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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22. 2021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크리스마스

풍요로웠던 크리스마스 선물과 음식들, 이게 바로 서양 명절!

늦잠을 잤다. 집안에 어린애가 있으면 일찍 일어나서 선물을 풀자고 졸랐겠지만, 우리 집에는 어린이가 없었다. 선물에 들떠서 잠을 설칠 사람은 없었다. 그간 준비를 하느라 고단했고,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늦도록 마지막 장식에 힘을 기울였으니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느지막이 눈을 뜨니, 남편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속삭였다. 깨서도 벌떡 일어나지 않고 계속 침대에서 게으름을 떨었다. 11시쯤 되어서야 비로소 일어났고, 남편도 아이도 커피를 손에 들고 거실로 모였다.


아침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시간이었지만, 어두운 밴쿠버 지역은 이 시간까지도 아침이었다. 밤늦게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가 화사하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트리 밑에는 선물들이 한가득 있었고, 그리고 우리의 크리스마스 양말에도 선물이 들어있었다. 아니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커피를 들고 각자 자기의 자리에 앉았다. 남편은 늘 앉는 검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고, 딸은 흔들의자가 자기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앞쪽의 소파에 앉아서, 우리에게 주어진 산타의 선물들을 먼저 풀기 시작했다. 일 년간 짬짬이 모아서 준비된 우리의 크리스마스 양말은, 큰 상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자리가 모자라 넘쳐나고 있었다.



원래는 이 양말에 담아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택도 없지 않겠나? 양말 사진을 잘 보면, 양말의 맨 겉에 지팡이 사탕이 놓여있다. 산타의 첫 번째 선물인 것이다. 단것을 입에 물고, 선물을 풀어보라는 뜻이다.


그렇게 양말의 맨 겉에는 지팡이 사탕이, 맨 안쪽에는 오렌지가 들어가는 것이 기본 규칙이다. 다른 집은 모르겠다. 우리 집은 그렇다. 전통이란다. 겨울철에 구하기 힘들었던 귀한 과일 오렌지는 아이들이 선물을 다 펼친 후에 먹는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양말의 선물들은 따로 포장하지 않는다. 누가 줬는지도 모르는 것이 정석이다. 정말 자질구레한 것부터 뜻밖의 큰 수확까지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다. 


전부터 빵 봉지 등을 임시 막음 하는 용도의 빨래집게가 모자란다고 투덜대던 딸내미의 양말에는 달러 스토어에서 파는 빨래집게가 들어있었다. 이런 소소한 신경 씀을 발견할 때 웃음이 터진다.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라고 울 양말도 들어있었고, 평소에 일회용 냅킨이 너무 크다고 반을 잘라서 쓰는 모습을 기억한 산타가, 작은 칵테일 사이즈의 냅킨도 넣어두었다. 책과 퍼즐, 고양이 그림이 있는 티셔츠 등등이 나왔다. 


욕조 목욕을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목욕용품이 다양하게 들어있곤 한다. 배쓰밤과 목욕용 티, 와인 마개, 그리고 재미난 글이 쓰여있는 부엌 타월 같은 것들이 있었다. 또한 글루텐프리의 간식들도 여러 가지로 들어있었다. 부엉이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는 부엉이 소금 후추통이 있었다. 너무 귀여웠다. 버터 담는 트레이가 늘 마음에 안 들어했더니, 버터 트레이가 두 개나 있었고, 그리고 가든용품과 가든 관련 책들이 있었다. 또한 우리 셋 모두를 위해서 큼직한 냉면기와 홍합 전용 냄비가 각각 들어있어서 엄청나게 웃었다. 산타는 우리가 품위 있게 잘 먹기를 바라나 보다.


이런 실생활용품들은 평소에 갖고 싶어도 막상 사게 되지 않는 것들인데, 이럴 때 특별 찬스로 구매하게 된다. 냉면기가 마땅치 않아서 늘 애매하였는데, 드디어 딱 맞는 사이즈를 산타가 찾은 것 같다. 홍합 전용 냄비는, 프렌치 스타일의 홍합을 레스토랑에서 먹을 때 담아 나오는 그릇인데, 늘 탐내면서도 구매하지 못하던 물건이었는데, 이번에 산타가 크게 인심을 쓴 모양이다. 



그러고 나서 트리 밑의 선물들을 풀었다. 멀리서 노바스코샤에서 날아온 선물들, 가까이 밴쿠버에 사는 남편의 자식들에게서 온 선물들, 그리고 우리끼리 준비한 선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준 물건들도 전부 트리 밑에 놓여있었으니, 이거 푸는 데에도 정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딸아이한테는 새로 꾸민 방과 침대에 맞게 고양이 무늬 침대 시트가 준비되었고, 멀리서 입체 퍼즐도 날아왔으며, 방에 달게 될 예쁜 등도 선물로 준비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책도 한 권 갖고 싶다 했었는데, 큰언니가 준비해줘서 깜짝 놀랐다. 


남편에게는 정원에 꽂을 수 있는 큰 메탈 버드 장식을 준비했다. 좋아할까 조마조마했는데, 남편도 이 광고가 뜬 걸 보면서 마음이 끌렸었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딸은 우리 부부에게 작은 프로젝터를 선물했다. 침실에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도구인데, 정말 시대가 바뀌어서 집안에서 이런 게 가능하니 신기하다. 딸이 쓴 카드들을 읽으면서 우리 부부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작년과 재작년, 정말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두 해를 보냈는데, 이젠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


남편은 내게 예쁜 목걸이를 선물했고, 가드닝에 관련된 책과 도구를 선물했다. 고급진 가드닝용 가위도 큰딸의 선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탄산음료 만들어 먹는 도구까지 자식들에게서 온 선물 꾸러미에 있었다. 남편의 형수인 낸시는, 모두에게 힘들었던 한 해를, 자신의 남편, 즉, 내 남편의 친형이 줬던 선물과 똑같은 주석 장식품을 선사하면서, 그걸 만지며 위안을 받았다는 따뜻한 마음까지 함께 선사했다. 


사실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하나하나 다 떠올리기도 힘들 지경이다. 소소한 작은 것에서부터 앗! 이런 것까지? 할만한 것들로 하나 가득이었다. 두 시간 가까이 많이 웃고, 또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며 선물을 풀고 나니, 거실이 완전히 물건과 포장지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점심은 간단히 먹기로 했었다. 저녁식사가 또 있으니까. 원래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스콘을 먹는다는 우리 집의 전통에 따라서, 비록 더 이상 아침이라 부를 수 없는 시간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글루텐프리 스콘을 구웠다. 안타깝게도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답게 부풀어 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맛은 아주 좋았다. 게다가 집에 잘라놓았던 로즈메리를 다져서 넣었더니 풍미도 아주 훌륭했다. 



퀼트 친구 메리조가 준 마말레이드(marmalade)와, 노바스코샤 누님이 주신 잼들을 함께 놓고, 버터를 곁들여 먹으려 하니 이보다 더 풍성한 느낌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함께 곁들여서 뭘 마실까 하다가, 크리스마스 전통 음료인 에그넉(eggnog)을 나와 딸이 한 번도 안 먹어봤다고 했더니, 남편이 바로 에그넉을 만들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마트에서도 에그넉을 많이 팔지만 사 먹는 에그넉과 집에서 만든 에그넉은 완전히 다른 맛이라고 했다.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사 먹는 식혜와 집에서 만드는 식혜는 완전히 다른 맛이니까. 



기본 재료는 우유와 생크림, 달걀이고, 거기에 버본도 약간 넣고 마지막에 넛맥을 갈아 넣어 완성된 에그넉은 정말 맛있었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화 하면서도 달달한 그런 맛이었다! 술은 옵션이지만, 성인만 사는 집이니 술도 들어가서 더 강한 맛이 났다.



그래서 이렇게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면서 배불리 차려 먹고, 다음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하! 써놓고서도 너무 웃기다. 먹고 돌아서서 다음 먹을 것 준비라니! 하지만, 다음 코스는 크리스마스 디너 아닌가! 당연히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그 무엇보다도 거위를 손질했다. 속까지 손을 넣어서 깨끗하게 씻었다. 이 거위는 농장에서 가져온 유기농 거위인데,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농장에 주문해 놓았다가, 사위가 한꺼번에 픽업해와서, 우리는 어제 음식을 배달하면서 사위에게 전해 받았다. 6kg짜리를 주문했는데, 그보다 큰 녀석이 온 것 같았다. 거대한 거위는 금방 익지 않기 때문에, 미리부터 준비해서 굽지 않으면 저녁때 먹을 수가 없다. 



그리고 수프도 끓이고, 곁들이 야채도 준비하고, 햄도 준비하고, 남편이 대부분의 음식을 맡아서 해냈다. 어차피 나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니, 이럴 때는 남편이 알아서 실력을 발휘한다.



나는 그동안 디저트로 사용할 케이크를 만들었다. 원래 크리스마스엔 피칸파이(pecan pie)진저브레드 쿠키(gingerbreadman cookies)를 굽곤 했는데, 올해는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현대백화점에서 올해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고가에 판매된 것이었는데, 페이스북 친구의 딸이 디자인했다고 하며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눈 내린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예쁜 케이크였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속을 알 수 없었다. 단면 사진이 있으면 좀 찾아보려 했건만, 인터넷을 다 뒤져도 단면 사진은 아무 데도 없었다.


결국 마음대로 스펀지케이크를 구워서 그것을 내가 원하는 크기대로 잘랐다. 크리스마스용 마카롱을 잔뜩 굽고 나서 남은 노른자를 모두 이용해서 스펀지케이크를 먼저 구웠다. 하지만 나무를 만들기에는 사실 좀 모자라서 상당히 높다란 케이크가 되면서 좀 불안하긴 했다. 저러다가 톡 쳐서 넘어가면 어쩌지? 이런 기분이었다. 디자인을 약간 바꿔서 마당에 놓은 케이크를 하고 싶었기에 나름대로 머리를 열심히 굴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저녁 7시가 되자 거위는 완성이 되어서 나왔다. 이 노릇한 껍질을 보라! 하지만 이 대로 바로 먹을 수는 없다. 모든 육류는 다 익은 후에 레스팅(resting)이 필요하다. 안팎으로 열이 골고루 퍼지면서 육즙이 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 자르면 육즙이 다 흘러나와버린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는 지금 먹을 수 없다. 이제 상을 차리고 수프부터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크리스마스 양말에서 나온 크리스마스 문양의 초에 불을 켰고, 우리의 코스는 저녁 7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첫 코스는 리크 감자 수프였다. 리크는 대파처럼 생기고 사이즈는 더 굵은데, 수프로 끓이면 파보다 단 맛이 나면서 풍미가 좋다. 거기에 감자가 들어가면 크림수프 같은 질감이 생기며 따뜻함이 오래간다. 그 위에 샐러리를 얹어서 장식하니, 크리스마스에 딱 맞는 색감의 수프가 되었다. 맛은 완전히 크리미 한 게 일품이었다.



이렇게 해서, 노바스코샤에서 날아온 나뭇가지를 놓고, 와인을 곁들여서, 우리의 크리스마스 디너가 시작되었다. 와인의 붉은색과 냅킨의 초록색을 맞춰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 살려주었다.



다음 코스는 입맛을 돋워줄 샐러드였다. 접시가 비칠 만큼 얇게 썰은 녹색 사과와 비트가 어우러져 크리스마스 색감을 띄도록 만들어졌다. 역시 남편 작품이다. 맛도 아주 좋았지만, 보는 기쁨이 큰 샐러드였다. 



드디어 본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남편이 거위를 카빙(carving)하고 있다. 이렇게 로스팅한 후에 자르는 것을 카빙이라고 부른다. 원래 카빙은 조각칼로 조각하는 그런 의미로 쓰이는데, 음식에 이렇게 쓰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저 뒤로 큼직하게 구워진 햄도 보인다. 햄 역시 크리스마스에 먹는 맛있는 음식 중 하나인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밀려서 완성샷은 찍지도 않았구나! 하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맛이었다.



 거위는 가금류이지만 닭과는 상당히 질감이 다르다. 색도 이렇게 확연히 다름이 보인다. 채식주의자인 남편의 큰 딸이 오직 크리스마스 때만 이 거위를 먹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 특별함이 남다른 음식인 듯하다.



곁들여 먹을 야채들도 준비가 되었다. 감자를 삶아서 으깬 후, 달걀과 버터 등등으로 더욱 곱게 만든 더치스 포테이토(dutchess potatoes), 삶아서 시즈닝 한 후, 오븐에서 마무리한 꼬마 양배추(brussel sprouts), 그리고 윤기 나게 조리한 파스닙(roasted glazed parsnips)과 스파이스 캐럿(spiced carrots)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준비해 낸 남편은 정말 대단하다. 여기에 곁들여먹을 허니 크랜베리는 11월 초부터 발효시킨 것이었다. 생 크랜베리를 못 구해서 냉동으로 했는데도 너무나 잘 숙성되었다. 게다가 색이 보석처럼 예뻐서 식탁에 얹으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



메인 메뉴는 뷔페처럼 스스로 먹을 만큼 덜어서 담아간다. 접시는 평소보다 큰 디너 접시를 이용하기 때문에 음식이 많아 보이지 않지만 정말로 배가 부르게 먹었다. 햄과 거위, 그리고 각종 야채들로 배불리 먹고,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맛있게 먹느라 식탁에 놓은 메인 메뉴는 사진도 안 찍었구나. 


식사 도중에 막내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화상통화로 달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랩탑을 앞에 놓고 인사를 나눴다. 막내아들이 큰 딸과 한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2쌍의 커플과 동시에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집에서는 벌써 식사를 끝내고, 큰 사위가 크리스마스 푸딩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올해 스킵한 크리스마스 푸딩 케이크. 내년엔 꼭 해보는 걸로! 아쉽게 작별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마지막은 크리스마스트리 케이크. 크림 부분을 더 뾰족하고 빳빳하게 빼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진짜 생크림으로는 그렇게 날카롭게 휘핑이 안 된다. 그건 식물성 크림이 들어가야 한다. 한국 제과점에서는 그래서 식물성과 동물성 생크림을 섞어서 사용한다. 하지만 집에서 맛있게 해 먹으면서 식물성 크림을 쓸리는 없다. 더구나 우리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일반 생크림을 사용하였더니 크림은 이 정도가 최대 능력이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짝퉁이지만 그럴싸하다고 주장해본다.


트리 모양을 살리기 위해서 딸이 숟가락으로 모양을 좀 잡아보긴 했지만, 그래도 결론은 동글동글 귀요미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모링가 가루가 있어서 뿌렸고, 위에는 체리를 하나 얹어서 분위기를 내봤다.


베이스는 가나슈를 내서 매끄럽게 덮으려 했는데, 크림 끓이기 번거롭다고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다가 온도가 틀어지는 바람에 매끄럽지 않은 가나슈가 되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콘셉트를 바꿔서 휘핑해서 덕지덕지 붙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래도 바닥이 안정감 있게 되어서 나름 분위기가 있었다. 탑을 쌓은 사이에는 생크림을 발랐는데, 딸기도 썰어 넣을까 하다가 참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썰고 있는데 이미 탑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최초로 단면이 공개된 트리 케이크라고 주장해보겠다. 트리 부분을 먼저 잘라서 서빙하고, 나머지 아래쪽도 같이 접시에 올렸는데, 노른자가 듬뿍 들어간 스펀지케이크도 좋았고, 넉넉한 크림에 상큼한 모링가 파우더도 잘 어울렸다. 거기에 초콜릿까지 들어가서 쌉싸름함을 얹어주니 맛으로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는 디저트가 되었다. 


이렇게 배불리 먹어서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겠다고 하면서 식탁에서 거실 소파로 옮겼는데, 대화가 끝없이 이어져서 결국은 나는 맥주를 따서 마시고, 남편은 브랜디를 마시고, 이렇게 셋이서 또 2시까지 놀았다. 맨날 이렇게 먹고 놀면 안 되겠지만, 명절 때는 괜찮은 걸로!




우리의 크리스마스 만찬은 그렇게 끝났다... 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여기가 끝은 아니었다. 


그다음 날의 박싱데이(boxing day) 런치가 남아있었다. 사실 우리는 트리 장식을 크리스마스이브에 했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상자에 넣을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트리는 이제 즐기기 시작이니까... 그래도 크리스마스 다음날의 점심은 좀 특별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리부터 준비를 했다.


별로 불 앞에서 조리하지 않고 간단하게 먹는 것이 원래 콘셉트여서, 보통 슈림프 링(shrimp ring)치즈, 미트 등을 먹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엔 새우 대신 홍합을 먹자고 내가 제안했다. 지난번에 먹었던 홍합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장은 크리스마스이브 때 보았기 때문에, 산타가 홍합용 냄비를 선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었는데 완전 탁월한 선택이었다. 산타에게 선물을 받자마자 개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베이크드 브리(baked brie)를 꼭 한 번 꼭 먹어보고 싶었기에, 십 년이나 유행이 지난 이 음식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파이지와 브리치즈도 준비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간단 점심은 될 수 없었고, 또 상다리가 부러지는 식사가 준비되었다. 그래도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홍합은 어차피 조리하는데 10분밖에 안 걸리고, 브리 굽는 것도 오븐 안에서 알아서 조리되었기 때문이다. 새로 장만한 홍합 용기에 홍합을 담아서 서빙하니, 완전히 프렌치 분위기 충만이었다. 노르망디에서 너무 맛있어서 냄비채로 들고 마셨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이 홍합 전용 냄비는, 뚜껑을 열어서 옆에 두고, 거기에 홍합껍질을 모은다. 그래서 비포, 애프터가 이렇게...


내가 먹고 싶다던 브리치즈는 이렇게 로맨틱하게 녹아내렸고, 고소한 파이 크러스트와 함께 먹으니 꿈결 같은 맛이 났다. 위에는 구운 호두를 얹어서 고소함을 더해주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의 만찬들이 끝났고, 우리는 그 이후에 새해가 올 때까지 새로운 요리를 하지 않고도 풍요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햄은 몇 번의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서 마무리되었고, 거위 로스트 남은 것은 저녁식사로 적합했으며, 햄과 치즈들도 몇 번에 나눠서 잘 먹었다. 


또한 거위를 구울 때 나온 기름들을 모아서 요리용으로 모았다. 이 구스팻(goose fat)은 냉장 보관하면서, 볶음 요리할 때, 라드처럼 사용할 수 있는데, 풍미가 아주 좋아서 우리가 잊지 않고 챙기는 품목이다. 다 먹고 남은 거위 몸통은 여러 가지 야채 자투리와 향신료를 넣어서 육수(stock)를 만들어 냉동하였다. 



이렇게 잘 먹고났으니 한두 달은 근사한 음식을 쉬어도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얼마 전에 이미 올린 내 생일도 있었고, 포스팅 생략한 결혼기념일도 있었고, 그리고 포스팅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송년의 밤과 새해 식사가 있다.


크리스마스 때 양식을 푸짐히 먹었으니, 새해맞이로 한식도 좀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박싱데이에 막걸리를 빚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일지니, 기꺼이 계속 선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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