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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26. 2021

전염성 있는 따뜻함으로

넉넉히 나누고, 많이 사랑하면서...

참으로 생각이 많았던 주말이었다. 밀린 신년 포스팅까지 마치면 레시피를 열심히 올리려고 마음먹었지만, 오늘 한 번 더 일기를 먼저 써야겠다. 


새해는 내게 어떤 한 해가 될까, 아니 어떤 한 해로 만들까 생각이 많은 요즘이었다.


코로나로 돌아가는 세상사를 보면 울적하고, 속상하고, 또 화도 난다. 이 일을 정말 이렇게밖에 관리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방에 실직자들이 넘쳐나고, 가게의 물건들은 적게는 50%, 많게는 두배 이상 뛰어올랐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고, 많이들 화가 나 있다.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을 열심히 신고하고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나는 원래 상벌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먼저 사람이기를 원하고, 먼저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다. 공생하는 삶을 위해서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희생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느낄 때 선함으로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 주제가 내 앞에 주어지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무거워진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남편이 전부터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던 분이 있었다. 자식들을 키우느라 힘든 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었다. 선뜻 집을 내주고, 선뜻 보증을 서주고,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그분의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분 덕분에 남편은 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또한 그래서 남편도 더욱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기 쉬웠으리라 생각된다. 힘든 순간에 많은 이들이 선뜻 손길을 내밀어주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 보러 나갔다가 주차장에서 소식을 들었는데, 남편의 가슴속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슬픔과 그리움과 감사와 회환과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로 뭉쳐서 남편을 덮어버렸다. 아름다운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는 마음이 그중에서 가장 컸으리라 생각된다. 남편의 눈물을 보면서 내 마음속도 복잡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남편을 안고 위로해주는 것뿐이었는데, 그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아름다운 마음을 나도 전파하고 싶다는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을 위해서 의미가 있고 나 스스로도 위로될 수 있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딱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우리는 그들의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쉽사리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지 못한다. 나도 힘겹던 시절들이 있었고, 그들의 잣대로 나를 재단하는 모습에 힘들었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내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충고 역시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가 영어 공부를 돕는 그룹이 있다. 선생님이라고, 내가 가르치는 거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내가 돕는다고 하는 편이 맞는다. 어차피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같이 하기로 한 사람들 중에서, 신청만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사실은 대부분 각자의 사정이 있다. 아프기도 하고,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방법이 생소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책이 어렵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 사정을 내게 내세워 이야기하자니 미안하고 쑥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는데, 정작 나에게 연결하기는 여전히 힘든 것 같다. 사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기에 나는 더 열심히 설득한다. 


무엇이든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혼자만 고민하지 마시고...

그러다 보면 마음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다. 이메일이 잘 안된다던지, 내용이 어려워서 따라가기 힘들다던지... 그러면 나도 함께 고민해주고 새로운 방법을 찾도록 노력한다. 며칠 전에는 잠시 통화해도 되겠냐고 하면서 전화가 왔다. 카톡을 통한 내 말에 울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별거 아닌 말이고, 그다지 어려운 말도 아닌데 왜 이런 말에 감동을 할까? 그 이유는, 사실 우리 모두는 바로 이런 말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인간다움을 전해받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기때문이리라.


남편은 학교에서 일한다. 며칠 전, 교사 지침 중에, "학생이 오면 반가이 인사한다."라는 항목이 있다며 어이없어했다. 그게 항목에 있어야 할 내용인가 말이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이것은 정말 당연한 일인데 어쩌다가 이것이 항목에 들어가야 했을까? 남편이 맡는 아이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는 아이들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연은 셀 수 없이 많고, 대부분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상처 받은 아이들은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서 대부분 잘 자리를 잡는다. 그 이유가 뭘까? 바로 인간적인 대우이다. 문제아로 몰리고 낙인찍히고 의심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던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사랑이라고 해서 마구 애정 표현을 하면서 우쭈쭈 해준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주고,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조건을 달고 사랑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인간애이다. 어찌 보면 사람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작은 것에 감동한다. 어떤 힘든 순간에 던져진 작은 희망 같은 것이 불씨가 되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한 우리 부부는 잠자리에 들어서 영화를 봤다. 딸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프로젝터로 두 번째 본 영화다. 노블리(Where the heart is)라는 제목의 아주 오래된 영화이다. 2000년에 만들어졌으니 20년이 넘었구나. 주인공 노블리는 어렸을 때 엄마한테 버림받은 17살 소녀인데, 임신한 상태에서 남자 친구에게 버림받고, 갈 곳이 없어서 월마트에서 아기를 낳는다. 너무나 비참한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따뜻한 손길을 열어주는 이들이었다. 저울질하지 않고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함,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늘 믿고 살아왔지만, 다시금 그 이야기가 가슴에 쿵 하고 다가왔다. 


“Then tell them we've all got meanness in us... But tell them we have some good in us too. And the only thing worth living for is the good. That's why we've got to make sure we pass it on.”


"그러면 아이들에게 말해줘, 우리는 모두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얘기도 해줘. 우리는 모두 선함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해주는 단 하나는 바로 선함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이 선함을 계속 전달하고 물려줘야 한다고 말이야. "




선하게,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자는 것이 나의 모토인데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등바등할 때가 있다. 아마 평생을 넉넉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몸에 밴 습관인지도 모른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열심히 주판알을 굴리며 애를 쓰기도 하는데, 나는 원래 셈이 약해서 그래 봐야 크게 이익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토요일 오전에 큰 마음먹고 나가서 퀼트 천을 사 왔다. 선물할 곳이 생겨서 작은 퀼트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천을 거의 가져오지 않아서 새로 사지 않고는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다. 소싯적에는 그게 반 직업이다 보니 남부럽지 않게 천을 쌓아놓고 바느질했던 나였지만, 이곳 캐나다에선 천이 너무 비싸서 사려고 할 때면 심장이 쫄아드는 기분이 드는데, 아무리 애를 쓰고 중고시장을 기웃거리고, 온라인샵들을 뒤져도 원하는 원단을 저렴한 가격에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결국 패브릭 샵에 가서 천을 사면서 가격 대비로 좋은 것으로 고른다고 했는데, 커팅하는 아가씨가, 그 품목은 그 가격이 아니라고 말을 했다. "아, 어떡하지?" 순간 다시 심장이 쪼그라들면서 골라놓은 원단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저렴한 쪽에 놓여있는 원단들은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남편이 옆에서 말해줬다. "내가 보기에 이 천들이 예쁜데... 선물할 거잖아." 그래, 맞다. 내가 쓸 게 아니고, 선물할 거지! 나는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천을 구입했다. 함께 사용할 뒷감과 솜도 구매했다. 받고 좋아할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자 기분이 환해졌다.


집에 들어왔는데 남편이 동네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다가 "누가 천을 무료로 준대"라는 게 아닌가. 얼른 덧글을 달았더니 메시지가 왔다. 천 사진을 보여주면서 다 가져가라고 하였다. 내가 원하는 퀼트 천도 약간 있었지만, 융과 폴라플리스도 함께 섞여있었다. 다 내게 유용한 종류는 아니지만, 어떤 종류의 천이든 선뜻 나눠주는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는 어떻게든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다. 누군가 사용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나눔 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어제는 한국이 아니어서 구하기 힘든 도라지와 더덕의 씨를 나눔 해준다는 분이 있어서 40분 거리를 다녀왔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씨앗이었다. 아마도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넉넉히 준비해주신 모양이었다. 혹시 들깨 씨도 필요하면 가져가라며 함께 주시는데, 정성껏 챙겨주신 마음에 감동이 일었다. 



노블리의 말처럼, 세상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아웅다웅하고, 원망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하고 그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서 또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나도 그 톱니바퀴 안에서 굴러가며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어딘가의 자기소개 게시판에 내 장래 희망이 산타 할머니였던 것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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