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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13. 2022

남편이 아프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들...

지난달부터 남편이 계속 아프다. 5월에는 갑상선 약을 줄였던 것의 타격으로 아프기 시작을 하더니, 점차 호흡곤란과 매핵기 증상이 나타났다. 사실,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증상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 너무 멀쩡해져서, 그냥 이러다가 은퇴하고 좀 여유로워지면 자연스레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속 힘들어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6월 초 그의 생일날,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해했다. 12시 땡 하면서부터 축하하기 시작하여, 함께 선물 열고, 웃고 즐기며 시작한 생일은, 아침에 멀리 미국에 있는 딸에게서 꽃다발을 받아서 신이 난 것뿐만 아니라, 저녁때 자식들 집에 초대받아 해산물 풀코스까지 먹으면서 절정에 달했다. 집에 와서는 샴페인을 나누며 삶에 감사했는데...


그런데 그다음 날 그의 증상이 부쩍 심해지더니, 하루 더 지나서는 급기야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주일이나 학교를 쉬었던 터라, 다음날의 아이들 졸업식 준비 때문에 출근했던 그는, 간신히 졸업식 준비를 맞춰놓고 귀가하자마자 응급실로 향했다.


혼자 가면 된다는 그를 막무가내로 따라나선 길은, 그대로 그를 병원에 남겨두고 오는 것으로 입원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그는 숨쉬기를 힘들어했다. 계속 억지로 트림이라도 해서 목이 조이는 기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그 반복이 점점 더 가까워져서 1초에 한 번씩 호흡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리고 먹는 것이 순식간에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이틀 전만 해도 그렇게 잘 먹던 사람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응급실에서는 각종 검사를 다 했다. 피검사도 세 가지나 하고, 폐 엑스레이와 CT 촬영까지 끝냈으나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다음날에는 식도 내시경을 하겠다는 그를 남겨두고 집으로 온 날 밤, 나는 망연자실하였다. 


거의 2년 전부터 목에 이물감이 있어왔고, 가끔 피도 조금씩 나왔는데, 이비인후과 진료는 늘 정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갑상선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였어도 그의 그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그것이 식도암이었을까? 왜 식도 내시경은 진작 시도하지 않았던 것인지, 나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식도는 신축성이 좋아서 발견이 늦는다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수술이나 치료의 예후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종교적 기도를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나는 평생 무신론자였다. 믿지도 않는 신을 부르는 일을 해야 할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 것이 정말 처음이었다. 그저 두려웠다. 그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초자연적인 힘이 절실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시경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물론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원인을 찾지 못한 답답한 상황이었다. 정말 다른 곳은 멀쩡한 남편은, 그냥 눈을 뜬 채 누워서 호흡을 허덕이며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이렇게 계속 먹지 못하면 튜브를 끼워야 할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멀쩡한데, 소화력에도 문제가 없었는데! 그리고 남편은 얼마나 음식을 즐기는 사람인데! 차라리 나라면 몰라도, 남편에게 튜브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연하곤란이라고 했다. 원인을 모르면 다 스트레스라고 한다. 무슨 스트레스일까? 남편은 은퇴를 두 주일 앞둔 상황이었고, 사실 드디어 은퇴를 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싶은 그의 마음속에서 그를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답답한 나는 정말 모든 지인을 총동원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각종 지압법과 혈자리가 등장했고, 동종요법을 전파한 언니에게 부탁해서 의사 선생님께 약을 추천받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몹시 신뢰하는 한의사 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그 선생님은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심리적 문제로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미해결 된 숙제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미해결 된 숙제라... 은퇴를 앞둔 그는, 자기가 떠나는 그 특수학교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는 아니라고 했다. 시스템을 잘 구축해놓았고, 잘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무거움이 들어있었다.


그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두고 가는 미안함, 헤어지면 그리울 거라는 마음들이 복잡하게 들어있는 것 같았다. 부모 같은 마음이니 그 마음을 그저 놓아버림으로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먹지 못하고, 숨도 버겁게 쉬는 그를 쳐다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수시로 병원에 가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와도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오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가만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코비드로 환자 면회가 막혔던 것이 이제 제법 풀려서 방문이 가능했다. 그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혼자 집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었으면 둘 다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어제부터 조금씩 음식을 삼킨다. 병원에서는 신경 안정제 종류 몇 가지와 역류성 식도염약을 주고 있고, 나는 동종요법 약을 챙겨주며, 지압을 해주고, 마그네슘 오일을 발라준다. 무엇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유동식이라도 조금씩 삼키고 있는 그 사실에 희망을 걸어본다. 


내일은 방학을 맞아 딸이 온다. 함께 공항에 가기로 했는데...




나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로 다시금 또 실감한다. 그가 없는 집이 얼마나 휑한지, 그가 없는 침대가 얼마나 추운지,... 그리고 그 없이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맛없는지... 간신히 먹거리를 때우는 하루하루가 지속되면서 나는 지쳐간다.


그러나, 그래도 그가 맑은 정신으로 함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가 내 사람임에 감사한다. 그는 내가 평생 가장 갖고 싶어 하던 것을 준 사람이다. 바로, 진실한 사랑.


나는 참 사랑을 하고 싶었다. 너무나 사랑해서 만났지만, 살면서 점점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게 왜 실제 삶에서는 불가능한지 늘 의아했기에, 나는 늘 갈증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그를 만나고 나서 나는, 천국이 아닌 현세에서도 그런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E.T 놀이를 해주는 남편


그의 사랑은 아름답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다. 주는 것에 생색내는 법이 없고, 되돌려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주고, 또 준다.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의 모든 행동에는 나에 대한 배려가 있고, 그 배려는 그가 희생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채워주는 것이다. 


이제 결혼한 지 4년 차로 들어가는 우리는 더 이상 신혼이 아니지만, 나는 뜨겁게 사랑했던 신혼 때보다 지금 그를 더 사랑한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도 더 깊어졌으니까...




올 필요 없다 하던 그는,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가 갈 때 "또 올 거야?"라고 묻는다. 그런 그를 보면 가슴속에서 눈물이 올라온다. "당신 정원 일 해야지,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할 일 많잖아."라며 미안해하는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많지. 그런데 정원일도 당신이 없으니 재미없다. 그리고, 뭣이 중한데?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시간을 당신과 함께 보내는 것이야."


나는 당신이 꼭 회복되어서, 다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것을 믿는다.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거든. 잘 이겨낼 거야. 그리고, 잘 이겨내게 돕기 위해 나는 뭐든 할 거야.


그가 가장 좋아하는 꽃, 아이리스를 못 보는 게 안타까워 정원에서 꺾어왔는데, 꽃 반입 금지 규정에 걸려서 사진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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