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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25. 2021

나는 가드닝, 남편은스테이크를...

내 평생 가장 럭셔리하게 사는 중

어떤 날은 마당 수확으로 한식, 곤드레 나물을 먹고, 또 어떤 날은 똑같이 수확해도 양식으로 먹기도 한다.


남편은 집안일을 여자 일과 남자 일로 나누지 않는다. 당시에 일을 할 여건이 되는 사람이 일을 하면 된다. 서로 아무것도 푸시하거나 눈치 주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면 서슴지 않고 요청할 수 있다. 요새 내가 마당에 나가서 이것저것 하느라 분주하니 남편이 많이 봐준다. 사실 마당 일이라 해도, 어느 것도 꼭 해야 하는 일은 없고, 나 좋아서 하는 일이니, 다른 거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잡초를 뽑아도, 뒷산의 돌밭을 개간해도, 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남편은 종종 묻는다. "재미있어? 그러면 됐어." 텃밭 일도 내가 의무감에서, 또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꽃을 뜯어먹는 민달팽이를 보고 내가 부르르 떠는 모습도 재미있어하는 남편이다. 사실 뭐가 진짜 화나겠는가. 다 이게 자연의 일부인 것을...


마당을 함께 둘러보다가, 상당히 키가 커버린 케일을 보고 남편이 잘라버리자고 말했다. "오모나! 이제 예쁘게 꽃 피었는데, 씨 받아야지."라고 대답했지만, 이미 키가 멀대같이 올라오는 단계를 넘어서 앞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곧 바닥에 드러누울 눈치였다. 다시 보니 아래쪽에도 꽃대가 올라오고 있어서, 중간 어드메쯤 잘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뒤에서 샐러드 감을 수확하고 있다.


그래서 썩둑! 잘라내니 쓰러져가던 케일은 다시 가볍게 우뚝 선다. 그리고 잘라낸 이 나무 같은 케일, 이걸로는 뭘 하지? 맞다, 케일 꽃은 먹을 수 있다고 했지. 그래서 비료 통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신 부엌으로 따라 올라왔다. 잎은 뜯어서 볶아 먹거나, 쌈 싸 먹을 때 하나씩 넣으면 맛있고, 꽃은 샐러드에 쓰면 딱 좋겠다 싶었다. 



이 날도 종일 분주했다. 날씨가 잔뜩 흐려있었고,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뒷마당 바깥쪽 산에도 꽃들을 좀 심어주었다. 그리고 앞마당에서는 시들은 물망초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일년생 꽃들을 좀 심어줬다. 지난번 쇼핑의 아이템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물망초 자리에 들어온 버베나(verbena)


저녁때가 되어오도록 내가 마당에서 들어올 생각을 안 하니, 남편이 빼꼼히 내다봤다. 


"내가 해준 거 아무거나 먹을 거야?" 이 말은 남편이 저녁식사 차리겠다는 전형적인 멘트이다. 한국에서는 "남이 해준 밥이 최고 맛있다"는 말이 돌아다니지만, 나는 남편이 해준 밥이 최고 맛있다. 


잔디 씨 뿌린 곳에 물을 주고, 뒷산에 가자니아 꽃을 거의 다 심었을 무렵, 저녁이 준비되었으니 올라오라고 남편이 불렀다. 뒷산에 심던 것에 흙을 마저 다독여주고 부지런히 올라갔더니, 내가 좋아하는 버섯소스를 만들고 있었다. 


샐러드는 이미 준비가 거의 다 된 상황이었다. 마당에서 수확한 래디쉬, 상추, 적갓, 케일 잎, 시금치, 바질이 들어간 샐러드였다! 내가 올라오자 그것들을 소스와 버무렸다. 남편의 앤쵸비 소스 샐러드는 언제나 일품이다. 남편이 스테이크 소스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샐러드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케일 꽃을 살짝 씻어서 얹었다. 일은 남편이 다 하고, 나는 그냥 얹기만...



그리고 바로 버섯크림 소스가 완성되어 스테이크 위에 얹어졌다. 크리미 한 소스가 스테이크를 덮고 있기 때문에 별달리 장식할 필요도 없었지만, 접시에 스테이크만 담으면 안 예쁘다고, 남편은 껍질콩도 데쳐서 버터에 버무려 올렸다. 나는 씻어 놓은 케일 꽃을 옆에 얹어서 분위기를 돋웠다. 



그러자, 파슬리가 빠졌다며, 얼른 데크에 나가서 잎을 따다가 추가로 얹어주는 남편. 대충 차리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식사 전에는 항상 손을 잡고, "Thank you."라고 말한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잘 먹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는 것과 같은 절차이다. 샐러드를 입에 넣으니, 여러 가지 푸성귀가 한데 어우러져서 풍미가 가득했다. 적갓의 매콤한 맛과, 바질의 향긋함, 부드러운 시금치... 거기에 케일 꽃까지 풍성한 맛이었다. 케일 꽃은 케일 맛이었다. 하지만 부드럽고 친절한 맛이랄까? 


스테이크는 뭐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소고기는 항상 옳지 않은가 말이다. 풀 먹인 소라서 지방이 적은 등심부위인데, 그 위에 촉촉한 버섯소스가 있으니 정말 딱 어울렸다. 그리고 반은 눈으로 먹는 저녁식사의 색감은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었다.


수확이 한 가지씩 두 가지씩 늘어가면서 상위에 올라오는 것들이 늘어난다. 좀 지나면 토마토도 깻잎도 가세를 하겠지? 텃밭의 풍성함이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삶이 행복하고, 항상 배려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어느 호텔의 고급 식사도 부럽지 않다. 


나는 지금, 내 평생 가장 럭셔리하게 사는 중이다.






* 버섯소스 레시피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급하게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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