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만 하면 되던 여름이 쉬웠다!
날이 확 추워지면서, 곧 서리가 내릴 태세인지라 이제는 정말로 수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뒷마당의 나무를 잘라내면서, 그때 떨어진 잔재로 이미 많은 것들이 부러진 상황이어서 여간 어수선해 보이지 않았기에, 텃밭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모든 것이 무성하던 여름의 푸르름이 가고, 하나둘씩 정리하는 마음이 어쩐지 쓸쓸하지만, 그렇다고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 광역 밴쿠버는 가을에 계속 비가 오기 때문에, 날이 반짝 개는 날 후다닥 일 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부러진 고추 가지들을 정리하면서 고춧잎을 보니, 고추만 딸 일이 아니라, 고춧잎도 따야지 아깝지 않겠다 싶었다. 어차피 줄기는 뻣뻣해서 못 쓰고 잎만 쓸 요량이니 서늘한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잎을 모아 땄다.
할라피뇨, 오이 고추, 꽈리고추, 이름도 모르는 서양의 매운 고추까지 종류별로 나눠 담으면서, 잎은 그냥 다 한데 모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깻잎을 정리했다. 남아있는 꽃대는 꽃대 대로 모으고, 잎은 잎대로 모으고... 서리 맞기 전에 치우고 싶어서 일을 하지만, 어쩐지 좀 이른 감이 있어서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깻잎은 예쁜 대를 잘라 모아서 화병에 꽂았다. 푸르른 생기가 가득한 화병이, 마치 한여름처럼 상큼하여 기분이 좋아졌다.
토마토는 아직도 덜 익은 것들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비가 오니 검게 썩어 들어가는 병충해가 올 시기이므로 그냥 둔다고 해도 곧 다 상할 것이다. 그래서 그냥 모두 수확했다. 덜 익은 것들 중에서, 익을만한 것들 위주로 모아서 사과 한 개와 함께 상자에 담아두었다. 사과에서 나오는 가스가 토마토의 후숙을 돕는다. 어차피 잎은 먹을 것이 아니니 그냥 그대로 정리했다.
한참 일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지역 텃밭 동호회 회장님이 잠깐만 집 앞으로 나와보라고 하셨다. 예고 없이 선물 보따리를 잔뜩 들고 오신 것이다. 별거 아니라며, 무청 쓰라고 건네주시는데, 무도 제법 달려있었고, 고추도 비닐봉지 한가득, 남편 좋아하는 갓과 챠드 잎들은 부케처럼 예뻤다. 내가 봄에 부탁했던 구근을 주러 들르셨는데, 덤도 한 보따리가 된 셈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차 대접도 못하고 물건만 받고 그렇게 보내드리고, 덕분에, 안 그래도 많던 수확물이 순식간에 늘었다. 지난 주말에는, 고마운 분이 연어 잡았다고 와서 주고 갔는데, 이번엔 텃밭 야채라니! 나누고 사는 마음들이 너무 고맙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주말 동안 갈무리에 돌입했다.
나는 무청 데쳐서 말리고, 남은 무로는 갓을 섞어 넣고 간단한 깍두기를 담갔다. 고춧잎과 깻잎은 어떻게 보관할까 하다가, 손 가장 덜 가게 데쳐서 말리기로 결정했다. 채반이 모자라서 이리저리 밀어가며 말려주었다.
그게 끝나자 그다음에는 고추 부각과 깻잎 꽃대 부각을 만들었다. 역시 이것이 그중 손이 덜 가는 갈무리였다. 고추는 반 갈라서 찹쌀가루 씌워서 쪄서 말렸고, 깻잎 꽃대도 밀가루를 뿌린 후, 적당한 사이즈가 되도록 뭉쳐서, 역시 쪄서 말렸다. 얻은 고추로는 장아찌를 만들었다.
남편은 와중에 연어를 훈제했다. 갈무리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훈제기는 필수다. 고온 훈제와 저온 훈제가 있는데, 이번엔 저온 훈제를 하였다. 이것도 사흘이 걸리는 대대적인 작업이다. 연어는 일단 냉동을 먼저 시켰다가 해동을 한 후, 설탕과 소금 등을 섞은 1차 절이기를 하고, 그다음에 액체 넣어서 하는 2차 절이기를 하고, 다시 말리기 과정을 거쳐서 훈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누가 시켜서 한다면 참 고단한 일인데, 알아서 둘 다 자발적으로 해대니 그저 못 말릴 수밖에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보니 자연 속에서 일을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된다. 자연이 일을 하면, 그 옆에서 거들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 바로 자연 속의 삶인 것이다.
갈무리도 그 삶의 일부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진 우리 한국의 갈무리 방식은 주로 데쳐서 햇볕에 말리는 것인데 반해서, 늘상 비가 오는 이곳의 갈무리 방법은 주로 병조림이나 훈제이다. 그리고 양쪽 나라 공통적 보관법인 발효가 있다.
서양에도 다양한 발효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한국의 김치와 비슷하게 발효되는 사워크로우트가 있다. 남편은 매년 이 사워크로우트를 만든다. 그밖에도 꿀로 하는 발효, 소금물로 하는 발효 등이 보편적이고, 케이크를 만들어도 날이 갈수록 상하기는커녕 맛이 깊어가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크리스마스 푸딩도 있다.
나는 한국식 발효를 담당한다. 여러가지 김치를 담그고, 청국장을 만든다. 이웃집에서 모과를 나눠주면 청을 만들거나 식초를 만든다. 그리고 한국식은 아니지만, 우유로 요거트도 만들고, 크림치즈도 만들고, 워터 케피어 음료도 만든다.
여기에 술도 한몫한다. 남편은 와인과 애플 사이다를 만들고, 나는 막걸리를 만들고... 한국을 떠나면 일거리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반대로 한국에서처럼 쉽게 다양한 것을 구매하기 힘드니 이런 일거리가 오히려 늘어났다. 두 문화가 합쳐진 가정의 갈무리는 다양하기에, 우리의 가을날들은 갈무리로 깊어 간다. 마치, 동화 속 개미가 열심히 일하여 겨울을 준비하듯이...
잎 말리기:
고춧잎이나 깻잎, 곤드레 같은 잎채소들 말려두었다가 사용하면 좋다.
두세 번 깨끗이 씻어준 후, 팔팔 끓는 물에 소금 좀 넣고, 데치듯 짧게 삶아준다.
찬물로 재빠르게 두세 번 헹궈주고, 물기를 짠다.
물기는 너무 꼭 짜지 말고, 양 손바닥으로 꾹 눌러서 짠다. (꽉 쥐어짜면 질겨진다)
채반에 널어서 말린다. 오며 가며 뒤적이며 곰팡이 피지 않게 말린다.
완전히 마르면 밀봉하여 보관한다.
부각:
부각은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씌워서 쪄서 말려 보관했다가 튀겨 먹는 갈무리이다.
고추나 김부각이 가장 흔한데, 깻잎 꽃대나 연근으로 부각을 만들어도 좋다.
야채를 깨끗하게 씻어준 후, 물기를 털어내고 (닦지 않는다) 통에 담는다
젖어 있어야 그 위에 가루가 붙는다
고추는 꼭지 따고, 매운 고추는 씨를 털어낸다. (비닐장갑을 끼고 작업하여야 손이 아리지 않다)
그 위에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뿌린 후, 고루 묻도록 통을 들고 까불어준다.
김 오른 찜기에 올리고, 가루가 투명해질 때까지만 쪄준다. (대략 5~10분)
꺼내서 채반에 겹치지 않게 널어서 말린다.
바삭하게 완전히 말린 후 밀봉하여 보관한다.
먹을 때에는 기름에 빠르게 몇 초간 튀겨낸다.
장아찌
간장물을 부어서 보관하는 방법이다.
고추를 잘 씻어서 물기 없이 말리고, 꼭지 부분은 짧게 잘라준다.
고추에 포크나 이쑤시개로 구멍을 뚫어 간이 잘 스미게 준비한다.
간장:술:식초=1:1:1 간장과 식초를 섞어서 한번 팔팔 끓인 후, 막판에 청주를 넣어 한소끔 만 더 끓인다.
그대로 뜨거운 절임액을 고추에 부어주고, 한 김 식거든 뚜껑을 덮는다.
위로 고추가 떠오르지 않고 누름돌을 눌러준다.
2~3일 숙성시킨 후, 냉장 보관하며 먹는다.
※ 저장법을 간단히 정리하였습니다. 필요하신 분 계시면 좀 더 자세히 나중에 포스팅할게요. 덧글 요청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