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표현하는 재미난 방법
나는 내가 참 유머러스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한때는 심지어 개그맨이 되었으면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천연덕스럽게 농담하기를 좋아하는데, 실제로는 별로 그렇게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농담은 옆에서 맞 받아줘야 재미가 있는데,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이면 맥이 빠지지 않겠는가!
우리 삼남매는 그 방면에서 아주 박자가 잘 맞았다. 그래서 쿵! 하면 짝! 할 수 있을 만큼 주거니 받거니 뚱딴지같은 농담을 주고받곤 했었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성대모사 같은 것을 하면서 놀기도 했다.
그러다가 처음 결혼하고나서부터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나의 첫 남편은 모든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재미를 잃어갔던 것 같다. 유머가 빠진 삶이었다.
그런데 다시 딸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유머를 살살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유치하지만 그런 것들이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를 들면, 둘이 나란히 버스를 타고 앉아있는데 내가 딸의 옆구리를 툭 친다. 딸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 나는 전혀 모른다는 듯한 멀뚱한 표정으로 "왜?"하고 친절하게 묻는 것이다. 어린 딸은 그 장난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왜 장난치느냐고 짜증 내지 않고, 자기도 똑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횟수가 반복되면 멀쩡한 표정을 짓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웃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게 뭐가 재미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무척 싱거운 짓인 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들의 눈을 피해서 둘이서만 조용히 그런 장난을 치면서 버스를 타고 가면, 먼 길을 가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 둘만의 리그였다.
또 어떤 별로 필요하지 않은 특정한 물건을 딸아이의 짐에 슬쩍 끼워 넣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것을 발견하는 데에는 며칠이 걸리기도 했고,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그걸 찾은 딸은 그 물건을 다시 내 장소에 슬그머니 숨겨 놓는다. 딸이 유학 갈 때는 아이 짐가방에 따라갔다가 딸이 보낸 소포에 담겨서 오기도 했다. 아니면 가져간 줄 알았는데, 나중에 어딘가 서랍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아이를 떠난 보낸 이후의 시간에서는 다시 웃음이 사라져 버렸다. 집에 있는 날에는 거의 무표정한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면서 그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사람도 나와 딸 못지않은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이었다.
시작 역시 남편이 했다. 남편은 매일 저녁 식사 전, 마티니를 한 잔 하는데, 거기에는 올리브가 들어가기도 하고 레몬 조각이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올리브를 좋아하니, 남편은 마티니 만들면서 내게도 올리브를 하나씩 건네기 시작했다. 내가 받아서 오물오물 먹는 것이 재미있었던 남편은 올리브를 하나 준 후에, 다른 하나를 추가로 숨기기 시작했다.
"올리브 왜 안 먹어?"
"아까 먹었잖아..."
씩 웃는 남편의 표정을 보며 나는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눈동자가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이렇게 숨기는 주요 목적은 재미있자는 것이다. 즉, 못 찾을만한 곳에 숨기면 안 된다. 그냥 눈에 뻔히 보이는 곳에 숨기는 것이 묘미이다. 그러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생활 속에 스며 있는 것이 포인트.
남편의 형님이 초콜릿 케이크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날에는 저녁시간까지 그것이 무사하기 위해서는 케이크를 숨겨야 했는데, 어디에 숨겨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이 초콜릿 케이크를 버젓이 피아노 위에 얹어두셨다. 그것은 마치 다른 장식품들과 어울리는 배경과도 같았고 형님은 그걸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이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우리의 이 놀이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숨기기와 찾기를 반복하며 놀았다.
우리 둘만 이러고 놀았다고 하면 너무 닭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놀이에는 곧 딸이 합류했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딸은 놀이에 초대하지도 않았지만 알아서 초대되었다.
남편이 워낙 가지런히 줄 맞추기를 좋아하는 타입인데, 딸이 방학이라 다니러 오면, 아빠의 가지런함을 슬쩍 흩트려놓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실수인 듯 시작하였다가 점차 노골적이 되었다.
딸의 이런 행동에 남편은 적당히 약 올라한다. 또 새로운 짓을 했구나! 하며 분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껄껄 웃기도 한다.
그리고 딸은 이어서 '잘 보이는 곳에 숨기기'에 알아서 동참한다. 특히나 맛있는 간식을 숨기는 것은 즐겁고 스릴 넘치는 일이다. 마카롱은 실온에서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한 이틀정도 못 찾아도 괜찮다. 하지만 발견하면 바로 커피 내리고 스낵타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겨울방학이 끝나고 딸이 떠나기 전날, 아빠가 좋아하는 쇼트브레드 쿠키를 구워서, 아빠가 아끼는 오래된 틴 캔에 담아서 크리스마스의 흔적들 틈에 올려놓고 갔다. 언제 그걸 찾아낼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출발 후 사흘 지나서 거실에서 껄껄껄 웃음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그 과자를 며칠에 걸쳐서 아껴 가며 먹었다.
깜짝 놀라며 활짝 웃게 해주는 것, 사소한 작은 것들을 통해, 사랑이 늘 거기 있다고 수시로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장난스러운 표현은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늘 속삭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