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재료 이용해서럭셔리해 보이게구워보자
이틀째 태양이 이글이글한다. 농사는 날이 추워도 걱정, 날이 뜨거워도 걱정이다. 바깥에서는 마당의 야채들이 햇볕에 구워지고 있었다. 그럴 거 같아서 아침에 물을 미리 주긴 했는데, 그래도 기진맥진한 야채들이 종일 축 늘어져있었다. 이렇게 뜨거울 때에는 물을 주면 안 된다. 그러면 스팀으로 찜을 하는 효과가 난다. 그리고 잎에 맺힌 물방울들이 돋보기 역할을 해서 잎이 다 타 버린다.
다른 것들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최근에 옮겨 심은 오이가 걱정이 되었다. 오이는 유난히 예민한 편이다. 결국 가리개를 엉성하게라도 세워주었다. 직사광선만 막아줘도 다시 기운을 차리는 것을 보면, 아무리 분주해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낮에는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미개봉 코티지치즈가 있어서 간단하게 달걀만 섞어서 치즈파이를 구웠다. 블루베리 냉동실에 있던 것을 넣었는데, 코티지 질감이 쫄깃하게 살아 있어서, 차라리 식사가 되는 종류의 파이를 구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한 번 실험해봐야겠다.
그렇게 종일 종종거리며 바빴는데, 오후 5시가 넘어서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비씨 전력에 검색해보니, 원인을 찾는 중이라고만 떴고,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환한 시각이니 별로 걱정은 없었다. 다만 날씨가 워낙 뜨거워서 냉장고가 걱정될 뿐.
남편은 작은 방을 페인트 칠 하느라 분주했다. 몇 달을 미루다 시작해서 남편은 마음이 바빴다. 손을 댔으니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그간 색을 고르느라 한 참 지났고, 그러다 보니 미루어진 것이었다. 남편은 바쁘니 오늘 저녁식사는 내가 해야지 생각하다 보니, 며칠 전 세일한다고 사다 놓은 포르토벨로(portobello) 버섯이 생각났다. 귀한 것 사다가 상해서 버리지 말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남편에게 저녁 어떻게 할까 하고 물었더니 소시지 해동해 놓은 것이 있으니 바비큐 해 먹자고 했다. 어차피 전기가 나가서 주방에서는 조리가 불가능하니, 그러면 모든 것을 바비큐 그릴로 해결해야겠다 싶었다.
포르토벨로(portobello) 버섯은 큼직한 갓을 가진 밤색의 버섯인데 깊은 맛이 나며, 가격이 비싼 편이다. 우리는 간혹 마트에서 세일을 할 때 구입을 한다. 그냥 썰어서 일반 버섯처럼 사용해도 풍미가 좋지만, 그 자체로 한 끼의 식사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든든한 식재료이다. 사진 상에는 커 보이지 않지만, 도마 위에 저렇게 4개 놓으면 꽉 차는 크기이다.
이 버섯의 속을 파 내고 이것저것 채워서 구울 것이다. 기둥도 뽑아내고 안쪽을 숟가락으로 대충 파 낸다. 기둥의 지저분한 부분은 잘라내고, 나머지 부분들을 모두 종종 다져준다.
정전이니, 속재료를 뭘 쓸지를 미리 머릿속으로 굴려본 후, 냉장고 문 여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재빠르게 이것저것을 꺼냈다. 버섯 속재료는 그냥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구성을 하면 되고, 사실 계량도 별로 의미가 없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입맛에 따라서 준비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양파, 마늘, 피망 등을 넣어 촉촉하면서도 기본 맛이 들게 하는 편이다. 거기에 베이컨이나 치킨 남은 것 같은 것을 추가하면 좋은데, 나는 냉동실에 있던 새우를 다져서 넣었더니 맛있었다. 재료가 잘 엉겨 붙게 하려면 달걀과 치즈가 들어가 주면 된다. 빵가루도 좀 넣어주면 좋은데, 나는 글루텐프리 식빵의 가장자리를 구워서 갈아놓았다가 사용한다. 그리고 향신료가 될 수 있는 허브를 넣어주면 좋다. 나는 로즈메리를 다져서 넣었는데, 깻잎이나 미나리, 또는 부추를 넣어도 향이 좋을 것 같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거기에 더해서, 취향에 따라 발사믹 비니거를 조금 사용해도 좋다.
이렇게 되는대로 다져서 넣고 대략 골고루 섞어준 후, 숟가락으로 퍼서 버섯에 올려준다. 마지막으로 위에다가 치즈를 좀 더 올려주면 좋다.
내가 버섯을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페인트 칠을 더 하고 싶지만, 정교한 작업을 하기에 너무 어두워서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소시지(English banger)를 꺼냈다. 뭔가 바비큐용 소스를 바르고 싶다더니, 한국식으로 해보자고 말했다. 그렇다면 갖은양념이지. 그래서 간장에 파 마늘 양파 다진 것 넣고,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추가했더니 순식간에 그럴듯한 소스가 되었다. (계량을 전혀 안 해서 레시피 초난감!)
남편은 바비큐를 켜고 소시지를 먼저 굽기 시작하였고, 잠시 후에 버섯이 윗자리로 올라갔다. 직화로 구우면 다 타버릴 테니, 이렇게 불과 거리를 둬서 얹은 후, 뚜껑을 덮어서 구우면 된다. 보통 이 버섯구이는 오븐에다가 하는데, 오늘은 오븐을 사용할 수 없으니 이렇게 바비큐 그릴로 올라간 것이다. 오븐 175°C (350°F) 정도에 20분 정도 구우면 된다.
시각은 이미 7시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서머타임 시간제 덕분에 9시까지 어둡지 않아서 데크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식탁을 닦으며, 밝은 날씨에 감사했다. 옆에서는 서양 부추 차이브(chive) 꽃이 한창이어서 기분을 돋워줬다.
이럴 때면 집에서 먹는 분위기가 외식 레스토랑보다 좋다는 생각이 든다. 꽃이 있고, 새가 있고, 그리고 우리만의 호젓한 시간이니, 원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껏 즐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어제는 정전이 되어서 음악은 없었다. 대신에 새소리와 함께 선선한 저녁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가고, 저녁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다.
버섯 위에는 파슬리를 추가로 얹었더니 색이 더 예뻐졌다. 수분이 버섯 컵 안으로 빠져들면서 겉이 약간 쪼글쪼글 해진 모습을 보니 다 익은 것 같았다. 소시지는 그릴 마크 위로 추가 양념이 얹어져서 더욱 그럴듯해졌다.
소시지는 짭조름하면서 파와 양파가 살짝 씹히고, 간장의 풍미가 올라왔다. 버섯은 속에 있는 모든 재료들이 다 촉촉하게 살아있었고, 새우도 씹히고 치즈도 살짝 늘어지면서 고급진 맛이 났다. 스테이크 먹듯이 칼로 썰어서 우아하게 한 입씩 입에 넣고, 음~ 하고 음미하는 소리를 내며 먹으면 더 맛이 좋다. 하하!
이렇게 해서 어느 정전된 날의 저녁식사는 뜻하지 않게 더 분위기 잡는 식사가 되어버렸다. 이제 여름이 왔으니 이런 시간이 더 늘어나겠지. 저녁 먹고 나서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고, 전기는 새벽 2시 반에야 들어왔다.
세팅만 잘하면 만들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분위기 내고 먹기에도 좋은 식사이다. 한국식이라면 옆에 밥과 김치를 조금 곁들여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샐러드와 함께 서빙해도 좋다. 아래 레시피는 내가 사용한 것을 기준으로 하였으나, 포르토벨로 버섯이 없다면 양송이를 이용해서 작게 여러 개 만들어도 좋고, 바비큐 대신에 오븐을 사용해도 좋다.
4인분(메인 식사에 곁들임)
내가 사용한 재료:
포르토벨로 버섯 4개
달걀 1개
양파 1/4개, 다져서 준비
마늘 1쪽, 다져서 준비
색 피망, 조금씩 다져서 준비
할라피뇨 고추 반개, 다져서 준비
빵가루 2큰술
치즈 1/2컵, 다져서 준비 (취향에 맞는 치즈로 선택)
로즈메리 3줄기 (옵션)
냉동새우(대) 4개
소금, 후추 적당히
기타 사용 가능 재료:
다진 베이컨, 닭가슴살, 불고기 남은 것 등등의 육류
사용하고 남은 냉장고 속 야채, 토마토, 시금치 등등
좋아하는 허브, 깻잎이나 타임, 오레가노 등등
취향에 따라서 간장 소스나, 발사믹 비니거, 고춧가루나 고추장, 핫소스
만들기:
1. 버섯은 흙이 없게 씻어준다.
2. 기둥과 속을 파 낸 후, 종종 썰어준다.
3. 모든 재료를 종종 썰어주거나 다진다.
4. 버섯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한 군데 넣고 고루 섞어준다. 치즈는 조금 남겨둔다.
5. 소금 후추로 적당히 간을 한다.
6. 재료를 버섯 안에 담아주고, 위에 치즈를 솔솔 뿌려준다.
7. 파슬리나 차이브를 위에 추가로 뿌려준다.
8. 175°C (350°F)로 예열한 오븐이나 바비큐에 넣고 20분간 굽는다.
9. 따끈할 때 서빙한다.
재료:
굵은 소시지
간장 1/4컵
파, 마늘, 양파 다져서 적당히
참기름 1큰술
후추 약간
고춧가루 약간
만들기:
1. 소스 재료를 모두 섞은 후, 소시지를 재어 둔다.
2. 바비큐 그릴에 올려서 중불로 한 면을 구운 후, 뒤집어서 나머지 소스를 얹어주고 마저 굽는다. 20~30분
3. 따뜻할 때 서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