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21. 2022

그리움으로 남은 물건들...

그리고 더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다시 방문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주권을 받고 나서는 가서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서 다시 가져오리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간단한 옷가지와 소지품만 가지고 왔다. 그리고 종종 한국 갈 때마다 지낼 나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남겨놓고 온 그 집에는 내가 사용하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팬데믹 발발로 인해 나는 3년이 넘도록 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진 물건은 여전히 많다. 이혼을 할 때, 평수를 반으로 줄여서 이사를 하느라 나는 정말 열심히 가진 것들을 정리했다. 중고마켓에 팔고,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그냥 내다 버리기도 했다. 비우고 비우면서, 내가 가졌던 것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 집에서 14년을 살았고, 가정에서 공방도 꾸렸었기 때문에 짐은 정말 차곡차곡 쌓여갔었다.


정리하면서 보니, 처음 이사 들어올 때, 일단 넣어두고 나중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전혀 열리지 않은 채 베란다 장 안에 들어있던 것도 발견되었다. 그래서 물건을 정리하면서 감상에 젖어, 울다가 웃다가 할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털고 싶다고 했지만, 물건들에는 추억이 있었고, 특히나 아이의 물건들은 더욱더 그랬다. 나는 정리를 하면서 머릿속이 정말 복잡했다. 그렇게 집안의 반을 털어내고, 새로 이사 간 집에 나머지 반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 열심히 도면을 그려서 정말 맞춘 듯이 넣었다.


광각으로 찍으니 넓어 보이는 거실. 책장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작은 방은 드레스 룸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옷들을 넣었고, 또 하나의 작은 방은 요를 깔고 나면 꽉 차니 침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원래 안방이 되는 가장 큰 방을 작업실로 꾸몄고, 거기에 내가 사용하던 바느질 관련 용품과, 일하면서 필요했던 물건들을 채웠다. 작은 거실에는 책장으로 벽을 채우고 책을 빼곡히 꽂았다.


작업실은 나와 딸의 컴퓨터, 재봉틀, 책장, 원단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짐을 꾸역꾸역 넣은 곳에서 지내다가 왔는데, 이제 사람이 살지 않게 된 그곳은 추운 겨울에도 은근하게 보일러가 돌아가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차마 버리지 못했던 처녀 때 옷가지까지 걸려있는 그 방에 곰팡이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근처에 사는 대학 동창 친구가 가끔 가서 환기를 시켜주겠다고 했는데, 오랜만에 갔더니 옷가지 몇 개가 심하게 곰팡이가 슬었다고 하며,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사실 나도 난감했다. 상한 옷가지야 버리면 되지만, 그 번거로운 일을 부탁하자니 미안하고, 그냥 두자니 그 곰팡이가 점점 집안에 번질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친구가 일단 곰팡이 제거 스프레이를 뿌려줬고, 보일러 온도를 좀 더 올려서 더 번지는 것을 방지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가까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사람을 사서 청소를 하더라도, 빈집에 들일 수는 없으니 좀 가서 감독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걸 뭘 사람을 부르냐며, 설 지나고 가서 해결해주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곰팡이가 피어 버려진 가야금 케이스


사실 집은 사람이 살고 있으면 통풍이 되어서 웬만하면 이런 곰팡이는 피지 않는다. 아니면 처음부터 살지 않던 집이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가 손을 떼면 그 집은 이렇게 티가 난다. 당시에 집을 급히 구하면서 사정이 있어서 친정과도 먼 곳에 가게 되었기에 동생에게 집을 챙겨달라고 하기도 난처했다. 동생은 편찮으신 어머니를 챙기느라 갤러리 문을 닫는 날도 많다고 하니 내 일까지 거기에 얹어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로 운전해서 와도 한 시간이 걸리는 위치니 더더욱 그러했다.


이 집은 원래 친한 후배가 지은 건물 안에 있었고, 그녀가 그곳 4층에서 평생 살거라 했었다. 그러면 우리 집도 수시로 환기도 시켜주고 잘 관리해줄 거라고 했었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것이다 보니, 그 후배에게 다른 사정이 생겨서 급히 그 집을 팔고 멀리 외국으로 떠나버리게 된 것이다. 나 때문에 집을 팔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그 집은 내 가까운 이들의 어느 누구에게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딸아이가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가 있어야 할 때에는 그 집이 유용했다. 아이가 혼자서 지내기에 마음이 많이 힘들지 않을 만한 곳이었다. 자신의 모든 물건이 다 있고, 밥도 해 먹을 수 있는 곳이니, 알지도 못하는 에어비앤비 같은 곳에 장기 투숙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 후배가 사정이 생겨서 한국에 다니러 갈 때에도 묵을 수 있는 곳이 되었었다. 갈 곳 없는 지인들이 거쳐갈 수 있다면, 그 공간이 그렇게 남아있는 것도 괜찮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 집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고, 그리고 미안하게도 지금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심하게 곰팡이가 핀 가죽 자켓은 결국 쓰레기 봉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친구들이 약속한 날이 되었다. 친구들은 도착해서 사진을 보내왔다. 어떤 상태의 물건을 버리는지를 내게 알려주는 차원이었다. 친구들은 자기 집처럼 청소를 해줬다. 잠시 묵고 갔던 객이 냉장고에 남겨 놓은 것까지 발견해서 싹 다 치워줬다. 보일러도 좀 더 주기적으로 돌게 세팅을 해주고, 욕실 창문도 열어서 집안에 새 공기가 들어가게 해 놓았다. 이제 괜찮을 거라고 했다. 고마워서 가슴속이 찌릿찌릿 해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이었다.




멀리 있어서 사용하지 못해도 그리움이 남아있는 물건들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멀리 있어서 만날 수 없어도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늘 그리운 친구들,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을 친구들이 있다. 내가 가진 인복을 보면 나는 정말 전생이 뭔가 좋은 일을 했나보다. 


올해는 제발 모든 상황이 잘 풀려서 한국에 가서 그리운 이들을 만나 가슴을 흠뻑 적시고 오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낌없이 꽃을 주는 그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