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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29. 2022

딸을 보내던 그 일주일...

그리고 연말연시의 밀린 일기

연말연시는 누구에게나 바쁜 시즌이다. 우리 집은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더욱 바쁘다. 뭔가 기념일들이 자잘하게 많기 때문이다. 내가 캐나다에 살러 온 날 기념일, 둘째 아들의 생일, 크리스마스, 송년의 밤, 뉴 이어 데이, 결혼기념일, 내 생일... 정말 이렇게 줄줄이 있다 보니, 뭔가 해 먹는 정찬 저녁식사도 줄줄이 이어지고, 여러 가지 선물 준비도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송년의 밤에 고즈넉이 일 년을 생각하고 글을 쓰거나 할 새가 없다. 아니 새해가 되어서라도 뒤늦게 적기에도 정신이 없다. 게다가 올해는 딸아이가 내 생일 직후에 출국을 하느라 더 바빴다.


그러고는 새 영어수업이 시작되어 준비가 바빴고, 날짜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글을 안 쓰기 시작했더니 글 쓰기도 생소하게 느껴져서 잘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쓰다 만 글들이 줄줄이 쌓여있는데 나는 그냥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니, 1월이 다 가기 전에, 진짜 설날이 오기 전에 묵은해 마무리하고, 연말연시 기록도 좀 남기고, 새해 결심도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늘은 자리 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딸을 만나지 못했던 4년 전 겨울방학, 그때 우리는 약속했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송년의 순간에는 꼭 함께 있자고... 그래서 우리는 그 이후로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있다. 한 해를 함께 돌아보며, 지금 가진 것들을 감사하고 새해를 위해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늘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다.


올해도 그랬다. 송년의 저녁때에는 만둣국을 끓여 먹었고 (밀가루 못 먹는 남편은 굴림만두로)...



새해 카운트 다운할 때에는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남편이 나가서 특별히 진짜 샴페인을 사 왔다. 집에서 만든 간식들을 놓고 송년의 이야기들을 나눴으며...



그리고, 마무리로 스크래블 게임을 하였다. 정말 오랫동안 안 했던 게임인데, 하고 싶어서 중고마켓 뒤져서 저렴하게 장만했고, 그 기념으로 함께 하면서 많이 웃었다. 영어 잘하는 두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불리하지만, 이건 운도 몹시 중요하기에 꼭 그 순서대로 이기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


새해가 되자, 아이가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 와중에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있었고, 내 생일이 있었다. 계속되는 잔치음식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근사한 디너를 먹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니 간단하게 넘어가자고 주장을 했다.



그래도 결국 새해 첫날은 떡국을 먹어야 했고, 저녁때에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구절판(https://brunch.co.kr/@lachouette/248)과 남편이 좋아하는 잡채, 그리고 빠지면 서운한 엘에이 갈비가 등장했다.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배부른 저녁식사였다.


이어지는 결혼기념일 디너는 정말 간단하게 하자고 했고, 남편이 휘리릭 해서는 수프와 생선요리를 만들었다. 디저트는 새로 만들지 않고, 남아있던 크리스마스 푸딩 케이크로 해결하였다.



원래 우리 부부는 결혼기념일 선물로, 팔찌에 끼우는 작은 참 장식을 교환하는데, 남편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지, 매년 진주를 선물한다. 이건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이번엔 거하게 럭셔리 은색 진주를 준비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딸은 흐뭇하게 쳐다보며 사진 찍느라 바쁘고...


그리고 그다음 날은 핸드폰 잃어버려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다행히 하루 만에 되찾는 행운을 누렸다. 연초부터 정신이 쏙 빠진 에피소드였다. 그다음에 이어진 것은 나의 생일. 나는 그냥 대충 지나가자고 했지만, 두 사람이 눈을 흘겼다. 딸은 나랑 생일을 보내기 위해서 방학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가는 것이니 그럴 수 없겠다고 했다. 생일 저녁식사 테마를 뭘 하겠느냐는 물음에 고민을 하다가, 계속 이어진 양식 한식의 행렬과 다르게 회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수산물 생일상이 차려졌다. 전식은 한국식으로 홍합을 삶아서 내고, 그다음 코스로는 이 지역의 명물 새우인 스팟프론을 삶아서 버터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는 남편이 연어와 참치회를 썰었고, 아이가 플레이팅을 했다. 그것만 하기는 아쉬우니, 한국 일식집처럼 옥수수 구이와 샐러드를 추가했다. 나는 생일 주인공이니 그대로 얻어먹었다.



준비된 선물을 풀었다. 남편은 내가 수업 자료 만들 때 적합하리라 생각되는 마이크를 선물했고, 딸아이는 올빼미 그림이 있는 왁스 씰링을 줬다. 그리고 멀리 동부에 있는 시누님에게서도 선물이 왔다. 역시 부엉이었다. 부엉이 올빼미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렸으니...


그리고는 딸이 만든 레몬바를 먹었다. 디저트를 뭘 먹고 싶으냐고 묻길래, 십 년 전 어디선가 먹었던 레몬바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밀가루 및 유제품이 들어있지 않는 레몬바를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너무나 맛이 있었다! 그렇게 끝내기 아쉬웠던 생일잔치였는지, 딸이 스크래블 게임을 추천했고, 우리는 그렇게 밤중까지 놀았다.


딸이 할 일이 많아서 시간에 쫓기는 줄 알았지만, 딸은 그만큼의 시간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어 했고, 이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애를 써서 그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편으로는 안쓰럽지만 그 시간을 받아주기로 했다. 가장 감사한 선물이었다.


딸과 함께 보내는 방학의 마지막 일주일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하루 잘 얻어먹었으니, 엄마는 아이 가는 날까지 먹고 싶은 거 챙겨주고 싶어서 시루떡을 쪘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떡이, 설탕 안 들어간 시루떡이다. 우리는 떡이 나오자마자 식탁에도 놓지 않고, 주방에서 서서 집어 먹었다.



그리고 아이가 가기 전날, 들려 보낼 천 마스크들을 완성하고, 바지를 줄여주고, 막바지까지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는 나랑 놀아주느라 보낸 시간들을 복구하느라 가기 전날까지도 일 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바빴다.


그리고 아이는 갔다. 새벽 4시에 나가서 데려다주고 안아주는데 가슴이 찌르르 해왔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 보니, 이젠 이게 평생이겠구나 싶다. 공부가 끝나면 취직을 하고 자리를 잡을 테고, 짝을 만나겠지. 그러면 또 그렇게 가끔 엄마를 방문하겠지.


떨어져 있는 것은 늘 임시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만나는 것이 임시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실감했다. 내가 느끼는 이 안타까움을 딸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래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아이도 받아들였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찡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딸... 씩씩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학교 다닐 때, 방학 마직막날에 몰아 쓰듯 그렇게 지난 일기를 썼다. 꼭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브런치가 내 일기장도 아니지만, 그냥 소소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특히 연말연시는... 그리고 매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억지로 시간을 뽑아 내어서 썼다. 이제 다시 다른 쓰고 싶은 글들을 쓰리라.


마지막으로 한해 정리 및 새 시작의 기록을 남겨본다.


2021년에 한 일들

- 나보다 나이 많은 싱거 재봉틀을 갖게 되었다.

- 이 집에서 딸아이의 생일 파티를 처음으로 하였다.

- 간접적이나마 할머니가 되었다. 나를 이모라고 부르는 영국인 조카 소희가 아기를 낳았다.

- 조카손주를 위한 퀼트 이불을 만들었다.

- 처음으로 진짜 텃밭을 갖게 되었다.

- 자연과 가까운 삶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 온실을 갖게 되었다. 남편이 공들여지어 준 온실은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 창문 앞에 윈도 박스를 만들고 꽃을 심었다.

- 42도라는 폭염을 겪어보았다. 체온보다 높은 온도에 놓였던 것은 평생 처음인 듯하다.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다. 전부터 관심 있었지만 9월 14일 드디어 첫 글을 등록하였다.

- 오마이뉴스 2021.11 새 뉴스게릴라상을 받았다.

- 독자의 구독료를 받았다

- 석 달 반동 안 34건의 기사를 작성하고 859,000원의 구독료를 벌었다.

- 매일 아침 꾸준히 7분씩 운동하기 습관을 들였다.

-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주변에서 다들 좋아함, ㅎㅎ)


2022년에 하고 싶은 일들

- 책 출판

- 한국 가기

- 뉴스 기사 최소 100건 채우기

- 그림 그리기 시도

- 건강하고 많이 사랑하며 살기....



* 고집스럽게 쓴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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