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이상한 이 홀스래디쉬(horseradish)는 서양 고추냉이다. 매운맛이 나는 무 같은 뿌리인데, 강판에 갈아서 소스로 사용된다. 와사비나 겨자 같은 종류의 매운맛이 나서, 서양에서는 비싼 와사비 대신 이 뿌리를 갈아서 녹색 색소를 넣어 대신에 사용한다고도 한다. 물론, 원래는 양식 요리에 어울리는 소스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다. 흔히 이미 다 갈아서 병에 담긴 형태로 판매한다.
가장 잘 어울리는 요리는 프라임립 스테이크나 프라임립 로스트가 있고, 그다음에는 생굴에도 썩 잘 어울린다. 내가 처음으로 생 홀스래디쉬를 먹은 것은 남편의 생일 때였는데, 그의 자식들이 음식거리를 모두 장만해가지고 와서, 애피타이저부터 풀 코스로 마련했을 때였다.
생굴을 종류별로 준비해와서는 즉석에서 뚜껑을 따고, 그 자리에서 홀스래디쉬를 강판에 갈아서 서빙했는데,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가끔 이 홀스래디쉬를 먹었지만, 그때는 늘 병에 들어서 판매되는 소스였는데, 이렇게 신선하게 방금 간 것을 먹으니 정말 풍미가 좋고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는 그 이후로 그냥 흐지부지 잊혔는데, 가드닝을 시작하면서 올해 다시 홀스래디쉬를 만나게 되었다. 지역 텃밭 모임 회장님이 연초 어느 날, "홀스래디쉬 관심 있는 분들 계시면 드릴 테니 가져가세요."라는 공지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 글을 보자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오! 저건 득템 해야 해!" 그러면서, 그렇게 신선한 홀스래디쉬를 마당에서 길러서 언제든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하는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봄이 되면서 나는 그 댁에 두릅나무 모종을 구매하러 갔고, 거기서 홀스래디쉬를 얻어오기에 이르렀다.
나는 신이 나서 남편에게 보여줬는데, 남편은 난색을 표했다. 이 홀스래디쉬가 번식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면, 인베이시브(invasive)하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근처 땅을 다 점령하면서 엄청나게 퍼져나가서 나중에 제거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텃밭에 심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시무룩해졌다. 저 맛있는 홀스래디쉬를 키우고 싶단 말이다. 남편도 좋아한다면서 땅에는 안 된다니! 그러나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뿌리가 워낙 크게 자라니 꼭 땅에 심으라던 회장님의 당부를 뒤로 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들어갔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홀스래디쉬를 화분에서도 키우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화분에서 키우기를 장려하기도 하였다. 감당하기 어렵게 번지는 홀스래디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여러 편의 관련 글을 읽고, 유튜브도 여러 편 확인한 후, 우리 집에서 가장 큰 화분에 드디어 이 뿌리를 심었다. 지름과 깊이가 40cm 되는 큰 화분이었다. 이 정도만 자라준다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심은 후 지켜보기로 했다.
홀스래디쉬는 정말 무럭무럭 잘 자랐다. 기름진 흙에 심어줬더니 잎도 윤기가 좔좔 흐르고 아주 탐스러웠다. 이 여린 잎은 잘게 썰어서 샐러드에 섞어도 풍미가 좋다던데, 저 당시에는 잘 몰라서 잎을 먹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어라? 한쪽에 조그맣게 감자 싹이 올라왔다. 어찌 된 일이지?
텃밭 회장님께 여쭤봤는데, 댁에서는 감자를 심은 적이 없다고 하셨다. 어디서 날아온 씨감자란 말인가? 나는 새 거름흙을 털어 넣었으니 먹다 만 감자가 음식쓰레기로 들어갔을 리 없었다. 어찌할까 하다가 그냥 일단 두고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감자가 너무나 신나게 자라기 시작했다.
급기야 주인공의 키를 넘어서는 날이 오고야 말았고,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안 그래도 흙이 점점 꺼져서 분갈이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했기에, 감자와는 작별을 했다. 사실 더 큰 화분이 없었으므로, 일단 통째로 뽑아내고 화분 아래쪽에 흙을 더 넉넉히 채운 후 다시 넣어서, 홀스래디쉬가 크게 자라도록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사진이 없는 것을 보니, 맨날 꽃 사진만 예쁘다고 찍고, 이 녀석은 분갈이 한 이후에 한 장도 안 찍어줬는가 보다. 내가 참 야속하구나!
그렇게 여름이 가고, 이제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이 홀스래디쉬를 어찌할까 하다가, 뽑아서 먹기로 했다. 홀스래디쉬는 추위에 상당히 강한 편이고, 오히려 겨울을 나야 내년에 더 잘 자란다고 한다. 만일 땅에 심었다면 스스로 월동하게 두고, 뽑을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하지만 화분에서 월동시키는 것은 좀 찜찜했고, 오히려 겨울이 춥지 않은 동네면 차라리 이렇게 뽑아서 잘 씻어서 말려 냉장했다가 봄이 채 오기 전에 다시 심으라는 권고가 있었다. 또한 작게 잘라서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하니 수확을 해서 먹고, 남은 것을 심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화초처럼 예뻐서 현관 앞에 데려다 놓았던 이 녀석은 이제 잎이 누레지면서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잎을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정리하려고 뒷마당으로 데려왔는데, 얼마나 무겁던지, 남편이 도구를 이용하여 끌고 왔다.
그리하여 뽑아보려니 꼼짝을 안 했다. 결국 화분을 엎었다. 세상에! 잔뿌리가 잔뜩 엉켜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다. 이래서 사방으로 번진다는 소리를 하였구나 싶었다. 손으로 흙을 분리하려니 잘 되지 않아서 물을 뿌리면서 해체를 하였다.
그런데?? 저 동그란 것은 무엇이지? 맞다. 싹을 다 뽑아냈던 감자가 한 덩어리 그 안에서 혼자 살아남아 나름 조금 자란 것이었다. 생명은 정말 신기하다! 땅에 놓고 물을 뿌리다가, 쪼그리고 앉아서 흙을 파내다가, 결국은 나무에 매달고 다시 물을 뿌려가며 흙을 제거했다. 감자도 분리해냈다.
드디어 뿌리의 윤곽이 드러났다. 두 개처럼 생겼던 이 홀스래디쉬의 뿌리는 엉킨 뿌리를 풀고 또 풀어도 결국 하나였다. 위의 머리는 두 개, 그러나 아래의 뿌리는 모두 한 식구였던 것이다. 갈래갈래 갈 길은 각자 다양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나는 당근의 확대판 같은 모양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었는데, 복잡한 인삼 뿌리도 아니고, 정말 기괴했다. 한국 같으면 이대로 큰 유리병에 담아서 소주를 부어 장식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당에 있는 싱크대에서 몇 번을 씻고 또 씻어 흙을 완전히 제거한 후 부엌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뿌리가 더 굵을 것을 기대했는데, 판매되는 뿌리보다 가늘어서 좀 아쉽다. 하지만 잔뿌리를 하나 씹어보니 엄청나게 매운 것이 아주 제대로였다!
위의 녹색 부분을 마저 잘라내고 그대로 하루를 말렸다. 그러고 나서 비닐봉지에 엉성하게 담아서 냉장실로 보냈다. 이렇게 보관하면 6~8개월 정도 상하지 않고 보관하며 그때그때 꺼내서 갈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봄이 되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심으면 된다 하니, 편한 마음으로 일단 냉장고로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갈아서 뭔가랑 먹고 싶지만,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홀스래디쉬야, 상하지 말고 잘 견뎌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