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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16. 2022

아낌없이 꽃을 주는 그대

특별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그의 표현 방식

올해도 어김없이 발렌타인데이가 지나갔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꽃에 대해서 상당히 무뚝뚝했었다. 낭만을 꿈꾸던 이십 대 때, 꽃 한 다발 받고 싶다던 내 부탁을 "남자가 창피하게 어떻게 꽃다발을 들고 다녀?"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사건을 계기로 깨끗하게 미련을 버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생일 때 빨간 장미를 한 다발 갖고 싶었지만, 한 겨울에 태어난 죄로, 꽃값은 늘 터무니없이 비쌌기에 내가 스스로 선뜻 사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퀼트 전시회를 하면 종종 꽃을 사 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모금을 해서 어린 학생들을 돕는 바자회를 함께 진행하고 있었고, 그래서 차라리 빈 손으로 와서 바자회 물품을 구입해달라고 늘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당시에 나와 함께 살던 사람은 꽃가루 알러지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꽃과 상관없이 살았다.


꽃을 꺾어서 꽂아놓으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더욱 외면을 했던 것 같지만, 사실 화분을 들여놓아도 잘 죽이던 사람이었던 나는 그 모든 것이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받은 꽃배달


그런데 내가 평생 받은 첫 꽃배달이 그에게서 왔기 때문일까? 국제연애를 하던 우리가 맞이한 그의 첫 생일, 나는 그에게 갈 수 없었고, 그는 내게 올 수 없었다. 나는 자질구레한 선물을 챙겨서 부쳤지만, 그는 그의 생일날 내게 첫 꽃다발을 보냈다. 나는 그때 눈물을 쏟았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꽃 선물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서 꽃다발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주는 것이기에 좋았던 것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꽃사랑에 푹 빠졌기에, 꽃다발도, 마당의 꽃도 다 좋고, 심지어 꽃다발을 선물하기까지 하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이다.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오자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그에게 뭔가 근사한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상황의 여의치 않았다. 수업이 늘어서 바빠졌기에 그를 직장에 태워주고 차를 쓸 시간이 없었다. 간신히 한 번 나갔지만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은 구하지 못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리스가 들어간 꽃다발을 마련하고 싶었으나, 계절 때문인지 아이리스를 파는 꽃집도 없었고, 내가 연락했던 꽃집은 장미 한 송이에 자그마치 2만 5천 원이라고 했다. 꽃다발을 만들려면 20만 원이라고?


남편이 월요일에 출근을 안 하고 재택근무를 할 거라고 했다. 오, 그렇다면 그날이 발렌타인데이 당일이니, 남편이 일 하는 동안 나가서 꽃다발을 사면 되겠다 싶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적당한 가격으로 괜찮은 꽃을 살 거라던 기대는, 내가 남편의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날짜를 일주일 착각한 것이었다.


틀에 단단한 초콜릿을 먼저 입히고, 그 안에 크림을 섞은 초콜릿을 넣고, 다시 허니 크랜베리를 넣어서 맛을 업그레이드 했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구입해놓았던 목욕용품이 있었기에 그것을 포장했고, 금요일에 미리 초콜릿도 만들어두었기에 전날 잠자리에 들면서 박스를 미리 침대 밑에 가져다 두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줘야지 했는데, 남편은 전날 밤 마신 티의 카페인 때문에 못 자고, 나는 이것저것 하느라 늦게 잠들어서 아침에 눈 뜨고서도 정신이 없어서 까먹었다. 전에는 아침에 함께 눈 뜨고, 초콜릿부터 내밀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출근 전에 기억이 나서, 주섬주섬 꺼내서 남편의 침대에 올려놓았더니, 그가 옷 갈아입으러 들어와서는 발견하고 껄껄 웃었다. 고맙다고 하고는 출근 준비가 급해서 들고나가 식탁에 올려놓고 출근.


그를 보내 놓은 후에는 게으름을 떨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위한 발렌타인 케이크를 굽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꽃은 준비 못해도 케이크는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평소 안 했던 것을 하고 싶었기에 전날 밤, 냉동실에서 딸기를 꺼내서 미리 졸여 두었다. 아침 수업을 빠르게 마치고, 케이크에 돌입했다.


원래는 스펀지케이크를 굽고 딸기 시럽을 바를 생각이었으나 계획을 급 회전하여 초콜릿 케이크에 딸기 시럽을 얹기로 했다. 초콜릿과 딸기는 언제나 잘 어울리고, 또한 발렌타인데이에 그 두 가지 만한 조합이 어디 있겠는가.


파이핑에 끼워서 얌전히 발라야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냥 휘리릭 던져버 발랐다.


작년에 한 번 구웠던, 진짜 손 많이 가는 그 레시피를 사용했다. 유튜브에서 유명한 레시피인데, 위에 초콜릿을 씌우는 대신 딸기 시럽을 씌운다고 결정하고는 머릿속으로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겁도 없이 실험도 안 한 레시피를 가지고 덤볐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남편 퇴근 직전까지 꼬박 일해야 했지만, 완성이 되었다.


원래는 옷도 좀 갈아입고 나름 무드 있게 맞이하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못 한 채, 케이크가 냉장고로 들어가자 남편이 도착했다. 소포 못 받았느냐고 물었던 남편은 손에 그 소포를 들고 있었다.


"이게 와 있었네!"


하얀색 큼직한 박스였다. 꽃 박스... 뚜껑을 열었더니 그 안에 빨간 장미가 가득 들어있었다!


박스에 들은 장미는 꽃다발과는 또 다른 특별한 럭셔리함을 보여주었다! 남편의 다른 한 손에는 샴페인이 들려있었다. 수십 년 전에는 부탁해도 받지 못했던 꽃을 이제는 매년 받는다. 그리고 사랑 고백도 함께...


우리는 장미를 꽃병에 꽂고, 나머지 선물을 풀었다. 절대 내 돈 주고 예쁜 속옷 사는 일이 없으니, 남편은 발렌타인데이에 럭셔리한 속옷을 한벌씩 선물해준다. 남편은 향기 좋은 담금 목욕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배쓰밤을 종종 선물한다.



꽃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카드도 꽃이 들어간 것으로 준비했다. 저 수선화 꽃이 핀 카드는 정말 예뻤다. 봄이 다가오는 시즌에 정말 딱 맞는다 싶었다!


특별한 날의 저녁식사는 보통 남편이 이탈리아 식으로 차리곤 하지만, 이 날은 우리가 뭘 하기로 약속하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서로에게 부담을 안 주려고 하다 보니 미리 근사하게 계획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따라서 집에 있는 고기로 스테이크를 할까 하다가 주물럭으로 돌아섰다. (레시피:https://brunch.co.kr/@lachouette/428)


전혀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대보름과 시즌이 겹쳐서 정말 오랜만에 나물도 안 하고 넘어갔는데, 이렇게 한식으로라도 푸짐히 먹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스테이크용 등심을 잘라서 재빨리 차렸다. 그래도 최근에 이렇게 예쁜 돌판을 나눔 해주신 분이 계셔서, 프라이팬 대신 이걸 상 위에 얹어서 기분 내며 배 불리 먹었다.



그리고 기분은 디저트로 내기로 했다. 남편 오기 전에 완성했던 케이크를 꺼내고, 그 위에 생크림 꽃을 올렸다. 비트 가루를 살짝 섞어서 꽃도 분홍 톤이 돌도록 했다. 케이크는 기대했던 것만큼 예쁘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준비한 샴페인과 적절히 어울리면서, 겹겹에 넣은 초코 크림과 딸기 시럽이 촉촉하게 맛있었다.


잘라놓으니 단면이 보여서 오히려 더 예뻤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이고, 어떻게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하느냐라는 우스개가 있는데, 우리에게 딱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당신이어서 고마워요, 내 사람이어서 고마워요....


카드 안에는, 약속한 듯 서로 비슷한 문구가 들어있었다. 사실 무슨 선물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열심히 고민하고, 그것을 즐겁게 준비하는 마음, 그것이 서로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보다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 애인 없는 딸램은 마카롱 구워서 학교에 돌렸다네요. 바빠서 사진은 박스에 담은 것 밖에 없다고!


* 오늘 케이크 레시피는 없습니다. 그림같이 예쁜 유튜브 레시피를 참고하였기에 그 링크만 소개할게요. 같은 레시피를 사용하였고, 시럽 대신에 집에서 만든 딸기 시럽을 사용했고, 위에 초콜릿 코팅 대신에 역시 딸기 시럽을 이용하여 코팅하였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해보세요. 레이어가 차곡차곡 쌓여서 부드럽고 맛있는 케이크랍니다.  https://youtu.be/8f0k5n9N84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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