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위만 즐기지 않고 전 과정을 즐겼다
오페라 관람을 다녀왔다. 캐나다에서 처음이었다. 이태리로 신혼여행 갔을 때 로마에서 갔던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문화생활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용도 그렇거니와, 결혼 1년 후 팬데믹이 시작되는 바람에 집에서 그냥 농사나 지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자식들이 선물로 오페라 티켓 상품권을 선물한 것이다. 밴쿠버 시내 한 복판에 있는 퀸 엘리자베스 극장이었다. 밴쿠버의 오페라와 발레단이 있는 곳이다.
연말연시에는 계속 감기 걸리고 컨디션도 안 좋아서 미루다가, 드디어 이번 달에 좌석을 예약했다. 선물인 만큼 액수가 꽤 되었기에 좋은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물론 싼 자리를 예약하면 두 번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 번을 보더라도 제대로 즐기자고 했다. 그게 또한 선물을 잘 즐기는 방법이 될 것 같았다.
두 가지 작품이 있었는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선택했다. 또 하나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선'이었는데, 그건 내용이 너무 어두울 것 같아서, 쉽고 가벼운 내용으로 고른 셈이다.
하지만 '한 여름밤의 꿈'도 너무 오래전에 접했던 것이어서 상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이라서, 어려운 오페라 영어를 만나기 전에 미리 봐두면 좋겠다 싶어서, 남편과 함께 영화를 찾아서 미리 봐두기도 했다.
보통은 저녁때 오페라 공연이 있는데, 우리가 잡은 날짜는 일요일이었고, 그래서 낮에 공연이 있었다. 오후 5시에 끝나는 공연이었다. 그렇다면, 밴쿠버 시내까지 갔으니 아예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 어떨까 싶었다. 늘 남편이 나를 챙기는 편이니 이번에는 내가 저녁을 쏘겠다고 좋은 곳에 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식당들을 검색했다. 딱 4팀만 받는 식당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미리 예약하고, 식사도 주문을 미리 하는 곳이라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가족처럼 운영하는 곳이어서, 아주 럭셔리한 곳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기념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침 그날이 휴무라고 하여서, 우리는 또다시 다른 곳을 검색했다. 3년 전 내 생일에 갔던 멋진 식당에 갈 것인가 하다가, 큰딸에게 추천받은 새로운 곳을 예약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준비를 하는 과정이 다 즐겁고 신이 났다. 맨날 집에만 있는 사람들이 간혹 꾸미는 여흥이랄까.
그리고 나니 뭘 입고 갈까를 생각해 봤다. 여기 사람들은 원래 이런 오페라를 보러 갈 때에는 잘 차려입고 간다고 하던데,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해봤다. 나도 드레스(나름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은 날씨가 아직 많이 추워서, 주차장부터 극장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면 엄두가 안 났다. 사실 예전에는 모두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었다지만, 지금은 그런 드레스코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의상은 자유다.
나는 그냥 평소보다는 좀 더 신경을 쓰는 수준으로 맞추기로 했다. 이것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즐기는 마음이었다. 남편도 티셔츠대신 셔츠를 입었지만 역시 날씨를 감안해서 위에 스웨터를 걸쳤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청바지는 입지 않고, 좀 정장에 가까운 바지를 입었다.
오페라 하나 보러 가면서 왜 이렇게 촌스럽게 유난을 떠나 싶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어쩌면 우리가 오페라를 즐기는 과정안에 다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여행을 갈 때에도, 꼭 중요한 관광지를 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기 전에 준비하고 들뜨는 것부터 모든 과정이 여행의 각 부분을 차지한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극장에 도착하니 역시나 극장 주차장은 만차였고, 길 건너에 공터 같은 곳에 비싼 주차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주차비를 지불하기 위해 기계 앞에 줄을 서있었다. 기계는 느렸고, 어쩐지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아서 해당 주차 앱을 다운로드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원래 쓰던 주차앱은 어쩐 이유에서인지 이곳에서 적용되지 않았다.
추운데 떨고 있으니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오지 않은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싶었다. 상당히 일찍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시간을 잡아먹는 바람에 결국 서둘러 극장에 진입해야 했다. 극장 내부를 좀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주차장에서부터 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한 눈에도 오페라 가는 사람임을 알 수 있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늘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는 캐나다 사람들이, 이런 이벤트를 위하여 차려입고 들떠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극장 안에서 자리를 찾아 앉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입지 않는 옷을 입고 들뜬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 특히 나이가 있는 분들은 더 신경 쓴 티가 났다. 티켓 값이 꽤 비쌌는데 극장은 만석이었다.
내 앞에 앉은 두 부인은 한껏 멋을 부리고 앉아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깨가 많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서 어깨에는 숄을 둘렀다. 큼직한 귀걸이가 달려있었고, 화장도 예쁘게 하였다.
극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데다 고어로 이루어진 오페라 억양이었다. 사극 판소리 같은 것을 외국인이 듣는 기분이었다. 나 같은 관객을 위해서 위쪽에 자막이 떴다. 비록 여전히 셰익스피어 말투의 영어자막이었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눈은 바삐 움직였고, 오페라는 재미있었으며, 관객들은 적절히 반응하며 즐겼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었다. 자리를 보존하고 앉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로비에서는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사 먹을 수 있었으나, 뭘 하나 사 먹으려면 엄청나게 줄을 서야 했다. 센스 있게도 미리 주문이 가능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들의 음료는 이미 준비가 되어서 영수증과 함께 놓여 있었다.
로비를 둘러보니 여러 가지 방식으로 멋을 부린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음료나 간식을 사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그곳에서 서서 담소를 나누며, 이 이벤트를 즐겼다.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난 그들을 보는 것을 즐겼다.
나는 종종 사람들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이렇게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가진 범위 내에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그들의 신나는 표정이 즐거웠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우리처럼 특별한 이벤트를 즐기는 사람들이리라.
물론 문화생활을 자주 즐기는 여유 있는 사람들은, 발레 공연 한편을 보기 위해 비행기 타고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지만, 우리는 이 자체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오페라의 내용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 같은 문외한이 하는 이야기보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냥 이 공연이 아름다웠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정통 오페라 스타일이 아니어서 생소하기는 했지만, 현대적 각색을 곁들인 것들이 색다르게 다가와서 좋았다. 가수들의 목소리는 아름다웠고, 특히 오베론 역을 맡은 가수는 음이 한없이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것이 코미디였기에 많이 웃을 수 있었고, 또 우리가 넉넉히 웃을 만큼 공연을 잘 해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공연 중에는 물론 사진을 찍으면 안 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을 할 때에는 마음껏 찍어도 좋다. 심지어 사진을 찍으라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뜨기까지 했다. 흥겹게 즐기라는 말이다.
극장을 나왔을 때에는 비가 부슬부슬 왔지만, 우산을 쓰지 않아도 젖지 않을 만큼의 비를 맞으며 우리는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식당은 오페라 후에 가기 딱 좋은 위치였다.
흥겨움으로 가득 찬 식당은 서비스가 훌륭했고, 음식도 색다르고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모든 과정을 즐기고 행복해했다. 음식들 사진은 정성스럽게 찍고, 맛을 꼼꼼히 음미하여, 나중에 우리도 집에서 이렇게 해 먹자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던 재료들이 섞여있어서 외식을 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둘 다 요리를 좋아하는 집밥 부부이기 때문에, 맨날 집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것을 사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외식은 일 년에 몇 번 손에 꼽는데, 그럴 때 이렇게 특별한 것을 먹으면, 우리의 메뉴가 느는 것이니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실 돈을 좀 많이 쓴 저녁이었는데, 쓴 만큼 넉넉히 즐겨서 좋았다. 그냥 일박이일 어디 여행 다녀왔다고 한다면, 그만큼의 비용으로 누릴 충분한 것을 누린 것 같다. 이것이 촌스러운 우리 부부가 오페라를 즐기는 방법이다.
이런 즐거운 시간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었고, 셰익스피어에 조예가 깊은 남편은,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나중에 꼭 데리고 가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번엔 드레스를 입어보리라 생각을 했다.
음식 사진 생략했는데, 요청에 따라 간단히 추가로 업로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