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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01. 2021

육회를 두 근이나?!

육회로 배를 채우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뭔가 찾다가 집에서 육회를 해 먹었다는 글을 발견했다! 아! 추억의 음식, 육회! 그런 게 있었지!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아버지 술상을 차릴 때 가끔 준비해서 올리던 안주였다. 


어린 마음에 무엇인지도 모르는 음식이었지만, 아버지 상에 오르니 좋은 음식일 테고, 옆에서 놀고 있으면 아버지가 한 젓가락 집어서 입에 넣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렇게 해서 육회를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중에 중학교 때였나, 나 육회 먹을 줄 안다 했더니 친구들이 질겁을 하며 놀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게 날고기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것 같다. 호기심 많고 조심스럽던 여학생들 입장에서 날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끔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하긴 어릴 때부터 번데기도 먹고, 순대도 먹고, 간도 먹고... 그러면서 그게 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하, 커서 생각하니, 번데기가 뭔지 처음부터 생각했다면 먹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세월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육회는 다시금 우리와 친근한 음식이 되었다. 뷔페식당에 가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메뉴가 되었고, 광장시장에 쭉 늘어선 가게의 육회도 탐스러운 모습으로 티브이 전파를 탔다. 육회 전문점도 생기고, 그렇게 육회는 우리의 식탁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아무도 육회를 집에서 해 먹지 않았고, 내겐 그렇게 잊혀진 바깥 음식이 되고 말았는데...


그런데 육회라니! 갑자기 군침이 돌았다. 딸에게 말했더니, 딸도 입맛을 다셨다. 남편의 첫 반응은 애매했다. 날고기를 먹는다니 듣기만 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raw beef라고 했더니, 내가 생각해도 날소고기는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beef sashimi라고 해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고기 회. 남편은 생선회나 초밥을 좋아한다. 그러니 이걸 그런 개념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생각되었다. 


상차림을 서양식 스테이크 타르타르처럼 해봤다! 


그러고 나서 서양식 생고기가 뭐가 있나 찾아봤더니 스테이크 타르타르(steak tartare)라는 것이 놀라울 만큼 한국의 육회와 닮았다. 소고기나 말고기로 주로 만들어 먹는다는데, 잘게 잘라서 우스터소스와 여러 가지 향신료를 섞어서 쟀다가 달걀노른자를 얹어서 서빙한다. 물론 맛은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림은 상당히 비슷해 보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우리 집에 있는 고기로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반마리 사서 급속 냉동된 신선한 고기는 냉동실에서 언제나 든든히 우리를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살균 멸균으로 이만큼 좋은 냉동 법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원하는 부위가 있을까 찾아봤더니, 로스트 용으로 준비된 우둔살(eye-round roast)이 있었다! 보기에도 큼직한 한 덩어리는 자그마치 2.2킬로그램이었다. 거의 네 근에 가까운 소고기 덩어리! 하지만, 통으로 얼려있으니 그중의 일부만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우리는 이렇게 거대한 육회의 세계로 들어섰다. 





다음날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저녁 준비가 분주해졌다. 육회는 딱히 어려운 레시피랄 것이 없다. 양념도 황금비율 이런 거 없다. 사람 입맛은 다 다르니까. 하지만 약간의 팁은 존재한다. 고기를 써는 타이밍이라든지 두께 등등이 그에 해당한다.


우선, 고기는 우둔이나 홍두깨를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더 부드러운 촉감을 원한다면 안심 같은 비싼 부위를 사용해도 좋겠지만, 사실 살짝 씹히는 감이 있는 게 좋기 때문에 기름기가 적은 부위를 쓰는 것이 더 좋다. 물론, 가격도 큰 메리트 중 하나이다.


고기를 얼마나 얼리느냐도 사실 관건이다. 우리 집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완전히 꽝꽝 얼은 고기를 사용했다. 냉장실에서 하루 녹였더니, 여전히 단단히 얼어있었지만, 칼로 썰리기는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얼어서 그랬는지 핏물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냉동되지 않은 고기를 정육점에서 사 올 때에는, 집에서 서너 시간 냉동했다가 써는 것이 좋다. 얼리는 과정에서 살균도 된다 하고, 또한 그렇게 되어야 썰기가 좋다. 



냉동실에서 나왔더니, 가장자리는 살짝 색이 산화된 듯 보였다. 그래서 변한 곳은 썰어내고 안에 선홍색 있는 부분만 먹었다. 물론, 나머지 부분도 상대적으로 그래 보였던 것이지 실제로 썰어서 모아놓으니 멀쩡했기 때문에 사실 육회로 먹어도 괜찮았겠지만, 고기가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머지는 그다음 날 간장 양념해서 볶아 먹었다. 그런 부분은 익혀 먹으면 상관없다.


둘째 날 반 정도 남은 것 먹을 때에는 살얼음이 남아있는 상태였는데, 썰었더니 빠르게 녹으면서 핏물이 많이 나왔다. 고기에서 핏물이 많이 나오면 일단 보기에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키친타월로 눌러서 제거를 해주는 것이 좋다. 고기는 먹기 직전에 썰어서 온도를 최대한 차갑게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야채를 먼저 준비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야채 썰은 사진은 한 장도 안 찍었다. 둘째 날 저 건너편에 양파 조각 좀 보이는 정도...


마늘생강은 곱게 다지고, 도 가늘게 세로로 썰은 다음에 다시 종종 작게 썰어줬다. 양파는 반으로 자른 후, 곱게 채를 썰었다. 크게 씹히는 식감이 있으면 별로일 것 같았다. 그리고 잣도 한 숟가락 꺼내서 미리 다져줬다. 잣은 원래 종이나 키친타월을 깔고 다지라고 하지만, 그냥 다져도 별 상관없다. 그렇게 기름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 다 준비되었으니, 한쪽에서 남편이 고기를 썰었고, 나는 를 채 썰었다. 고기는 최대한 얇게 써는 것이 좋다. 한 3~5미리 정도 두께면 적당하다. 두꺼우면 질기다. 하지만 자로 잰 듯 잘 자를 필요는 없다. 우동국수 정도로 생각하고 썰면 된다.


배는 원래는 미리 썰어서 설탕물에 담가놓아서 갈변을 방지한다는 것이 전통요리법이지만, 나는 그러면 맛이 없어서 싫기 때문에, 먹기 직전에 썰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갈변되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기를 썰고 나서는 양푼에 담아서 우선, 양파와 파, 마늘, 생강을 넣고 젓가락으로 빠르게 저어준다. 손으로 무치는 것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손이 따뜻해서 고기가 빨리 녹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소주를 살짝 둘러준다. 우리는 소주가 없어서 양주를 넣었다. 그리고는 간장을 둘러준다. 간장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고기 색이 검게 될 만큼 넣으면 안 된다. 넣으면서 색의 변화를 본다. 


그러고 나서 참기름과 깨를 둘러주고 다시 섞는다. 참기름을 넉넉히 넣는 것이 맛이 좋다. 휘리릭 재빠르게 섞어주고 나서 한 점 먹어보고 간을 정한다. 날고기를 간을 보냐고? 당연하지! 우리는 육회를 먹는 거니까!



먹어보고, 싱거운 거 같으면 간장을, 고소함이 덜 하면 참기름을 더 둘러주면 된다. 이제 접시에 배를 담고 거기에 고기를 얹어준다. 고기에서 핏물이 많이 나오는 것 같으면, 고기와 배를 겹치지 않게 가지런히 담아도 된다. 하지만 준비할 때 잘만 관리하면 다 먹을 때까지 핏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집에서 가장 큰 믹싱볼에 하나 가득 준비하면서, 혹시 모자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김치 부침개까지 부치는 나는 손이 너무 큰 듯했다. 고기를 반만 담아야 보기에 딱 예쁠 텐데, 남기면 뭐 하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다 쌓았다.



사진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지만, 달걀노른자의 크기를 생각해본다면 대략 가늠이 가능하다. 육회 위에 달걀노른자를 얹는 것은 옵션인데, 사실상 나는 육회에서 별로 노른자를 탐하지 않는다. 옛날 아버지 상 위에 올랐던 육회에도 달걀은 없었다. 그러나, 비주얼 상으로는 노른자는 정말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마침 딸이 마카롱 만들고 남은 노른자가 있어서 부담 없이 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로 잣가루 빻은 것을 둘렀다. 


달걀은 최소한 방사란이나 유기농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날것으로 곁들이는 경우, 저렴한 달걀을 사용하면 비린내가 많이 나서 전체 맛을 버린다. 


이렇게 해서 오랜만에 먹은 육회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 적절히 씹히면서, 양념이 딱 적당했고, 온도도 차게 잘 유지되었다. 그야말로 입에 짝짝 붙었다. 남편은 생전 처음 먹어보는 육회여서 처음에는 약간 걱정했는데, 너무 맛있다며 완전히 음미하면서 먹었다. 간장과 소고기, 참기름... 이 세 가지가 들어갔으니 더할 나위 없는 맛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우리 세 사람이서, 그 큰 덩어리 반 넘게 자른 것을 싹쓸이하였으니, 육회를 배 두드리며 먹어보긴 난생처음이다. 식당에 가면 한 접시에 한 주먹 올라오는 셋이서 족히 두근 이상을 먹은 것 같다. 그리고 냉장실에 남겨두었던 나머지도 그다음 날 다시 육회로 해서 고기를 마무리하였다. 둘째 날에는 서양식 스테이크 타르타르처럼 개인 접시로 담아서 상을 차렸더니 어쩐지 더 근사해 보였다. 


접시도 예쁜 데 담아서 서빙했는데, 안타깝게도 카메라의 기능이 다른 것으로 켜져 있는 것을 모르고 후다닥 찍고 먹는 바람에, 사진이 모두 완전 시커멓게 나왔다. 그나마 딸이 손 좀 봐줘서 대략 무드 사진 정도로 살린 것이 이것이다. 



양이 전날보다 적어 보였으나, 막상 먹어보니 전혀 적지 않았다. 만일 양이 모자란다면, 밥을 더 많이 하고, 육회 비빔밥으로 한다면, 1인분만 가지고도 3인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또 먹기 위해 산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육회

3인분


재료:

- 쇠고기 우둔살 또는 홍두깨살 (eye of round) 600g, 신선한 고기를 냉동으로

- 쪽파 3개, 잘게 다져서 준비

- 마늘 4개, 다지거나 빻거나

- 양파 1/4개, 곱게 채 썰어서 준비

- 생강 새끼손톱만큼, 다져서 준비

- 잣 1큰술, 곱게 다져서 준비 (옵션)

- 배 1/2~ 1개

- 소주 1큰술

- 간장, 3큰술~5큰술

- 참기름 1/4컵 정도

- 달걀노른자 (신선한 방사란) 


만들기:

1. 고기는 냉동으로 구입하였으면, 하루 전날 냉장실로 내려놓아 살짝 언 상태를 유지한다.

    냉장으로 구입한 경우는 반대로 3~5시간 정도 미리 얼려 둔다.

2. 파나 쪽파를 준비하여, 길이로 슬라이스 한 후 종종 썰어 잘게 다져준다.

3. 마늘과 생강은 빻아준다.  

4. 양파는 최대한 가늘게 채를 써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부드러워 맛있다.

5. 잣은 통으로 섞어도 되고, 곱게 채 썰어서 뿌려도 좋다.

6. 배는 위의 재료를 다 썰고 마지막에 썬다. 가늘게 채 썰어준다.

7. 이제 썰기 준비가 다 되었으니 고기를 채 썬다. 

  너무 두껍지 않게, 3미리 정도로 써는 것이 씹기 적당하다.

  고기가 너무 녹아서 핏물이 나오면 키친타월로 꾹꾹 눌러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

8. 제일 먼저 고기에 소주를 한잔 정도 둘러주고, 파와 양파, 마늘, 생강을 넣는다.

   이렇게 향이 강한 것을 사용해서 고기의 누린내를 먼저 잡아주는 것이 양념의 순서이다.  

   섞어줄 때는, 나무젓가락으로 빠르게 휘저어 섞어준다. 손으로 섞지 않는다.

   손을 대면 체온 때문에 금방 녹아서 식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9. 간장을 넣으면서 색을 보고, 필요에 따라 적당량을 넣는다. 처음부터 많이 넣지 않는다.

10. 깨를 뿌려주고, 참기름을 둘러준다. 참기름은 넉넉히 두른다. 

11. 맛을 보고, 필요하면 간장이나 참기름을 추가한다. 

12. 접시에 채 썬 배를 빙 둘러 담고, 가운데에 고기를 얹는다.

13. 달걀노른자를 얹고, 그 옆으로 다진 잣을 뿌려서 장식한다.

14. 상에 그대로 낸 후, 노른자를 섞어 비벼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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