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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14. 2021

자연과 가까워서 위험하기도

그래도 자연에 가까이 사는 게 좋다

우리 집 뒷마당은 산과 이어져있다. 그래서 부엌문을 열고 뒤쪽 데크로 나가면 산의 풍경이 마치 우리 집 앞마당인 것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공기도 좋고, 늘 푸르름을 시야에 넣을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 그래서 많이들 부럽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꼭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두 주일 전쯤이었다. 저녁을 먹고 치운 후였는데 갑자기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뭔가 큰 것이 넘어지거나 한 것 같은 소리였다. 


"뭐지? 곰이 데크까지 올라온 것일까?"


요새 날이 서늘해지면서 곰의 방문이 부쩍 늘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비가 와서 더욱 깜깜한 밤이었는데, 고요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바닥에 바비큐 도구들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조롱조롱 걸어놓은 것들이라 동물이 친다고 해서 그렇게 3개가 다 떨어질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이상하다 싶었다. 그 순간 남편이 "오, 세상에!"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다시 보니 커다란 나뭇가지가 데크 난간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은 뒷산과 연결되어있어서 오래된 나뭇가지들이 종종 떨어지는데, 우리 집 마당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보통 잔가지들이고, 길면 팔뚝보다 좀 긴 것도 있는 정도였는데, 이 가지는 데크의 난간을 모두 덮을 만큼 컸다. 나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가까이 가보았더니, 새로 지은 난간이 부서져있었고, 그 옆의 화분의 깻잎도 부러져 있었다. 쇠로 된 바비큐 그릴은 움푹 파여있었다.


우리는 이 데크에 앉아서 식사를 하거나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는데, 만일 우리가 앉아있을 때 떨어졌으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떨어지는 가지에 맞았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안 그래도 내가 거의 일 년 전부터 이 나무가 높이 자란 채 휘어 있어서 우리 데크에 걸쳐 있는 것이 무섭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이런 사고가 터지다니...


난간을 뒤덮은 나뭇가지. 뒤편 중앙에 문제의 나무가 보인다.


아침이 밝은 후에 나는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우리 동네는 시에서 관리하지 않고, 아파트 단지처럼 따로 관리가 되는 곳이다. 그래서 이런 일은 관리소에 연락을 해서 처리를 해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자기 집에 있는 나무라 해도 개인이 허가 없이 마구 자르면 안 된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허가가 나오겠지만, 우리 집의 경우, 이런 일은 관리소에서 해결해준다. 관리 구역에서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치거나 지붕이 부서지거나 하면 그들의 책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데크에서 사진을 찍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나뭇가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데크 난간을 모두 덮은 것으로도 부족하여, 땅에까지 길게 드리운 나뭇가지를 보는 순간, "운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크에서 본 부분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참 특이하다. 전날 밤에 난간이 부서진 것을 보면서는 "운이 나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나뭇가지인 것을 확인하고 나니, 피해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이 너무 감사하였고, 정말 운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니 말이다.


우리 집 데크로 드리운 이 나무는 높이가 어림잡아 20~30미터 정도 되는 미루나무이다. 위쪽의 5미터 정도는 활처럼 휘어있었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었다. 미루나무는 원래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무가 이 정도의 키를 자랑하는데, 이렇게 크고 나면 위쪽까지 영양 공급이 잘 되지 않아서 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일이 흔한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 마당에는 늘 자잘한 가지들이 떨어져 있곤 하는데, 최근 들어 큰 가지가 여러 번 떨어졌었다. 더구나 이 지역은 일 년의 대부분이 비가 오는 기후여서 나뭇가지가 썩기도 쉽다.


우리 집을 덮고 있는 세 그루의 나무들


이 나무뿐만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더 큰 나무도 두 그루가 더 있다. 사실은 한 그루인데, 밑에서부터 갈라져서 자라서 두 그루처럼 보이고, 엄청 굵고 훨씬 웅장하다. 이 나무도 우리 집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는데, 더 많은 가지가 떨어지고 있다. 


관리소에 보고 하려니 나무가 너무 커서 사진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웃집에 이야기해서, 옆집에서부터 찍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당장 보고를 했고, 며칠 후에, 친구가 놀러 와서 데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나무 자르는 회사 직원이 나와서 나무의 상태를 체크했다. 


나무가 휜 모양이라든가 상태를 면밀히 보길래, 나무를 일부만 자를 것인지, 아니면 전체를 자를 것인지 물었다. 대답은, 관리소에서 결정을 할 거라고 했다. 아무래도 비용에 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나무를 자르는 비용은 정말 많이 든다.


그러고는 일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마음이 초조했다. 이러다가 더 큰 가지가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 이후에도 아주 큰 가지가 하나 떨어졌는데, 그것은 마당으로 떨어져서 화초가 조금 다친 것 이외에 다른 피해가 없기는 했지만, 이 일로 남편은 다시 관리소에 전화를 했고, 나무 자르는 회사에서 일주일 내에 방문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고 지난 화요일, 아침 8시경에 벨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무 자르러 온 것이다. 마음의 준비가 없이 맞이하게 된 나무 자르기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한 그루만 자를 것이라고 했다. 우리 데크로 많이 기울어 있는 나무가 제일 급해 보였다. 나머지 붙어있는 두 그루는 좀 더 면밀히 검토한 후에 자르겠다고 했다.


사실 이 나무는 정말 높지만, 삐죽하게 길기만 한 데다가 그리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어떻게 자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무를 자르는 과정은 상당히 위험하므로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경고의 말이 있었기에 나는 얌전히 부엌 안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이 큰 나무를 자르기 위해 단 두 명이 왔다. 이렇다 할 장비도 없었다. 크레인 같은 것을 가져온다 해도, 우리 집 뒷마당 가는 길은 너무 좁아서 어차피 들어올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사람이 맨 몸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명은 아래서 보조를 하고, 다른 한 명이 나무를 탔다. 놀랍게도 단 두 개의 로프를 이용해서 몸을 고정하고 조금씩 올라가면서, 아래쪽에 있는 잔가지부터 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가지가 모두 제거된 이후부터 본체를 위에서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저 두개의 끈으로 너무나 편안하게 매달려 있다. 보이지도 않을만큼 높은 저곳은 이미 상당부분을 잘라낸 이후였다.


나무 자르는 데에 걸린 시간이 거의 다섯 시간이었다. 세상엔 참으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 덕분에 우리가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감탄할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단지 커피라도 마시겠느냐고 해서 제공할 뿐... 


두 사람이 일을 하다가, 다른 곳에서 일을 마친 두 명이 더 와서 합류하여 모두 4명이 함께 일을 했다. 잘라 낸 가지들을 앞으로 끌어내서, 그들이 가져온 트럭에 갈아서 넣었다. 우리가 나무칩이 좀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커다란 통에 하나를 따로 담아주었고, 이웃집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몇 개만 달라고 했더니, 얌전하게 들어가 집 마당에 가져다주었다. 다소 투박한 듯한 그들이었지만, 예의가 바르고 친절했다. 


이웃집을 위해 챙겨준 나무들. 모든 나무들이 이렇게 짧은 조각으로 잘라져서 아래로 던져졌다. 
잔디밭의 검은 부분들이 나무가 떨어져 패인 곳들이다. 그리고 나무 그루터기가 휑하니 남았다.


베어내고 나니 시야가 훌쩍 넘어졌다. 유독 이 나무 한 그루만 우리 마당 안으로 들어와서 우뚝 솟아 있었는데, 이제 그루터기만 남았다.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왔다. 작년엔 콩을 심어 나무를 타고 올라갔고, 올해는 나팔꽃을 심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루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중심에서 살짝 빗겨 난 곳이 썩어 있었다. 결국은 죽게 될 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편안하게 보내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때 퇴근해서 온 남편과 함께 와인을 따라서 나무의 주변에 뿌려주었다.


술을 뿌리는 것이 남편에겐 생소한 일이었지만, 캐나다에 살아도 한국식으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남편도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 물론 자르기 전에 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갑작스레 나무 자른다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함께 해서 즐거웠다고, 편히 잠들라고 말해주면서 남편의 눈가에도 눈물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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