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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03. 2020

김치 만들고, 나눠 먹고...

한국에서도 안 하던 짓을!

한국 살 때 난 배추김치 안 하는 주부였다. 식구들이 별로 많이 먹지도 않고, 어차피 시댁에서 김장할 때 가서 일 하면 조금 얻어온 것으로 겨울을 날 수 있었으며, 집에 김치냉장고 없었고, 조그만 거 한 봉지만 사도 두 달씩 먹었기 때문에 김치 재료 사는 게 오히려 낭비다 싶었다. 그리고 한주먹의 음식을 하자고 이틀씩 애를 쓰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원래 애국자가 된다나? 음, 잘 모르겠다만, 안 하던 짓을 하는 것은 맞다. 20년 전 3년간 미국에 살 때에도 김치를 만들려고 했었는데, 한국 배추보다 훨씬 더 뻣뻣했던 서양 배추가 제대로 절여지지 않아서 그때 그 김치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정 떨어져서 김치는 나와는 더욱 멀어졌던 거 같다. 배추김치를 하지 않아도 깍두기나 나박김치 등등으로 쉽게 대신할 수 있었기에 번거로운 배추 절이기 따위는 머리에서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러나 캐나다 와서 새로 결혼해서 살다 보니, 남편이 한국음식을 무척 좋아하는 것이다. 처음에 시작했던 나박김치부터 시작해서, 깍두기, 무채 김치, 심지어 퓨전인 비트 김치까지 해놓는 족족 완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신들린 사람처럼 새로운 한식을 그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된장찌개, 청국장에서 김치찌개까지 도달하자 나는 드디어 김치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캐나다에 있는 마트에서 사다 먹는 김치는 한국에서만큼 다양하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취향의 김치를 구입할 수 없음도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리하여 지난 늦가을, 남들이 한국에서 김장에 열을 올릴 때 나는 겨우 배추 2포기 반을 가지고 김치를 시도했다. 기억을 더듬어 배추를 절이고, 쓰라린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절임 시간이 아니라 배추의 상태를 수시로 살폈고, 마침 한국에서 놀러 온 살림 9단 친구 덕분에 더욱더 신속하게 배추김치를 성공했다. (그래서 애피타이저로 굴 먹으면서 김치 겉절이 곁들이는 호사를 누렸다!)



김치 많이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김치의 세계는 오묘해서 할 때마다 맛이 다르다. 그때그때의 재료 상태에 따라서 차이가 많이 나고,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기 쉽다. 물론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김치에는 공식 레시피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그래도 내게는 친정어머니가 전수해주신 나름의 지침이 있었으니 다시 들춰보면서 포인트를 잡는데 도움을 잡았다. 사실 김치를 그간 담가먹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주부생활을 한 덕에, 음식 할 때에는 어떤 것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 정도는 이미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겁 없이 김치를 하게 되었으리라.


아무튼 그 김치는 완전 성공이었고, 우리 집에서 사랑받는 메뉴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때 남편의 아이들이 와서 캐나다 국민 칵테일인 시저를 만들 때에도, 냉장고에 있던 김치가 발탁되어 칵테일 재료로 들어갔다. 심지어 사위와 딸은 김치를 손으로 집어먹으며 맛있다는 비명을 지르기에 이르렀으니 이렇게 흐뭇할 데가! 결국 크리스마스 파티 후 돌아갈 때, 나는 큰 딸 아리아나에게 김치를 챙겨주는 친정엄마 노릇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렇게 김치를 좋아하는지 알았으니 다음에 김치를 하면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됐다.


연말에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딸아이에게 갈 때에도 김치를 조금 가져갔는데, 평소에 김치를 그다지 반기지 않던 아이가, 엄마 김치는 진짜 맛있다며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리니 이쯤에서 엄마의 사명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딸아이가 그렇게 좋아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집밥이다 보니 달지 않고, 조미료도 안 들어서 개운한 것이 그 포인트였던 거 같다. 한식당 많은 엘에이에서 김치를 못 살리는 없지만, 먹는 김치마다 너무 달아서 진정한 김치의 맛을 잊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냉장고에 김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 김치를 만들었다. 이번엔 양을 키워서 4포기. 내가 팔 걷어붙이고 김치 만드는 것을 본 남편도 열심히 도왔다. 무채는 다 남편이 썰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버무리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연신 사진을 찍더니 김치 완성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것을 본 남편의 막내아들과 맏딸이 "저요!" 하는 이모티콘을 코멘트로 달았다. 난 그게 왜 그렇게 귀엽던지! 남편더러 얼른 애들 갖다 주자고 정말 할머니같이 굴었다. 


원래 작은 김치통을 하나 가져갈 생각이었으나, 생각해보니 저렇게 손을 번쩍 들 정도면 더 많이 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더러 문자를 다시 해보라고 했다. 얼마나 원하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가능한 한 많이"였다. 하하! 그러더니, 그러니까 보통 2L 정도짜리를 사 먹는다고... 그래서 결국은 1 갤론짜리(4리터) 유리병 큰 거 하나 가져다줬다. 동생과 나눠먹으라고. 


음식의 가장 큰 기쁨은 먹을 때가 맞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 때 그 기쁨이 참 크고, 또 그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기쁨이 상승한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때 더욱 즐겁다.




남들에게는 다들 쉬운 김치 만들기 겠지만, 나는 좀 더 잘 기억에 남기려고 나름의 방법을 적어본다. 그리고 살림 초보자들이 이 글을 보고 쉽게 김치를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배추는 반 정도 칼집을 낸 다음, 양손으로 잡아서 어그적거리며 두쪽으로 찢고, 다시 한번 갈라준다. 이 대목에서 다 가르지 않고 반 정도 남기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속시원히 갈라서 편히 작업했다. 그리고, 갈라내고 난 후에, 김치 뿌리 쪽 끝 부분을 사진처럼 도려낸다.


레시피로 굳이 말하자면 물:소금 비율이 10:1 이라지만, 대략 6:1까지도 괜찮다. 적당히 굵은소금을 녹인 후에, 배추를 엎어서 푹 적셔준다. 한 1분 정도씩 적신 후 꺼내서, 굵은 줄기 쪽에 굵은소금을 사이사이 뿌려주면 빨리 절여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추가 덜 절여져서 뻣뻣하면 나중에 제대로 익지 않고 썩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치 만들기의 포인트는 배추 절이기이다. 요새는 한국에서는 절인 배추도 많이 파니까 이 부분이 어렵다면 차라리 절여놓은 배추를 사서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배추를 통 같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나중에 남은 물을 뿌려준다. 전체가 다 물에 잠기지 않으므로 중간중간 위치를 바꿔줘야 한다. 도합 10시간 정도 절여야하는데, 이렇게 해놓고 자려면, 두꺼운 부분이 밑으로 가게 해서 소금물에 담기게 하면 좋다. 새벽에 일어나서 바꿔주고 조금 더 절이면 된다.



배추가 숨이 죽어 잘 절여지면 깨끗한 물로 속속들이 잘 씻는다. 배추를 펼쳐보면 접힌 부분 안쪽에 시커멓게 흙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안쪽까지 정성껏 씻는다. 그리고 물이 빠지게 잘 세워둔다. 물이 빠지는 동안 김치 속을 준비하면 된다.


무채는 결 방향을 살려서 써는 것이 좋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무채에 다 해당된다. 보통 대파를 큼직하게 썰기도 하는데 나는 잘게 써는 것이 좋아서 잘게 썰었다. 그리고 고추를 먼저 버무려서 무에 물을 들이면 좋다. 


찹쌀풀을 쑤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냥 찬밥을 육수에 갈아줘도 된다. 남은 파뿌리와 무 뿌리 쪽을 넣고 멸치 다시물을 끓여서 식혔다가 밥이랑 함께 갈아줬다. 이때 마늘, 생강을 먼저 갈아주고, 양파와 배도 함께 갈아주면서 밥을 넣으면 더 좋다. 멸치 액젓도 이때 함께 넣어서 갈아주면 부드럽게 잘 갈린다. 청갓이나 생밤 같은 것들이 있으면 같이 넣어주면 좋다. 발효를 위해서라며 설탕을 넣기도 하지만, 이미 배와 양파, 그리고 밥에 있는 당분이면 충분하므로 나는 설탕은 넣지 않는다.


원래 맨손으로 요리하는 남편이 나를 위해 김장용 고무장갑을 내밀었다. 자기가 먼저 다 버무린 후, 내가 작업하기 좋게 적당한 통을 준비해줬다. 역시 나는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하는 게 딱 체질이다. 배추 켜켜 속 넣기는 사진이 없으나 누구나 곁눈질로 봐서 잘 알듯싶다.  그래서 갤런 사이즈의 유리병 두 개 채우고, 조금 남아서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 하나 채웠다. 난 한국에서 커다란 글라스락 김치통을 썼었는데, 여기는 그렇게 큰 유리 용기는 팔지 않는다. 그래서 저 병으로 타협을 했는데,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름 김치 보관은 의외로 잘 되더라. 



이 사진에서 유리병 하나는 엊그제 생일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이미 딸네 집에 배달되고 없음. 아래는 만들기 요약법이니 필요한 분들은 활용하시길...





배추김치


재료 :

절임용 소금 6~10컵

배추 3~4통 

무 2~3개

고춧가루 2~3컵

쪽파 한 줌 (10개쯤)

청갓 한 줌

마늘 1컵 분량 (4통)

생강 반 컵 분량

양파 2개

배 작은 거 1개

밥 3숟가락

멸치액젓 1컵

멸치 다시마 육수 1/2 컵

새우젓 1컵

깨, 잣, 밤 - 있으면 적당히


절이기 :

1. 소금 400g + 물 4리터 정도 섞어서 절임물을 만든다.

2. 배추는 뿌리 쪽 칼집을 깊숙이 낸 후, 양 손으로 어그적거리며 만져서 배추를 반으로 찢는다.

   세로로 한 번 더 칼집을 내주어 반만 가르거나, 아예 한 번 더 갈라서 4등분을 하면 편하다. 

   뿌리 쪽 남은 부분을 얇게 잘라낸다. (삼각형)

3. 준비된 배추를 절임물에 하나씩 엎는다. 

    한 1분 정도 담갔다가 꺼내서, 줄기 부분 쪽에 소금을 켜켜 뿌려준다. 

    그리고 바깥쪽에도 대략 바른 후, 절일 통에 담는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간다.

4. 켜켜 쌓은 후, 남은 물을 붓는다. 3시간마다 위아래 자리를 바꿔가며 절인다.

    잘 안 절여지는 것 같으면 소금을 더 뿌려줘도 된다.

5. 10~12시간 정도 절여준다. 김치 만들기의 반은 절이기에 있다.

6. 뻣뻣한 기운이 가실 때까지 절여준 후, 잎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문지르며 켜켜 깨끗이 씻는다.

   사이에 은근 흙 같은 것들이 있다.  채반에 얹어 물을 뺀다.


김치속 만들기 :

1. 물이 빠지는 동안 김치속을 만든다.

2. 무는 결 방향대로 채를 썬다. 

3. 쪽파와 청갓은 성큼성큼 썬다.

4. 먼저 무채에 고춧가루를 버무려서 색을 내준다.

5. 믹서기에 마늘과 생강과 양파를 넣고 먼저 갈아준다. 

6. 밥과 배, 멸치액젓을 넣고 같이 다시 갈아준다. 육수는 농도를 봐 가며 넣는다.

7. 양념을 무채에 붓고, 새우젓도 한 컵 넣고 간을 본다. 간은 짭짤해야 익으면서 싱거워진다.

8. 쪽파, 청갓, 깨, 잣, 밤 등등을 넣고 버무리면 속재료 완성


김치 완성 :

1. 김치속과 배추의 분량을 대충 가늠해서 비율을 맞춘다. 속이 모자란 듯하면 약간 야박하게 남으면 듬뿍

2. 배추 켜켜로 속을 넣은 후, 잘 감싸서 통에 차곡차곡 담는다.

   넣으면서 김치 뿌리 쪽에 소금을 조금씩 얹어준다. 

   익을 때까지 하루 이틀 정도 실내에 뒀다가 냉장고에 넣는다.

3. 남은 배추 조각들과 마지막 배추 조금은 남은 속과 참기름, 깨 버무려서 겉절이로 먹으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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