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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21. 2022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열흘간의 입원을 마치고, 지난 주말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완쾌되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딱히 차도가 없어서 돌아온 것이었다. 병명은 없고 증세명만 있는 이상한 병. 영어로는 globus sensation이라고 부르고 한국어로는 연하곤란매핵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증세였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다 했다. 어떤 종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염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서운 식도암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좋았지만, 막상 적합한 치료법이 나오지 않으니 정말 답답했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전혀 삼키지 못하던 순간에는 수액을 맞았지만, 유동식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것도 더 이상 없었으며, 오히려 처음에 수액을 꽂았던 곳이 잘 관리되지 않아 염증이 생겼다. 사실 몹시 화가 났다. 샌다고 말했는데도 빠르게 처리 해주지 않아서 일을 키웠기 때문이다. 


딱히 치료법이 없었지만, 의사들은 시험 삼아 몇 가지 약을 줬다. 역류성 식도염약을 줬지만, 남편은 원래 전혀 역류하지도 소화가 안 되지도 않았다. 수면제도 받았지만, 그로 인해 편한 잠을 자지도 못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신경 안정제 로라제팜이었는데, 이것은 심하게 트림이 올라올 때에 패닉을 가라앉히기 위해 유용했지만, 역시 치료의 의미는 아니었다. 그리고 어지럼증과 무기력이라는 부작용이 동반되었다.


수액을 꽂지 않고 병원 밥에 의지하는 남편의 식사를 보고 있노라면, 장신의 남편이 저걸로 영양공급이 제대로 될까 싶었다. 그동안 얼마나 잘 먹고살았는데, 몇 가지 간 음식과 시판되는 요거트, 간식 두부 같은 것이라니.


열흘간 병원에서 지내면서 남편도 나도 시들어갔다. 나는 아침, 저녁 수업 있는 시간을 피해서 하루에 두세 번씩 남편에게 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집에 오면 만사가 무기력했다. 뭔가 진전이 되어야 나도 힘을 낼 텐데, 머릿속은 복잡했고, 남은 시간은 온전히 어떻게 남편을 치료할 수 있을까 찾는데 할애되었다.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다음주면 퇴원할 수 있을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 쳤는데 말이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식이 호흡장애 이외에는 정말 너무나 멀쩡한 사람이 하루 종일 신경 안정제에 의존해서 침대에 누워있으니 정말 무기력해졌다. 억지로 조금이라도 걷자고 하면 마지못해 따라나서던 남편은 막상 5분 이상을 걷지도 못하고 어지럽다고 했다.


나이 들어서 입원하면,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근육 손실이다. 그러면 그 이후의 회복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기에 내 마음은 참 초조했다. 그렇다고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남편에게 더 강한 운동을 하라고 종용할 수도 없었다. 남편의 문제는 심리적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퇴원하기 전날 밤,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 한약이라도 지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도 공황장애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지난번 입원 글에 Chegevora 작가님도 공황장애에 대해서 덧글을 남겨주셨는데, 친구도 그 덧글을 봤다며 그쪽으로 치료가 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병원에서 스트레스가 문제라고 할 때부터 뭔가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딱 한번 심리치료사를 보내줬을 뿐 별다른 대처는 아무리 기다려도 보이지 않았다. 치료사와의 대화는 남편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역시 병원이 뭔가 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마땅한 심리치료사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간 나는 동종요법 약들을 남편에게 주면서, 음식을 삼키게 하는 약에만 집중을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동종요법 약들 중에도 공황장애 약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친구와 통화를 끊고 난 새벽 3시에 나는 다시 검색에 들어갔다. 공황장애도 여러 가지 원인과 증세가 있기 때문에, 약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나는 그중 비슷한 증세의 것들을 몇 가지 골랐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남편과 똑같은 증세가 쓰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목에 뭔가 덩어리가 있는 기분... 그거였다. 주문을 넣자 감사히도 당일 배송이 가능했다.





남편은 아침 의사 회진 때 퇴원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검사를 더 해야 한다면 퇴원 후에 다시 와서 받겠다고 말했더니, 그간 미루던 검사를 오후 2시로 잡아줬다. 그 이후로 퇴원 허락이 나온 것이다. 물론, 이번 CT촬영에서도 삼킴 능력 자체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으로 나왔다.


그간 누워서 지내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서 검사를 받으러 갔던 남편이 퇴원을 앞두고 초인적인 힘이 올라왔다. 검사가 끝나자마자 옷을 갈아입더니, 바로 퇴원 수속을 하라고 간호사실 앞에 서서 대기하였다. 물론 여전히 약한 상태였지만, 남편은 어서 퇴원을 해서 자신의 직장에 가고 싶어 했다.


금요일 늦은 오후가 되어서 모두 퇴근하고 없는 시간이었지만, 학교에 있는 관련 자료들을 가져와서 아이들 성적을 내고 마무리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남편을 사로잡아서 아무도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일단 집으로 가서 단백질 셰이크를 죽처럼 해서 남편에게 먹이고 함께 학교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남편은 씁쓸하게 말했다. 졸업식도 끝났고, 이제 아이들 수업기간도 끝나서 아이들도 학교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퇴하는 마당에 작별인사도 못하고 다 끝나게 되었다는 말을 하더니, 갑자기, 자기가 아이들하고 헤어지는 것이 이렇게 힘들 거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다. 깊은 상처를 받아 트라우마가 있거나,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 학교에서 교사가 잘못 지도하여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 마약을 팔던 아이도 있고, 몸을 팔던 아이도 있고, 자폐가 있는 아이도 있고, 어느 누구 하나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가 아니다. 그런 아이들이 그의 학교에 와서 스스로 학습하고 마음을 열도록 도와주던 남편이 이제 그곳을 떠난다니 그 마음이 오죽 힘들겠는가.


남편은 막연히 자신 병세를 일으킨 트라우마가, 그 가여운 아이들을 그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과 헤어지는 마음이 너무 슬퍼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내면의 본능이 올라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체는 참으로 신비해서, 우리가 머리로 인식하고 이성적으로 하는 행동과 전혀 다르게 작동하기도 한다. 남편의 경우, 아이들과의 작별을 잘하고 싶다는 머리의 생각과 달리, 그 아이들을 보면서 북받쳐 오를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내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몸을 힘들게 할지 이미 알아차린 몸은, 본능적으로 그 자리를 피하고자 스스로를 닫아버린 것이었다.


남편이 목의 이물감이 계속 나왔다 사라졌다 하다가 갑자기 심해져서 입원했던 날짜는 바로 졸업식 전날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쳐두고, 예행연습처럼 아이들에게 해줄 말들을 연습하면서 남편은 호흡곤란 증세를 심각하게 느껴서 입원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과정이 모두 끝날 때까지 병원 밖을 나오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 줄 알게 된 우리는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결국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증세가 바로 가라앉지는 않았다. 몸은 이미 자기를 힘들게 한 주인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돌아온다며 종종거리며 집안을 준비한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남편은 집에 온 것을 만끽했다.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바꾸고, 환영한다는 카드를 써서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집에 온 것을 환영해요. 당신이 없는 집은, 이미 집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카드를 열어본 남편은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말했다. 당신이 나의 집이고, 내가 당신의 집이라고...


초저녁이 되면서 남편은 마티니를 준비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였다. 음식도 간신히 삼키는 환자가 독한 칵테일 마티니를 마신다니 그야말로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병은 정신적 트라우마일 뿐 소화장애가 아니니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두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리지 않았다.


저녁식사는 양송이를 곁들인 함박스테이크에 아스파라거스를 준비하였다. 모든 조리를 다 한 후에 다시 푸드프로세서에 갈아서 다시 데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흡족한 모양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딸아이가 온 이후로 처음으로 세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와인을 곁들여 즐겁게 먹었다.  


왼쪽은 딸아이 접시, 오른쪽은 남편 접시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새로 배송된 동종요법 약을 내밀었다. 입안에서 녹인 후에도 여전히 트림을 하느라 힘들어하던 남편이 어느새 잠들었고, 나는 잠결에 남편이 편히 자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기적은 아침에 일어났다. 눈을 뜬 남편이 더 이상 이전처럼 격하게 트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말은 숨이 막히는 현상이 확연히 줄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여전히 한 번에 몰아서 증세가 오기는 했지만, 훨씬 평화로워졌다. 


놀라운 효과에 나는 다시 조심스러워졌다. 사실 나는 동종요법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은 돌팔이 수준인데, 단지 몇 가지 지식을 토대로 내린 처방이 효과가 나기 시작했으니, 그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번에 구매한 것은 자그마치 1M의 높은 용량인데, 이것은 한 달에 한번 정도만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 완전히 치유된 것이 아닌데, 이걸 더 먹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자세히 찾아봤다. 보통 이 수준의 약은 그 약효가 몇 주 또는 몇 달이 가기도 한다고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서서히 약효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니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고 기다리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아침은 간단하게 단백질과 과일 간 것을 주었고, 점심은 전날 저녁과 비슷한 메뉴로 준비했다. 햄버거와 고구마, 브로콜리. 똑같이 갈았어도 하루 지나갔다고 점도도 더 잘 맞췄고, 옆에서 지켜보던 딸이, 이왕이면 맛있어 보이게 하자고 해서 근사한 식사처럼 꾸몄다.


딸이 장식하여 차린 함박 스테이크


사실 세 가지 정도의 음식을 하나의 푸드 프로세서로 한꺼번에 준비하려니, 하나 할 때마다 씻어야 하는 것이 아주 번거로웠다. 나는 이러려면 미니 믹서기를 하나 장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남편은 언제까지 이렇게 먹어야 하느냐고, 일반식을 곧 시도해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딸은 아빠의 일반 음식 욕구를 올려주려면 뭔가 맛있고 부드러운 일반식을 먼저 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고는 버터가 듬뿍 들어간 쇼트브레드 쿠키를 구웠다. 물론 밀가루 못 먹는 그를 위해서 글루텐프리로 구웠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쿠키였다. 



피곤하다고 낮잠을 자고 난 남편은 쿠키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는 저녁은 좀 더 일반 식사에 가까운 것을 먹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부드러운 가자미를 오븐에 굽고, 당근과 콩을 갈았다. 밥도 닭 육수에 푹 익혀서 부드럽게 준비하였는데, 이 저녁식사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재활훈련을 하듯이 한발 한발 전진하였다. 와중에 남편은 밀린 일을 하느라 서재에서 분주하였고, 간혹씩 발작이 다시 일어나기도 했지만, 예전과는 다른 평화가 이어졌다.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면 몹시 당혹스럽고 힘들었기 때문에, 그럴 때에는 내가 옆에서 혈자리들을 마사지해주고, 함께 심호흡을 하면서, 가라앉힐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그래도 몇 분이 지나면 다시 가라앉으니 얼마나 다행이던지...


와중에 몸살이 오는듯하여 우리는 또다시 긴장을 하였다. 지금은 감기도 걸리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음식을 삼키기 시작했으니 영양제를 급히 챙겨주었다. 그리고 급기야 일요일 저녁에는 완전 정상 식사를 하였다. 부드러운 닭고기를 이용하여 치킨가스를 하였고, 남편은 식사를 깨끗하게 비웠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이 되자 남편은 주말 내내 일한 결과물을 가지고 출근을 하였다. 전날 막내아들이 아빠를 위해 만들어 온 수프를 점심 도시락으로 챙겨서 들고 갔고, 정상 퇴근하였다. 그리고 오늘은 발작이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학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남편. 처음에 와서는 고개도 제대로 못 들던 아이가 이러이러한 결과물을 냈고, 이렇게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할때 그의 눈빛은, 마치 자식을 자랑하는 부모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사랑을 가졌으니 그 이별은 힘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후회없이 사랑을 했으니,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는가.


남편은 아직 가끔 살짝씩 트림을 가끔 하기는 하지만, 이젠 정말 다 나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병실에서 완전한 환자의 모습으로 누워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내가 밤에 방에 앉아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으니, 마당의 작약을 꺾어 화병에 꽂아서 살짝 내 옆에 갖다 주는 로맨틱한 남편. 서로의 존재에 다시금 감사하며, 앞으로 남은 인생을 더욱 소중히 하리라...



따뜻한 덧글과 메시지로 응원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응원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늘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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