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25. 2021

새해를 한국식으로 맞이하기...

화려했던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고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의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딸과 나는 크리스마스도 중요하지만 늘 송년의 밤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같이 앉아서 지난 1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새해는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행사였다. 


내가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 딸이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겨울 방학 때 시간이 애매해져 오지 못하고, 곧장 교환학생을 하던 로마로 갔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딸은 연말을 미국 내 남동생네 집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외삼촌 댁에서 편히 지내고 시해 일출까지 보러 바닷가를 가기도 했지만, 연말의 소중한 시간을 떨어져 보내는 일이 서로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되었고,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어도 연말은 꼭 함께 보내자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올해는 이렇게 그 약속을 다시 지키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건이 된다면 한 잔 함께 하면서 기분을 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송년의 밤은 막걸리와 함께 보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또한 이왕 준비를 하는 김에, 새해 첫날 식사는 한식으로 설날처럼 먹자 하였다. 물론 한국의 설날 명절은 음력으로 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래도 공휴일도 아니고, 기분을 내기는 쉽지 않을 테니 웬만한 것은 양력으로 일단 하고 보기로 했다. 그때 또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정하자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일단 막걸리를 제일 먼저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번 막걸리는 찹쌀로 했지만, 이번에는 사다 놓은 찹쌀이 없어서 일반 쌀로 했다. 하지만 해본 가락이 있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익히 지켜본 터라 어렵지 않게 준비하여 무사히 잘 발효시켰다.


그리고는 수정과를 만들었다. 작년에도 만들었을 때 남편이 좋아했던 터라 이번엔 더욱 넉넉하게 만들었다. 계피 생강 따로 끓이고, 무설탕으로 하는 대신, 단감 하나와 대추를 좀 넣었다. 그에 걸맞은 간식도 필요하겠다 싶어서, 한국적인 것을 무얼 할까 하다가, 어릴 때 좋아했던 깨강정을 만들었다. 마침 구입해놓은 검정깨도 있어서, 두 가지 깨를 한꺼번에 작업했다. 이것 만큼은 무설탕으로 맛을 낼 수 없을 테니, 마음 비우고 조청과 설탕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떡국도 끓이겠지만, 그래도 고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엘에이 갈비를 쟀다. 절대 실패 없는 메뉴다. 나물을 뭘 할까 했는데, 한인마트에 오랜만에 도라지가 있어서 냉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녹두도 불려서 녹두전 재료도 만들었다. 동그랑땡을 할까 하다가 좀 더 맛있으라고 깻잎전으로 돌아섰고, 그렇게 나름의 새해 준비를 부지런히 하였다. 한국 음식들은 시작 전에 잔손질이 많이 가는데, 또 그러다 보면 어느새 후다닥 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송년의 밤에는 새해 음식 할 것 중에서 몇 가지 약간 당겨서 먼저 먹었다.



막걸리를 먹으려면 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지난번엔 해물파전과 김치전을 먹었는데, 오늘은 명절 전야이니 좀 더 정성이 들어간 녹두전을 부쳤다. 자그마한 사이즈로 두장 부치고, 깻잎전도 부쳤는데, 그러고 나니 뭔가 칼칼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후다닥 오징어 볶음을 해서 얹었다. 


그렇게 우리의 송년 파티가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밥그릇에 막걸리를 부었지만, 오늘은 와인잔에다가 마시기로 했다. 가끔 분위기를 바꿔주는 것도 좋다. 그래서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며, 디캔터에 담긴 막걸리를 어느 새 다 비웠다. 



그러고 나서 평소 같으면 막걸리를 더 마실까 했겠지만, 송년의 밤이고, 곧 있으면 자정이 넘어 새해가 될 테니 남편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샴페인을 가져와 따랐다. 아무래도 거품이 있는 샴페인이 송년의 순간에는 더 근사하지 않겠는가!


진주 사진은 밝은 날 찍은 것임. 당시에는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사진은 생략!


그리고 남편이 내게 내민 것은 작은 상자였다. 작년에 흑진주 목걸이를 선물하더니, 올해는 그것과 세트가 될 수 있는 진주 귀걸이를 준비하였다. 사실 그는 송년 선물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결혼 기념 선물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결혼하던 날, 웨딩드레스에 하라고 흰 진주 목걸이 세트를 선물했던 남편은 이렇게 매년 작은 진주를 선물한다. 


그는 정말 로맨티스트다. 진주를 선물하는 이유는, "당신에게 진주가 정말 잘 어울려서..." 라니 이보다 더 가슴 설레게 만드는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이렇게 여전히 매일 나를 가슴 설레게 만든다.


꾸밈없이 서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편한 제야의 밤을 맞았다


그리고 우리는 아래층 서재로 내려갔다. 서재 벽난로가 켜져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 아늑한 기분이 들고 좋다. 딸과 내가 이 집에서 처음으로 송년을 보냈던 2년 전에도 우리는 여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것을 추억하기에 딱 여기가 좋은 장소였다. 


지난 한 해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힘든 한 해였고, 우리에게도 그랬다. 딸은 갑자기 미국을 떠나게 되었고, 혼자서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가족은 여기에 있었으니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남편은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수술도 했고, 연말에는 예기치 못했던 사고도 겪었다. 나도 심리적으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그 덕에 많은 시간을 마당에서 보냈고, 새로운 것들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했고, 밖에서 터지는 불꽃놀이 소리를 들었다. Happy New Year!



새해 아침도 크리스마스처럼 늦잠을 잤다. 전날 과음한 영향이니 당연하리라. 딸은 술을 섞어 마셔서 다음날 술병이 났고, 그래서 우리는 점심으로 떡국을 간단히 끓여서 먹었다. 


한식은 아침에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아침상을 거하게 차리지만, 서양식은 모든 만찬은 저녁식사이다. 아침에 큰 상을 받는 것은 익숙치 않은 사람글에겐 힘겨운 일이 리라! 그리고 온 식구가 다 밤도깨비인 우리는 저녁식사에 집중하는 것이 모두 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찬은 저녁으로 맞춰졌다.



사실 떡국에는 반찬이랄 것이 필요하지 않다. 떡국 안에는 고기도 있고, 버섯도 있고, 달걀도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김치만 있으면 되지 않는가? 그래도 신년 첫 식사이니 좀 서운하니까 급히 호박전고구마전을 부치고, 가지나물시금치나물도 조금씩 담았다. 


식사를 끝내고 나서는 우아하게 수정과 깨강정을 먹었다. 그것도 남편이 아끼는 조지안(Georgian) 스타일 티세트에 담아서 먹으니 럭셔리한 기분이 들었다. 단, 깨강정을 먹고 나면 이 사이에 엄청나게 껴서 함부로 웃을 수 없으니 꼭 그렇게 우아한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점심을 치우고는 금방 저녁식사 준비로 돌입했다. 신년 첫 만찬 메뉴에 꼭 넣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구절판이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이 우아한 안주는 손이 많이 가는 대신, 그만큼 상을 가득 채우게 근사해 보이고, 맛 또한 모든 재료의 풍미가 살아있어서, 명절 때면 꼭 하고 싶은 품목이다. 하지만 선뜻 엄두가 안나는 품목이기도 하다. 일일이 재료를 따로 채 썰어서 볶는 것도 일이지만, 가운데 쌓아놓는 밀전병을 부치는 것이야말로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난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게 움직였다. 한쪽에서는 야채를 볶고, 다른 한쪽에서는 녹두전을 부치고... 한국에서 제사 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모든 것들을 미리 해놓고 아침상에 내지만, 사실 먹기 전에 바로 해야 맛이 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모든 음식은 다 저녁시간에 맞춰서 만들고 있었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느라 혼이 쏙 빠졌다.



남편은 밖에 있는 바비큐 그릴에서 엘에이 갈비를 구웠고, 내가 호박전 부치는 것도 도왔다. 그러면서 뭘 이렇게 많이 하느냐고, 다 어찌 먹겠느냐고 물었다. 하긴, 우린 세 식구인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구색은 다 갖추고 싶었는데, 결국 시간이 모자라서 뭇국은 끓이지 못했다. 하지만, 국까지 끓였다가는 반찬을 하나도 못 먹을 거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전도 딱 먹을 만큼만 부쳤다. 상을 꽉 채우면 손이 안 닿을 테니 나물도 조금씩 작은데 담았다.


맹물을 선택한 딸을 위해, 물에 오이를 띄워 상큼함을 제공해주는 센스있는 남편


상을 차리고 나니 왜 이렇게 단출해 보이는지! 내가 아쉬워했더니 남편이 어이없어했다. 우리 이거 다 먹으려면 두 시간은 걸리겠다고... 사실 깜빡 잊고 녹두전 부친 것을 상에 안 올렸는데, 다 먹을 때까지 몰랐고, 물론 음식은 모자라지 않았다.



나는 이 구절판이 왜 그렇게 좋은지! 귀찮아서 무쌈에다 먹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이 구절판은 밀전병에 싸 먹어야 제맛이다. 물론 우리 집에서는 밀가루를 쓸 수 없으니 대용 가루를 썼는데, 전혀 나무랄 데 없이 결과가 나왔다. 요것 저것 얹어서 초간장 살짝 끼얹어 먹으면, 한 입안에 기쁨이 가득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과일과 깨강정까지 해서 신년 첫 만찬을 잘 먹었다. 그리고 물론 그 남은 것으로 며칠 후의 생일이 될 때까지 계속 잘 먹었다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




신년 스토리는 이 대목에서 레시피를 약속하며 끝내야 깔끔하겠지만, 덤으로 그다음 날 있었던 결혼기념일 식사를 덧붙이고자 한다. 이 날은 우리가 법적으로 결혼 서약을 한 날이었고, 결혼식은 반년 후 여름철에 하였다. 그래도 자식들 다 놓고 제대로 했던 서약이었기에 기념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 스테이크 디너를 했다. 연달아 음식을 워낙 잘 먹어놓은 터라 뭔가를 또 잔뜩 차리는 것은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기에, 샐러드와 스테이크로 남편이 준비했다. 그리고 식전에 마티니를 한 잔 하는 남편. 이 날은 특별히 이 크리스털 잔에 마신다. 


남편이 워낙 좋아하는 절판된 크리스털 잔인데, 마티니 잔이 없어서 내가 작년 생일 때 선물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아낀다고 한 번도 안 마시다가, 이렇게 기분 내서 꺼내 주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간단한 선물을 교환했다. 그것은, 매년 팔찌에 끼우는 작은 참(charm)을 주는 것이다. 선물이 넘치는 시기에 더 복잡한 선물보다는 매년 기념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원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를 연결해 준 딸을 위해서 우리는 부부의 은팔찌 이외에 가죽 팔찌를 하나씩 만들어서, 거기에 우리의 이니셜이 새겨진 참을 끼워서 셋이 나눠가졌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의리를 다짐하며 건배를!


멋진 새해를 만들어보자! 많이 사랑하고, 많이 나누고!

매거진의 이전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크리스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