 생강은 옆에서 딸내미가 까고... 그렇게 해서 깍두기도 후다닥 해결했다. 그리고 병에 차곡차곡 담아서 나눔 준비 완료.
남은 무는 손질 해서 하나씩 비닐봉지에 따로 담았다. 무 줄기 부분을 잘라서 밀봉해야 오래 먹을 수 있다. 잎이 남아있으면 그곳에서 싹이 올라오려 해서 심이 생기며 속이 빈다. 정리하고 남은 조각들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얼려두었다가 육수 낼 때 하나씩 사용하면 좋다. 그래서 우거지와 함께 냉동실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계속 배추가 절여졌는지 기웃거리면서 뒤적여줬다. 두 개의 통을 채웠던 배추는 줄어들어서 결국 하나의 통으로 다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 참 있다가 10시 넘어서야 배추를 씻어서 널기 시작했다. 상태를 봐가면 잘 절여진 것들부터 먼저 씻었다. 배추 씻는 데에만도 시간이 한 참 걸린다. 배추 속으로 은근 흙이 많다. 그래도 배추가 맛있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미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는데, 많이 뻣뻣하지 않고 속대가 노랗게 맛있어 보였다.
배추를 널어서 물을 빼는 동안 속을 준비했다. 절임물이 다 빠지지 않으면 김치 망하는데, 시간이 11시를 넘어가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사실에 후회가 물결처럼 일어났다. 이거 언제 다 하고 잘 수 있을까? 남편은 출근해야 하는데, 내 옆에서 무채를 썰고 있었다. 배추 서너 포기 할 때에는 손으로 채를 썰었지만 이번엔 채칼을 사용했다. 고춧가루를 버무려놓고, 양념을 섞어서 믹서기에 돌렸다. 맛있으라고 새우 머리와 멸치 등등을 넣은 육수를 좀 넣었는데, 무에서 생각보다 물이 많이 빠져서 양념이 좀 질게 된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시간은 자꾸 가고,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기에, 배추의 물이 빠지길 기다리다가 결국은 나중에 급한 마음에 손으로 슬슬 훑어 내리고, 물이 빠진 배추부터 골라서 속을 넣기 시작했다.
내가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속을 버무리고 넣는 모습이 재미있다며 남편은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밤늦게까지 이러고 있는 게 안쓰러운 듯 계속 도울 것을 찾으며 함께 있는 그에게 미안했다. 이제 속만 넣으면 되니 먼저 가서 자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네!"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가 사용한 물건들의 뒷정리와 설거지를 해주면서 끝까지 남아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2시에 드디어 김장을 마칠 수 있었다. 속이 모자랄 듯 아슬아슬하여, 머릿속으로 양을 열심히 계산하며 만들었고, 마지막 남은 배추 두 덩어리는 쭉쭉 찢어서 남은 속에 넣고 깨와 참기름 버무려 겉절이까지 완성했다.
이렇게 김장을 마치며, 남편은 내게 또다시 감동을 선사했다. 늘 내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한결같이 해줄 수가 있을까! 혹여라도 내가 미안해하고 마음 불편할까봐 끝까지 웃으며 함께 해준 남편. 농담하고, 장난하면서 뒤처리 다 해주고, 절대 생색낼 줄 모르는 사람. 어떠한 집안 일도 아내 혼자의 몫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 함께 해서 고맙고 소중하다. 잠자리에 들어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했더니, 자기도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나오니 통에 담긴 김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큰 통에다 했더니 김치가 한없이 들어가서, 애게! 요것밖에 안 되나? 싶기도 했지만, 들려고 하니 엄청나게 무거웠다. 12리터, 10리터, 8리터 통을 꽉꽉 눌러 채웠으니 그럴 수밖에. 좀 서늘한 아래층으로 옮겨다 놓고, 이틀 후에 냉장고로 들어갔다. 처음엔 괜찮아 보였는데, 조마조마했던 것이 결과로 드러나서, 결국 일주일 후, 냉장고 안에서 익으면서 국물이 넘쳤다! 흑! 그래서 좀 덜어내고...
김치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겉절이를 굴과 함께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 김치를 하면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제대로 나올까? 게다가 이번엔 워낙 급행으로 하는 바람에 시간을 넉넉히 잡지 못해서 더욱 불안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서 꺼내보니 잘 된 듯하다. 딸도 맛있다고 하고, 남편도 최고 맛있다고 엄지손 척 들어줬다. 나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둥지둥하면서 남몰래 걱정했던 마음이 씻은 듯 내려갔다.
배달하기로 했던 날, 막내아들은 여자 친구 집에 가서 저녁을 보내기로 했기에, 첫 배달은 깍두기만 먼저 한 병 여자 친구네 집으로 가져다줬다. 그러고 계속 갈 기회를 못 잡다가 거의 두 주일 다 되어서 엊그제 남편의 큰 딸네 집에 가면서 8리터 한 통을 배달했다. 넉넉한 김치통을 보면서 환호를 지르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다 먹으면 또 얘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김치밥 와플을 만들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하하! 색다른 메뉴인데 맛있어 보이네!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그러나 와플기가 없으므로 패스!
어제는 이웃집 소닐라에게도 조금 나눠줬더니, 냄새부터 맛있다며, 마당에서 딴 모과를 가져왔다. 덕분에 좀 썰어서 말리고 모과청도 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치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문자가 왔다. 김치 레시피라니 이 복잡한 것을 어찌 설명을 한단 말인가! 그냥 다음에 만들 때 함께 만들자고 했다. 콩 수프를 만들어 먹는데 김치를 넣었더니 너무 맛있었다며, 시간이 지나도 아삭할 수 있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김치는 다른 발효식품들과 달리, 오랫동안 아삭하구나. 아마 적절히 절인 후 씻어서 물을 빼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네 삶의 행복의 비결이 무엇일까? 서로 품고,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겠지, 남편이 늘 내게 보여주는 것처럼, 재지 않고, 손익을 따지지 않고, 되돌려 받으려 들지 않고, 그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도, 실제로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 줄은 몰랐었다. 생색 없는 삶... 내가 꿈꾸던 삶이 현실이 되다니!
노동이 힘들다 느껴지지 않을만큼 행복한 김장이었다.
이번엔 레시피 새로 쓰기는 생략하고 링크만 겁니다.
* 실패 없는 너무 쉬운 나박김치 레시피는 여기!
* 두 가지 깍두기 레시피는 여기!
* 김장 김치와 똑같은 포기김치 레시피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