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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02. 2022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한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살기를!

나는 부업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나는 뭐든 파는 데에 별로 재주가 없어서, 수업 홍보를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큰돈이 되지는 않지만, 내가 이것을 손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가 정말 쉽지 않아서 어디서도 도움을 받기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영어를 웬만큼 하는 사람들은 사실 굳이 배우러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독학으로 영어실력 향상이 가능하다. 요새는 유튜브에도 좋은 강좌가 많고, 도서관에도 영어 원서가 넘쳐나니 가서 빌려서 다독하면 된다. 온라인에도 영어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유명한 테드(TED) 강연만 모아서 들을 수도 있고,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척했던 영어, 그 이후로 손 놓고 살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곳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생활 속의 영어와 맞닥뜨린 사람들은 삶이 갑자기 힘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타국에서 산다는 것만 해도 스트레스받는 일 투성이인데, 옆집 사람이 인사만 해도 긴장을 하게 된다. 간단하게 인사말을 나누면서도 진땀을 흘리는 이들이 많다. 


내가 하는 말이 과연 맞는지, 엉뚱한 오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마트에서 뭘 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계산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못 알아듣거나 혹은 자신이 한 말을 상대가 엉뚱하게 이해해서 문제가 생긴 경험도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아무리 말해도 주인이 못 알아들어서 (바닐라 발음이 사실 참 어렵다) 할 수 없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던 일화가 있겠는가 말이다. 블랙커피도 주문이 안 되고, 라테 라지 사이즈를 먹고 싶어도 미디엄을 먹게 되는 경험담들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몇 번의 공포를 마주치면 더욱 위축된다. 남들처럼 가끔 유튜브도 보고, 공부도 시도해보지만 끈기 있게 되지도 않고, 게다가 도대체 자신이 맞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으니 흥미도 떨어지면서 그만두게 된 경우도 많다. 어디다가 시원하게 물어볼 데도 없고...


그런 사람들이 내게 온다. 내가 영어를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는가. 어쨌든 나는 외국인으로 여기에 살면서 캐나다인 남편과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다. 생존 영어다. 나는 그 흔한 영어시험 한 번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몇 점 수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잘 아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지 잘 안다는 것이다. 영포자였던 내가 영어를 시작한 것이 40대 중반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딸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영어를 집에서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뭐가 답답한지 아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아니, 재미나게 공부했다. 영어 원서를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어디 가든 오디오북은 늘 내 귀에 꽂혀있었다. 그렇게 헤매던 어느 날부터 처음 듣는 오디오북의 내용이 들리기 시작했으니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나에게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부이다. 집에서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낮에 나가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간이 맨날 부족하니, 학원에 다닐 형편도 못 된다. 정해진 시간을 빼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상황이다. 내가 하는 원래 하는 수업은 게시판이었다. 지금 이 브런치 게시판과도 비슷하다. 


그날 배울 분량을 올려놓으면, 수강생들은 그 밑에 와서 덧글로 출석을 한다. 오늘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그중에서 외우고 싶은 단어나 문장은 무엇인지 등을 적고, 복습 겸으로 내가 내준 두세 개의 작문을 풀고 답을 맞힌다. 그리고 공부했던 것 중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질문한다. 일종의 자기 주도 학습이다.


그러면 내가 다시 거기에 덧글로 답변을 달아준다. 때론 책에 나온 부분에 대한 질문이고, 때론 책 내용과 비슷한 상황을 이웃집과 맞닥뜨렸는데, 자신이 말한 것이 맞는지 물을 때도 있다. 평소 궁금했던 질문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그래서, 물론 모두에게 이 수업이 잘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수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1 과외의 장점과, 단체 수업의 장점을 함께 가졌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함께 가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하지도, 그렇다고 서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같이 가는 것으로 뭔가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어디다 물어봐야할지 모르던 것들을 드디어 해결한다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일주일에 5일간 출석을 해야 하는데, 하다 보면 진력도 날 것이고, 어려워서 하기 싫어질 수도 있다. 갑자기 아이가 아플 수도 있고, 직장의 일이 바빠질 수도 있다. 그러면 그냥 잠적이다. 그렇게 며칠 빠지고 나면 다시 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계속 결석하면 메시지를 보내서 확인한다. 별일 없느냐고 안부를 묻는다. 그러면서 또 친해진다.




그런데 요즘 수업 양상이 조금 바뀌었다. 시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내게도 좋고, 수강생들에게도 좋긴 했지만, "문장 하루에 3개만 암기하세요."라는 말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공부는 하는데 실력이 마음처럼 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왜냐하면 엄마들은 그리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짬짬이 하다 보니, 암기는 못 하고, 그냥 이해를 하고 넘어가기 십상인데, 영어는 이해하는 과목이 아니다. 이해를 한다고 말을 할 줄 알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게다가 게시판으로 수업을 하니 발음 교정이 되지 않는다. 블랙커피를 여전히 사 먹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영상수업으로 방향을 돌렸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일 5분씩 얼굴을 보며 하는 수업이다. 그들의 발음을 직접 듣고, 생생하게 교정을 해준다. 내 원래 전공이 - 비록 불어이긴 했지만 - 음성학이었던 관계로 다행히 나는 이쪽에 능하다. 논문도 발음 교정법에 관해서 썼기 때문에, 사실 내 적성에 딱 맞는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마땅한 교재를 찾지 못해서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 내게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캐나다에 있으므로, 캐나다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대화를 만들어서 라디오처럼 꾸몄다. 녹음은 남편과, 딸, 그리고 며느리까지 동원되어서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다. 


그래도 수업을 시작하면서 그래도 나는 긴가 민가 했다. 이 수업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매일을 투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수강생들의 영어 발음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 있고, 문장을 암기하는 힘도 좋아졌으며, 활용하는 빈도도 높아졌다.


수업 중 배웠던 표현을, 밖에 나가서 멋들어지게 했다고 신이 나서 내게 말하는 수강생들의 눈은 빛났고, 나는 또 그 눈빛을 보며 즐거웠다. 그들이 얻는 것은 영어실력뿐만 아니라, 자신감이었고, 그리고 생활의 활력이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매일 5분가량의 통화를 하면서, 영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굴 마주 보는 것도 쑥스럽다고 하던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환하게 인사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때론 신나는 이야기를 하며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때론 울적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코로나 시대에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더욱 외로운 일이다. 기껏 공부 때문에 왔는데, 막상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해서 아이들은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고, 엄마들도 제대로 된 교류를 못한 세월이 길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 통하지도 않고, 영어도 안 늘고, 물가는 올라가서 한숨은 느는 상황...


밀란 쿤데라가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족과 직장 동료와 친구, 어릴 적부터 알아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지닌 나라, 즉 조국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이 없다." 


한국에 있으면 발생해도 괜찮을만한 일들이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접촉 사고가 살짝만 나도 두렵고, 아프면 서럽다. 우리에겐 구명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더 외로운 사람들... 그것은 나의 수강생들이기도 하고, 어쩌면 나 자신이기도 하다. 


하긴, 외국에 있어서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소통이 더 필요하다. 그냥 그런 척하는 그런 소통 말고, 어쩐지 마음을 열고 다가가도 될 것 같은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무슨 야기를 해도 흉 잡히지 않고, 내 마음을 그대로 이해해 줄 그런 사람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프다. 내가 잘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나는 남들보다 옥시토신 호르몬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이 품어주고 싶고, 또 많이 느끼고 싶다. 때론 친정 엄마처럼, 때론 언니처럼, 친구처럼... 외로운 현대인들끼리 서로 구명줄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부쩍 바빠져서 브런치에 글도 수두룩하게 밀리는 요즘, 그래도 나의 하루하루는 의미 있게 느껴진다. 혼자 우두커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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