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가 모종들이 잘 견뎌내길..
밴쿠버 지역 날씨는 주야장천 비가 오기로 유명하고, 게다가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그래서 화창하던 날씨를 뒤로 하고 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아, 또 추워지는구나, 에이!" 그랬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바로, 밭에다가 이것저것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4월에 열흘 정도 너무나 따뜻한 날씨가 이어질 때에도, 갑작스럽게 추워질 것을 우려하여 모종을 밭에 심지 않고 잘 버텼는데, 이제 5월 중순이고, 일기예보상으로도 괜찮아 보이길래, 지난 주에 호박과 고추, 가지, 토마토, 깻잎 등을 텃밭에 심었다. 날씨는 마치 여름처럼 뜨겁게 달려갔다.
그래서 점심도, 간식도 데크에 앉아서 먹었고, 심지어 저녁때에도 집에서 딴 상추를 놓고, 데크에 앉아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할 만큼 화창하고 온화했다. 그러더니만...
일기예보가 갑자기 변화하면서 이번 주 최저 기온이 4도, 5도.. 이렇게 뜨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제 저녁 갑자기 바람이 바뀌더니 비가 거세게 오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낮에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이것저것 분갈이하고, 뒷산 자락도 정리하고 마당 정비도 했건만... (도대체 마당에 한 번 나가면 집안으로 다시 들어오기가 힘들게 일이 줄줄이 이어진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내다보니, 이대로 앉아서 밥 먹어도 될 날씨가 아니었다. 추위에 상관없이 일찍부터 자리 잡고 있던 상추나 래디시나 이런 것들은 괜찮은데, 온실에서 자라다가 최근에 심은 애들은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였기 때문이다.
원래, 고추나 토마토 깻잎... 이런 것들은 열대성 작물이다 보니 날씨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쉽게 냉해를 입는다. 그러면 아예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며, 간혹 잘 살아남아서 멀쩡하게 크는 것 같이 보여도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작년에도 멀쩡해 보이는 토마토 2개가 전혀 열매가 달리지 않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저녁 짓다 말고 남편이랑 나는 시커먼 마당으로 부랴부랴 뛰어 나갔다. 우유통 밑 뚫어서 얹어주고, 모자라는 것은 화분 큰 거 뒤집어 씌우고... 호박은 어쩌지? 그러다가 마침 스티로폼 박스 쓰려다가 안 쓰고 있어서 버릴까 말까 하던 거 있어서 그거라도 엉성하게 뒤집어 씌웠다.
오전에 비 개이고 나가보니, 밤새 잘 버텨준 거 같다. 현재 기온 보니 12도, 이 정도면 열어줘도 되겠다 싶어서 콧바람 쐬어주어야지 싶어서 뚜껑을 열어줬다.
온실 상황은 어떤가 하고 열어보니, 이를데없이 온화하구나! 이럴 때 온실 지은 보람이 팍팍 든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밖에 옮겨 심지 않고 둔 작물들이 아직 꽤 있다. 망가질 때를 대비하여 토마토도 고추도 챙겨놓았고, 오이는 아직 안 심었다. 주말에나 심을 요량이었는데 역시 그리 생각하기를 잘한 것 같다.
세상에 공짜는 아무것도 없다. 모종 하나를 만들어도, 날씨에 따라서 밖에 내놨다 안에 들여놨다 강아지 산책시키듯 반복하고, 또 땅에 심고 나서도 날씨를 체크하고 이렇게 갑작스레 뚜껑을 씌워주는 날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를 쓰면 그 보람이 있는 법. 요새는 상추와 갓을 수시로 따다가 상에 올리고, 어제 처음으로 래디시를 하나 꺼내봤다. 씨를 뿌린 지 한 달이 넘었으니 안 그래도 궁금해서 살짝씩 엿보고 있었는데, 남편이 성큼 하나 뽑아 들었다! 잎이 하도 무성해서 별 기대 안 했는데, 요렇게 귀엽게 자라고 있으니 조만간 수확해도 될 것 같다. 대충 물로 씻어 먹어보니 맛도 연하고 좋다. 남은 잎은 그대로 들여와서 어제 저녁 된장국물 끓이는 데에 넣어버렸다.
뿌린 만큼 거두리...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뿌려야 거두리... 이것은 맞는 말인 듯! 어서 다시 날씨가 풀려서 안정적인 농사 시즌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