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리 집에서 차를 함께 마시자는 말이다
나는 가끔 모종이나 씨앗 나눔도 한다. 그건, 내가 나눌 수 있어서 하는 일이다. 준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즉,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남는 모종을 다 키울 수 없는데, 못 키워서 죽이느니 누군가가 데려다가 키우면 더 좋으니 하는 말이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내가 주겠다는 말은 그래서, 정말로 주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게 때론 너무 어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자꾸 뭘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가져오지 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데, 말을 안 하면 뭘 사들고 오거나, 만들어 오거나 하기 일수이다.
때론 내가 필요한 물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많이 난처하기도 하다. 남편은 밀가루를 못 먹고, 나는 설탕을 안 먹는다. 그런데 도넛을 한 박스 사들고 오면 당황스럽다. 그냥 남는 것을 가지고 왔으면 괜찮은데, 상대는 나름 고민하고 사 왔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 그냥 이웃집에 줄 수 밖에 없다. 그 집에는 아이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가져온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남의 집에 뭔가를 받으러 갈 때는 빈손으로 갈 수가 없다. 상대가 서운할까 봐서이다. 그러면 또 고민이 된다. 뭘 가져가야 하지? 그러다 보니, 얻는 것보다 그냥 사는 게 속 편하다 싶기도 하다. 사이가 가까워지면, 준다는 말이 정말 그냥 주겠다는 말인지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난감한 것이다.
사실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나는 남들도 나처럼 하리라 생각했다. 믿었던 사람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듯 그도 나를 좋아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도 남을 통해서,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우리 집에 오면서 겨우 과일을 가져왔더라고!"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 말을 전한 이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이도 배신감이 들어서 전했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살림이 상당히 어려웠고, 나 역시 나름 고민해서 준비했던 것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잘해주던 것은 결국 거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뭘 달라고 했던 적은 없었고, 그가 좋아서 준 것들이었는데...
나는 빈 말을 못 한다. 사람들은 내가 거절도 못 할 것 같고, 싫어도 좋게 좋게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난 상당히 깍쟁이다. 아닌 것은 세상 두쪽이 나도 아닌 것이고,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가끔 딸이 이렇게 말 한다.
"엄마의 평가는 언제나 냉정해요."
그래서 때론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상 내가 좋다고 평할 때에는 그것이 진짜 좋다는 말인 줄 알기 때문에 더 기쁘다고 한다. 자기 듣기 좋으라고 무작정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내 말에 더 가치가 있게 들리는 것이다. 그렇다.
빈 말을 못 하는 만큼 신뢰가 쌓인다.
그 정도 말도 빈 말로 못 해주느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거짓말처럼 느껴져서 아주 불편하다. 그래서 빈 말로, "저희 집에 와서 같이 차 한 잔 해요." 이런 말은 하지 못한다. 진짜 와서 우리 집에 와서 같이 꽃을 보며 차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뭔가를 준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누가 나에게 도움을 받거나 우리 집을 방문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놀러 오라고 할 때, 가볍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빈 손으로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이곳 날씨는 아직도 차갑지만, 그래도 천천히 봄이 찾아오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서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마음을 나누고 싶어지는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찾아오면 정말로 차를 대접할 것이다. 더 근사한 뭔가를 차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있으면 주는 것이지, 그를 위해서 대단한 준비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를 준비한다 해도,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할 것이다. 일단 나는 상대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 내가 희생의 마음으로 뭔가를 행하면, 공연히 상대에게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 집에 오면서, 정말로 나랑 나눠 쓰고 싶은 것이 있거나, 함께 먹고 싶은 것이 있어서 들고 온다면 그런 것은 좋다. 그건 그의 마음이니까. 내 생각이 나서 챙겨 왔다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하지만 빈손으로 온다고 해서 절대 섭섭하지 않다. 아니, 뭘 들고 오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는 실망의 어머니다. 기대감이 없으면 삶이 훨씬 가볍다.
우리 집에 초대를 받았으니 자기 집에도 초대를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초대받았으니까 억지로 오는 게 아니면 좋겠다. 올 때 고민거리가 많아지지 않으면 좋겠다. 와서 나랑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나는 그게 선물이라 생각한다.
나누면 정이 오간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고 의무가 된다면 과연 정이 계속 쌓일까? 우리는 빈 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 손으로 세상을 떠난다. 보다 가볍게 살고, 보다 자연스럽게 살고, 보다 기쁘게 살고 싶다. 억지로 하는 일이 없는 세상, 그것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러니, 내가 "오셔서 차 한잔 함께 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당신에게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그렇게 알아주시길...
이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사실 내용이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기사가 될만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기사로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일기는 일기장에나 써라"같은 덧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편집자님도 내 생각과 같았는지, 기사는 한쪽 구석에 조용히 실렸습니다. 어디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잠깐 있다가 스르르 사라지는 곳입니다. 역시 그렇구나 하는 마음에 혼자 좀 서운하기도 하였지만, 하지만 제가 늘 마음에 있던 글이라 저는 쓰고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몇시간 후에 "좋은 기사 원고료" 알림이 왔습니다. 그 구석에 있는 글을 어느 독자분이 읽고 원고료를 소정액 주셨더라고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함에도 기꺼이 이렇게 해주신 분께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도 이렇게 적은 글이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을거라고 생각하니 굳이 쓰길 잘 했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글은 다르다는 것도 다시 실감했고요. 브런치에도 글 보시고 늘 조용히 좋아요 버튼 눌러주시는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