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에 들려오던 그 맛
상투과자는 어린 시절 우리 집의 고급 과자였다. 제과점에서 파는 과자. 우리 삼 남매는 이 과자를 낙하산 과자라고 불렀다. 이것이 아버지의 손에 들려서 들어오는 날이면 우리는 며칠 동안 아껴 아껴 먹었다.
그때가 몇 살 때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몹시 화가 나 계셨고, 당시에 윗집에 살던 이모가 나를 쿡쿡 찌르시고, 눈을 껌뻑거리며, 빨리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빌라고 시키셨다.
그런데 나는 도통 뭘 잘못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는 거였다. 그런 상황에서 왜 빌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억울하기만 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입을 꼭 다물고 버텼다. 사실 나는 굉장히 순종적인 맏딸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나가니 어머니도 당황하셨을 듯싶다. 결국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신 어머니는 날더라 나가라고 하셨고, 나는 그렇게 집 밖으로 쫓겨났다.
여름 초저녁,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도는 하늘을 보며, 나는 원피스 잠옷을 입은 채 쭈그리고 대문 앞에 앉아있었다. 별로 속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뿐.
그러고 얼마 동안 앉아있었던가? 저만치서 아버지가 오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그리고는 왜 나와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몰라요, 엄마가 나가래요."라고 대답했고, 아버지는 그저 "어서 들어가자."라고 하고 나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아버지의 손에는
나는 의기양양하게 따라 들어갔다. 어머니도 아무 말씀 안 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 낙하산 과자를 맛있게 먹으며 흐뭇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어머니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이 사건, 나는 가끔 아직도 궁금하다. 어머니는 왜 화가 나셨을까? 왜 내가 뭘 잘못한 거였는지 말씀해주지 않으셨을까? 그저 삼 남매 키우느라 힘든 순간이었을까? 그랬을 확률이 제일 높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 오해가 발생하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서로 설명하며 푸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추억의 과자는 내게 이제 예전만큼 맛있지 않다. 나는 더 이상 달다구리를 먹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추억은 여전히 나를 감상에 젖게 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막연한 동경 속의 과자랄까? 그러던 차에...
며칠 전 모임에 갔는데, 친한 언니가 군고구마를 건네줬다. 내가 캐나다인 남편이랑 사니까 이런 것은 잘 못 챙길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언니의 점심을 챙기며 내 것을 함께 챙겨주서 고맙게 받아왔다. 그리고 당장 먹을 새가 없이 냉장고에서 이삼일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그것으로 상투과자를 만들어보자 싶었다. 고구마 냄새가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에 해물파전을 만들면서 일부러 노른자는 빼놓고 흰자만 사용했다. 그리고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고 만들기도 쉬웠다. 사실 정확한 계량도 하지 않았다. 계량이 무의미한 이유는 고구마의 질은 정도에 따라서 반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레시피를 적으려면 대략의 측정을 해봐야겠어서 무게를 쟀더니 288g이 나왔다. 익은 고구마 무게다. 그중에 껍질을 벗기고, 양 끝에 굳은 부분을 떼어냈다. 고구마가 워낙 부드러워 그냥 사용했지만, 심지가 있는 경우에는 잘게 잘라서 작업하면 더 쉬울 것이다. 큰 볼에 담은 후, 핸드 믹서로 꾹꾹 눌러서 일단 으깨줬다. 그리고 생크림을 넣어서 핸드믹서로 부드럽게 치대 줬다. 그다음에 달걀까지 넣어서 완전히 부드럽게 한 후, 아몬드 가루를 가지고 농도를 조절했다.
그런데 반죽이 예상보다 묽게 되었던 듯. 짤주머니에 팁을 끼워서 짰는데, 모양이 예쁘게 안 나와서 좀 섭섭했다. 그래서 레시피 적을 때에는 아몬드 가루를 한 숟가락 더 추가했다. 반죽은 약간 되직한 것이 모양도 예쁘게 나오고 굽는 시간도 줄어든다. 이 과자는 약간 팍팍해야 하는데, 내것은 너무 촉촉하게 나왔다. 다음번에는 좀 나을 듯.
짤주머니에 넣고 사용한 팁은 윌튼 4B 였다. 잘 보이게 사진을 찍을 걸... 톱니 같은 주름이 많고, 앞이 살짝 열린 큰 깍지이다. 상투과자용 팁이라고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상투과자는 전혀 부풀지 않기 때문에 간격을 벌릴 필요가 없다. 최대한 바짝 붙여서 많은 양을 한꺼번에 구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부풀지 않아서 실패라든가 그런 염려가 없으니 맘껏 편하게 치대 주면 좋다.
추가적 팁이라면, 짤 때 팁을 직각으로 세운 후, 너무 바닥에 붙이지 말고, 살짝 위쪽으로 공간을 띄워서 짜기 시작하면 도톰한 모양이 잘 잡힌다. 반죽이 너무 질어서 위에게 길게 나와서 상투 꼭지가 좀 탔는데, 손끝으로 살짝 눌러주거나 물을 살짝 묻혀주면 덜 탄다.
오븐은 180도로 예열했고, 처음에 15분 구웠다가, 5분씩 세 번을 추가했다. 이것도 반죽의 질기에 따라서 달라지므로 각자의 상태를 열어보고 결정하면 된다. 덜 구워져서 탈이 날만한 재료는 없기 때문에 잘 굳는지, 겉이 노릇하게 되는지만 관찰하면 된다. 완성!
어느 정도 식힌 후에 떼어서 식힘망에 얹어서 마저 식혔다. 식어야 완전히 굳는다. 고구마가 워낙 달아서, 달다구리 하나도 안 넣었는데도 맛있기만 했다. 아, 흐뭇. 맛은 군고구마 맛이다. 사실 다른 게 거의 들어가지 않았으니 당연하지. 좀 더 풍미를 내고자 하면, 생강이나 계핏가루를 섞어주면 더 고급진 맛이 날 거 같다. 며칠 뒤에 한식 상차림 할 건데, 디저트는 이걸로 낙찰이다!
50개 정도 분량
재료:
익힌 고구마 250g
생크림 60ml (또는 코코넛 밀크)
소금 한 꼬집
바닐라 1/2 티스푼
달걀노른자 1개
아몬드가루 3큰술
생강가루, 계핏가루 (색다른 맛을 위한 옵션)
카카오 가루, 백년초 가루 (색을 위한 옵션)
만들기:
1. 고구마는 삶거나 찌거나 굽거나... 해서 껍질을 벗긴다.
2. 큰 볼에 담고, 핸드믹서로 꾹꾹 눌러 으깨준다.
3. 생크림을 넣고 핸드믹서를 돌려서 부드럽게 해 준다.
(핸드믹서가 없으면 그냥 손으로 으깨도 된다. 믹서가 편하고 부드럽게 된다)
4. 소금, 바닐라와 달걀노른자도 넣고 다시 섞어준다.
5. 이제 아몬드 가루 3큰술을 넣고 섞어준다.
옵션용 가루도 원하면 이때 같이 넣어준다 좋다.
다만 농도에 주의한다. 너무 질면 가루를 더, 되면 생크림을 더 넣어 농도를 맞춘다.
6. 반죽은 약간 되직하되, 짤주머니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면 좋다.
반죽이 질면 예쁘게 짜지지 않고, 잘 구워지지도 않는다.
반죽이 너무 되면 짜는데 힘들다.
7. 오븐을 200°C (390°F)에 예열하고 짤주머니에 상투과자용 팁을 끼워 예쁘게 짜준다.
부풀지 않으므로 바짝바짝 진열한다.
8. 예열된 오븐에 넣고, 온도를 180°C (350°F)로 낮춰준다.
15분쯤 굽고 나서 상태를 살피며, 노릇해지는지 관찰한다.
5분씩 추가하며 원하는 상태가 나오도록 굽는다.
9. 다 구워지면 꺼내서 잠시 식혔다가, 식힘망에 얹어서 마저 굳힌다.
* 고구마가 맛이 없는 경우, 자일리톨이나 에리스톨을 취향에 따라 첨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