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수록 차라리 더 가까이...
정원을 가꾸는 이들에게 민들레는 반가운 화초가 아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잔디밭의 불청객. 다른 잡초들과 달리 뽑기도 어렵다. 뽑아내려면 뿌리가 중간에 부러지고, 그 자리에선 다시 민들레가 더욱 튼튼하게 자란다. 그리고 잔디밭을 깔끔하게 가꾸고 싶은데 민들레가 퍼지면 엄청 정신없고 지저분해 보인다.
꽃이 피어있을 때는 그나마 꽃이 예쁘다고, 그리고 벌의 먹이가 되어준다고 봐주지만, 홀씨가 맺힌 모습을 곱게 봐주긴 어렵다. 왜냐하면 그 홀씨가 곧 온 세상에 퍼져서 우리 잔디밭에 또 민들레를 만들어낼 테니까... 물론, 공원이나 우리 마당이 아닌 곳에서는 홀씨도 사실 예쁘다. 어릴 때 불며 놀았던 민들레 홀씨는 사실 정겨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세상의 모든 꽃은 다 예쁘다. 하루는, 예쁘다고 민들레 꽃을 잔뜩 꺾어다가 소주잔에 꽂아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잡초답게, 민들레 꽃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하루면 시들어버린다. 그때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극성맞은 민들레는 정원지기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지만, 반면에 몸에는 상당히 좋은 버릴 게 없는 화초라는 것은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잎도 줄기도 꽃도 뿌리도 다 몸에 좋은 약이란다. 염증도 없애주고, 간 해독도 해주고... 위장병에도 특효라고 들었다. 여러 가지 효능은 들어도 맨날 까먹지만, 아무튼 좋은 약재임은 다 알고 있다. 물론, 좋은 약재일수록 과용은 금물이다.
작년에 우리 집 뒷마당의 잡초를 몇 달간에 걸쳐서 모두 제거하면서, 한때는 민들레 뿌리로 약재를 만들어볼까도 생각 했었는데, 씻을 일이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다 버렸다. 흙이 얼마나 악착같이 붙어있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식초물에 담갔다가 씻으면 잘 씻어진다던데, 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거 한다고 붙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잎으로는 쌈을 싸 먹어도 좋다 하고, 냉이처럼도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바빠서 어느 순간 놓쳐버렸다. 그런데 꽃은... 꽃은 어떻게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그냥 두면 결국은 꽃가루가 되어서 날리는데, 그러면 정말 많이 번지니 반갑지 않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그냥 보이는 대로 꽃만 꺾었는데, 그랬더니, 꺾어진 꽃도 그대로 홀씨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흑! 우리 집은 그래도 작년에 하도 열심히 잡초를 뽑아서 그렇게 많지 않지만, 우리 가든에 맞닿은 옆집은 전혀 관리가 안 되고 있다.
그래서 민들레 꽃이 우리 집으로 넘어오고 있는데, 우리 집이 초토화되지 않으려면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부지런히 우리 집에 난 민들레를 캐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하루는 이웃집 민들레 꽃까지 수집하기 시작했다. 다니면서 꽃만 살짝살짝 땄더니 어느 순간 수북해졌다.
이걸로 민들레 꽃차를 만들어보자 싶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방법이 상당히 복잡했다. 씻어서, 쪄서, 말려서 덖으라고 했다. 아이고! 과정이 멀고 험난하구나! 그래도 궁금해서 일단 해봤다. 바싹 말리는 것만 해도 사나흘 걸린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물을 끓여 차로 마셔봤다. 오호! 이거 괜찮은걸!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꽃차 맛이었다. 색도 약간 노랗게 나왔고, 향도 있었다. 그렇다면 더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좀 더 쉽게 만들고 싶어서 꾀가 났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을 시도했다.
우선 가볍게 씻어줬다. 어차피 야리야리한 꽃이기 때문에 벅벅 씻을 수도 없거니와, 제초제나 별다른 것을 사용하지 않은 마당에서 딴 것이어서 가볍게 헹구고 물기를 털어줬다. 그리고, 오븐 팬에 마른 천을 깔고 가지런히 얹었다.
처음에는 위 동영상처럼 하나씩 잡아서 씻었는데, 두 번째 할 때에는 얼마 되지 않아서, 왕창 물에 쏟아 넣고 하나씩 건지면서 헹궈냈다. 어떻게 해도 크게 상관은 없고, 시간도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굳이 보자기를 까는 이유는, 오븐 팬에 닿은 부분이 혹시 쉽게 탈까 봐 조심스러워서 그리 하였다. 민들레에는 이미 물기가 있으니, 오븐에 들어가면 약간 스팀의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온도를 높게 잡으면 탈지도 모르니, 그냥 오븐의 데우기 기능에 맞추고, 한 시간 정도를 말렸다. 나는 오징어도 손질해서 이렇게 오븐에 말린다. 여기서는 마른오징어가 금값이기 때문이다.
말려서 나온 민들레는 상당히 말라 있었는데, 그렇다고 아직 완전히 마르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더 둬도 될까 몰라서 그냥 꺼냈다.
그리고 좀 더 통풍이 되도록 랙에 걸어서 한나절 더 말려줬더니 바삭하게 말랐다.
다 해서 모아놓고 나니 예쁘구나!
찻잔에 몇 개 놓고 뜨거운 물을 따르니 꽃이 다 펴지면서 예쁜 모양을 만들어 낸다. 향으로 마시고, 맛으로 마시고, 또 눈으로 마시는 차가 되었다.
오븐에 하는 방법이 간편하고 좋다. 물론 정식으로 하는 방법과 약간 맛이 다를지도 모른다. 다도 하는 분들이 보면 엉터리라고 흉을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차 맛을 잘 모른다. 나름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면 맛의 손실이 적게 잘 말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번째로 할 때에는 찌는 효과를 더 살리기 위해서, 오븐을 150°C(300°F)로 맞춘 후 넣고, 온도를 보온으로 바로 내려서 1시간을 두었더니, 추가로 말릴 필요도 없이 바삭하게 말랐다. 그때 바로 병에 넣자니, 손을 대면 바스러지는 수준이 되어버려서, 실온에 두 시간 정도 그냥 두었더니 손으로 건드릴만한 수준이 되었다. 그대로 유리병에 담았다.
마지막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고, 살균효과도 확실할 것 같아서, 그 이후로는 쭉 그 방식으로 하고 있다.
사실 더 간편하게 해 보려고 전자레인지도 이용해봤는데, 아무리 꽃잎을 물에 적셔도 순식간에 꽃잎이 타들어버렸다. 심지어 몇 초 사이로 불꽃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상당히 위험한 방법인 것 같아서 다시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아주 조금 번거로운 오븐에 말리기, 사실은 전혀 번거롭지 않은 이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누가 오면 선뜻 내어줄 수 있는 차가 되었고, 나도 기분 전환으로 베란다에 앉아서 기분 낼 수 있는 차가 되었으니, 민들레 뽑으면서 그만 투덜대야겠다.
미운 점이 있지만, 고운 점도 있으니 말이다. 민들레 잎으로 김치까지 담그게 되면 더 이뻐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만 즐기는 걸로! 향긋한 봄날이다!
(정식이 아니고 내 마음대로의 간단 방법임)
1. 오염되지 않은 지역의 민들레 꽃을 따 모은다.
2. 오븐을 150°C(300°F)로 예열한다.
3. 민들레를 물로 재빠르게 헹궈서 흙을 제거해준다.
4. 오븐 팬에 마른행주나 베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꽃을 얌전하게 놓아준다.
5. 예열된 오븐에 넣고, 온도를 보온으로 맞춘다. (보온이 없으면 가능한 최저 온도)
6. 한 시간 후에 꺼내어 바삭하게 말랐으면, 실온에 다시 한 시간 정도 뒀다가 병에 담아 보관한다.
(덜 말랐으면, 한 20분 정도 더 말린다.)
7. 준비된 민들레를 찻잔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서 차로 마신다.
※ 주의: 열처리 안 하고 그냥 말리면 민들레 홀씨가 되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