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갈증이 해소된 기분이야
나는 쇼핑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특히나 사지 않을 물건을 윈도쇼핑하는 것은 더더욱 재미가 없다. 내가 살 것에만 관심이 가는 성격이다. 그래서 고가의 물건에 큰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살만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안 들기 때문이다. 명품백이나 옷, 신발 등등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좀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이기 때문에 기능이 좋은 것이 하나 있으면 그 이상은 별로 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이라면 마음이 확 끌려서 자꾸만 살펴보게 되기도 한다. 나는 얼리 어답터에 해당되기 때문에 획기적인 실용품 신상이 나오면 몹시 갖고 싶어 하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요즘은 가드닝 관련 쇼핑에 꽂혀버렸다.
달러 스토어에서 단돈 3불에 도기 화분을 사면 막 신이 나고, 2달러짜리 원예 장갑을 두 켤레 한꺼번에 사서, 여기저기 흘리고 다녀도 되면 막 사치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좋다.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 나타나면 좀 가격이 나가도 선뜻 지갑을 열기도 한다. 최근엔 씨앗 발아에 도움을 주는 히팅 매트를 사서 신나게 잘 쓰기도 했다.
그중에서 맨날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마음이 끌리는 것은 역시 모종과 씨앗이다. 하지만 늘 자제를 하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늘 갈증이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랑 장 보러 나갔다가도, "우리, 화원에 들릴까?" 하면서 씩 웃으며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가서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많이 자제를 하곤 했는데, 어제는 혼자 가서 그랬는지 그냥 확 질러버렸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남편을 직장에 태워다 주고 차를 쓰게 된 날이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화원에 들렀다. 원래 사고 싶었던 것은 Scarlet Runner라고 불리는 강낭콩의 한 종류인 씨앗인데, 화려한 꽃이 피어서 관상용으로도 일품인 콩이다. 얼마 전에 텃밭 회원에게 좀 얻었는데, 히팅 매트가 고장이 나면서 열이 너무 높아져서 아무래도 씨앗을 찜 쪄먹은(!) 것인지 발아가 되지 않았다. 원래 키우려던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그렇게 실패하고 나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화원에 들러서 찾아냈다.
그러나 쇼핑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지 않는 법. 어느새 내 손에는 열개 가량의 씨앗이 들려있었고,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얼른 추리고 추려서 종류를 줄이고 다섯 개만 들고 화원을 나섰다. 물론 꽃도 좀 사고 싶었지만, 그 화원은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나는 거기서는 좀처럼 꽃을 사지 않는다.
꽃을 못 산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작은 화원으로 차를 돌렸다. 이곳은 직접 모종을 재배해서 자기들만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로컬 화원이다. 규모는 작지만, 대량으로 떼어다가 파는 모종이 아니다 보니 다른 곳과 차별화된 가격과 아이템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여기서는 빨리 사지 않으면 금방 품절이 되기 때문에 미루면 못 사게 되어서 마음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다년생 코너를 살펴보니, 전에 사고 싶다가 못 산 푸른 루핀(lupin)이 하나 있었고, 라일락 나무 모종도 작은 게 있었다. 그리고 예쁜 꽃이 피는 헤더(heather)까지 골라 들었다. 모두 일반 화원의 반값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일년생 꽃 코너가 있다. 작은 모종 화분에 4개씩 꽃이 들어있는데, 2천 원 남짓 한다. 그걸 판으로 하나를 채우면 12개가 들어가는데, 그게 2만 원. 그러면 결국 모종 하나에 500원이 안 되는 셈이니 캐나다 물가에 이처럼 저렴하기는 쉽지 않다. 요새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 꽃바구니 값도 너무 올랐는데, 이렇게 한 판을 사도 꽃바구니 하나 값도 안 된다!
캐나다에서는 집집마다 현관 앞이며 베란다며 여기저기에 꽃바구니를 걸어두어 장식하는데, 이걸로 꽃바구니를 만들면 7~8개는 족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꽃바구니가 그렇게 모아서 만든 것이다. 색색의 페투니아(petunia)와 알리섬(alyssum)으로 꾸몄는데,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하니 좀 더 지나면 흐드러져서 밑으로 늘어지며 더 예뻐질 것이다.
신이 나서 구경하던 나는 결국 이 꽃 저 꽃을 골라가며 한판을 채워냈다! 그러고는 계산대에서 점원에게, "나 오늘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뒤에서 기다리던 다른 손님이 "I know!(맞아, 나도 공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집에 와서 마당에 내려놓고 보니 기분이 참으로 좋구나. 베고니아(begonia), 임페이션스(impatiens), 루핀(lupin), 그리고 이름도 처음 보는 꽃들까지 더해져서 모두 48송이의 꽃을 사들고 왔더니, "아, 이제 정말 살만큼 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만큼 샀으니 더 이상 꽃이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화원에 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산거 같다. 쇼핑 중독이 진정되는 기분이랄까?
뒷산 쪽을 꽃으로 채우고 싶은데, 발아시킨 꽃들은 하염없이 더디 자라서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었다. 이제는 꽃밭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지난번에 몇 개 사두었던 것이랑, 내가 발아시킨 꽃들까지 가세를 한다면 만족스러운 꽃밭이 될 것 같다. 이 꽃들은 대부분 일년생 화초들이지만, 이렇게 잔뜩 심어두면, 알아서 꽃씨를 퍼뜨리고 내년에 또 새로 돋아날 것이다.
이게 내가 요즘 부릴 수 있는 가장 사치이다. 2만 원 쇼핑하고 이만큼 행복하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채송화도 봉숭아도 분꽃도 한창인 정원,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