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22. 2022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나는 페이스북도 좀 한다. 열심히 하는 수준은 아니고, 요새는 브런치와 오마이뉴스로 인해서 더욱 게을러졌기는 하지만 한때는 내 감정을 좀 더 자주 쓰던 곳이었다. 브런치처럼 심혈을 기울여서 쓰지 않아도 되고, 그냥 즉흥적으로 그날의 감정을 나열하면 되니 편하게 적곤 했는데, 내가 느끼는 이 페이스북의 가장 큰 장점은, 매년 같은 날짜에 있었던 일을 다시 수면 위로 올려서 과거 추억하기를 시켜주는 것이다. 


"아, 맞아, 저 때 저런 일이 있었지?" 하고 피식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기도 하기에 나름 즐기며 보는 편이다. 오늘은 4년 전의 기록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 이게 4년 전이었구나!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데, 지금의 삶과 이렇게 달랐구나 생각하며 기분이 묘해졌다.


힘들었던 나의 과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모든 것은 어둠 속에 있었으며,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기분으로 살았다. 계속 나를 몰아치고 무리해서 새로운 삶을 만들고자 발버둥 쳤다. 하던 가락이 그것인지라 퀼트 소품이라도 만들어 팔아보려고 했고,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영어 수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모든 일들은 다 내 손을 거쳐가야 하는 일들이었고, 나는 남의 손을 빌릴 만큼의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퀼트 소품을 팔면서, 혼자 물건을 만들고, 혼자 사진을 찍고, 혼자 홍보를 하고, 혼자 판매를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나 혼자 이렇게 해서는 내가 먹고살만큼의 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면 팔 수가 없으니 힘들고, 주문이 많이 들어오면 그만큼의 물량을 만들어낼 수가 없으니 난처해지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손이 느리다. 퀼트 선생을 오래 했고, 잘 가르친다고 자신했지만, 그리고 내가 만든 물건들은 언제나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완성도 높은 물건이었지만, 손이 빠르지는 못했다. 따라서 주문 들어온 물건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면 시간 대비로 계산해서 재료비는커녕 인건비도 안 나왔다.

당시에 만든 장지갑과 커틀러리 케이스


그리고 나는 대중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즉흥적인 기분을 확 올려주는 재주는 갖고 있지 못했다. 유행에 빠르지도 않았고, 명품을 좋아하기는커녕 뭐가 명품인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내가 물건을 판다면 타깃을 누구로 해야 할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판매를 포기하고 온라인 영어카페를 열었다. 그리고 영어 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사람들을 돕고 보듬는 것이었다. 그때도 그랬다. 나는 그냥 평생 그랬다. 그래서 나는 역시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려 해도 홍보하는 데는 재주가 없었다. 어디서 사람들을 찾아와서 나에게 배우라고 한단 말인가!


전업주부에게 이혼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독립일 것이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가면 직업을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몸이 부실해서 마트에서 짐을 나르는 일 같은 것은 하지도 못할 수준이었지만, 사실 그곳에서도 나를 반기지 않는다.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나이였다.


그리고 건강은 바닥이었다. 그 원인은 누적된 스트레스였겠지. 보고 싶은 딸을 겨울방학 때도 만나지 못하고 해가 바뀌었다. 그것도 돈 때문이었다. 1월 들어서면서 네발로 기어 다닐 만큼 독감을 심하게 앓았고, 채 낫기도 전에 나는 또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수업을 하느라 허덕였다. 그리고 오늘 발견한 글이 바로 그때의 감정을 적은 글이었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누구나 내게 조언해준다. 
그리고 오늘, 너무 열심히 살다가 떠난 부고글을 읽으며 마음이 무겁다. 

요새 며칠을 앓고 나서
밀린 일더미에서 허덕이다가
나 정말 계속 이러고 살아야해?

아프고나서도 다 내 손가야하는 일들 줄줄이 처리하고, 
내가 열심히 하는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또 열심히 홍보해야하고... 
나 왜 이러고 살지?

하다보니, 나만 그러랴.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 
그 결과를 다 얻지도 못한 채. 
그래도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오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그래도 돈만 좇는게 아니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으며, 보람도 있고, 그 일들중에 기쁨도 있으니 그것을 연료삼아 달리고 있다. 나로 인해 웃음을 찾고 용기를 내는 이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열심히 살지 말라고 한다... ㅠㅠ 
겁 없이 왜 그렇게 몸을 혹사하느냐고...

사실 겁나서 그러는거다. 더 나쁜 상황을 만날까봐

그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여유롭게 지내도 밥이 나오고, 적당히 취미생활도 즐기고, 가끔 게으름도 떨고, 여행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좀 하고 살 수 있다면 뭘 바라겠는가?

나는 이 생에서는 그런 사치는 틀린거 같으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아서 다음생에는 그런 삶이 가능하기를 꿈꿔본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지않은가?
계속 부딪쳐도 다시 명랑해질 수 있는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자고 일어나면 또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난 또 웃으며 열심히 살겠지? 모든 것에 감사한다.





이랬구나, 내가 이랬었지... 그때의 나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 이혼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헤어지자고 하기엔 두려웠다. 실제 벌이가 안 되어서 까먹고 있다던 당시 남편과 헤어지면, 그나마 가진 것도 반토막이 날 테고, 미래에 만날 파산을 당겨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내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된 후에 이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대로 차일피일 미루며 함께 사는 것 역시 고통스러웠다. 한 집에서 무늬만 부부로 몇 년째 사는 삶은 참 피폐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행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미루던 이혼을 하겠다는 것은 그해의 확실한 결심이었지만, 나를 통째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무엇을 하든 함께 나누며 사는 삶은 꿈속에조차 없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냥 영화나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열심히 살았기에 지금 이런 복이 왔다고는 감히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한다고 다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열심히 살면서 잘 버티면 운이 열리는 날은 온다고 생각하고 싶다. 결국은 그 열리는 운을 잘 찾아낼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게 나의 개똥철학이다. 


세상 이치는 너무 오묘해서 인간이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각자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있듯이 나는 이런 나의 철학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나는 여전히 내 수업 홍보를 잘하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개인적으로 쓸 돈은 벌어야하지만, 이제는 밥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고, 맛있는 것 먹고, 사랑 받고,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최대한으로 사치스러운 삶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나와 함께 하는 이가 건강하여 함께 서로 오래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 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에도 감사한 크리스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