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디어 성인이 되었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 느꼈다
나는 날때부터 건강 흙수저였다. 창백한 얼굴, 큰 눈, 뼈가 드러날만큼 마른 몸, 온 몸을 뒤덮은 의문의 피부병(나중에 아토피로 밝혀짐)의 소유자였던 나는 어릴때부터, 골골거리며 엄마의 속을 아프게 하던 딸이었다.
초등학교때, 질문이 있어서 쉬는 시간에 담임선생님께 갔더니, 내 얼굴을 보자마자 선생님은 내 말은 들을 생각도 안 하시고 "그래, 어서 집에 가." 라고 하셨고, 나는 의문의 귀가를 당했다. 엄마는 놀라서, 왜 집에 왔느냐 물으셨고, 나는 예의 그 노란 얼굴을 하고는 "몰라요, 선생님이 가라고 하셨어요." 라고 대답할 수 밖에! 나는 그냥 바라만 봐도 아슬아슬해 보이는 청승(!) 가련형이었다.
그런 비슷한 사건은 여러차례 있었다. 나는 말수가 없이 눈만 껌뻑이며 힘 없이 자리에 앉아있었고, 그래서 성적표에는 늘 "조용하고 착합니다" 내지는 "온순하고 차분합니다"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쉬는 시간을 뜨겁게 달굴 에너지 같은 것은 애초에 갖고 있지 못했고,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어렵게 어렵게 먹다보면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쳤다.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온 몸의 아토피때문에 공중 목욕탕에서 쫓겨나기 일수였고, 학교에서 놔주는 예방주사는 의례 통과되었다. 나에게 잘못 주사를 놨다가 문제가 날거 같다고 보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픈 주사를 안 맞아도 된다는 사실로 그냥 신이 났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나를 포기 하지 않았고, 피부병에 좋다는 것들은 무엇이든 시도하셨다. 피마자 씨앗을 달인 물로 목욕을 하기도 했고, 외할머니를 따라 온천을 순회하기도 하였으며, 짠물이 좋다 하여 어려운 형편에도 여름이면 바닷가를 꼭 찾았다.
수시로 감기를 달고 살았기에 약도 참 많이 먹었다. 약으로 쌓아 놓으면 내 몸뚱이 보다 클거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용하다는 한의원도 여러군데 방문하였는데, 한 한의사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얘가 살아 있는 것은 기적이예요. 순전히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고 있는 거라고요."
그래도 어머니가 나를 지극히 보살피시고 먹이신 덕에 나는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 남았고, 극심했던 아토피는 다행히도 사춘기가 되어서 체질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저절로 없어졌다. 심지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도 역시 에미인 나를 닮아 지독히도 몸이 약했다. 나는 또 하나의 건강 흙수저를 낳은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면, 내가 왜 건강 관리에 촉을 세우는지 누구든 이해를 할 것이다. 병원은 나를 도와주지 못했고, 오히려 어릴 때 먹은 수많은 약들이 내 간을 힘들게 만들어서 나는 늘 얼굴이 노란 황달을 끼고 살았던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 내 딸의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헤매며 많은 세월을 보냈다. 몸에 좋다는 수많은 것들을 먹어 보고, 발라보고, 시도해보았다. 답은 알듯 하다가 멀어져갔고, 다시 가까워지다가 또 멀어져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겼다.
덜컥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지금이야 갑상선 암이라고 하면 워낙 흔한 암이어서 크게 생각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암일 뿐이었다. 2mm밖에 안 되는 작은 종양이 두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병원에서는 갑상선 전절제를 권유했다.
나는 암만 떼어내는 줄 알았는데, 갑상선을 다 포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더이상 편도선 수술이나 맹장을 미리 떼어내는 수술이 옳지 않다는 세상이 되었기에, 나는 나의 장기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크기도 작은데 좀 지켜보면 안 될까요?" 라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의사의 답변은 이거였다.
고름이 둔다고 살 되나?
그 말에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물론, 고름을 둔다고 그게 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허벅지가 작게 곪았다고 해서 다리를 잘라내지는 않는다. 곪은 부분을 치료하다보면, 결국 살은 다시 차 오르고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구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다른 병원을 한 군데 더 방문했으나, 역시 전절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했다. 지금 내가 이 암이 무섭다고 이걸 떼어낸다고 해서 다른 곳에 또 암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암이 걸린 이유는, 분명히 내가 살았던 생활 습관 중에서 잘못된 것이 있었던 것이고, 갑상선을 제거한 이후에 어디선가 또 암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버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서 나는 수술을 미루기로 했다. 내 몸을 관리하고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정말 순수한 한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약을 좀 먹었고, 요가를 시작했고, 내가 먹고 사는 것들을 점검했다. 그러면서 내 몸의 반응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게 15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 나는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했고, 몇번의 초음파 검사를 더 받다가 그마저 그만두었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건강검진에서 내 갑상선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암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주사 바늘로 하는 검사는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착한 암으로 알려진 유두암일 확률이 대략 70퍼센트 정도라고 했었으니, 아마 나는 반대쪽 30%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의사들이 내 몸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의 의사는 병과 싸운다. 암을 제거하고, 균을 죽이는데에 관심이 많을 뿐, 환자를 살리는 데에 정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폐암을 모두 제거한 후, 감기에 걸려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역시 억지로 백혈구 수치를 올려가면서 항암치료를 받게 했던 의사들은, 그 방사능치료로 아버지의 식도가 녹아 내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암을 죽여야 했으니까. 그리고 나의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다.
나는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 점점 더 깨어났다.
아이가 어리던 시절 어느 날, 당시의 남편이 가습기 세정제를 사가지고 왔다. 이걸 사용하면 가습기 청소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몸이 약한 아이는 겨울에 늘 가습기를 이용했는데, 그 청소는 사실 참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냥 그 내용물을 물통에 부으면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뒷면을 읽어보니 성분에 계면활성제가 적혀있었다. 이걸 물에 부어서 가습기를 틀면 고스란히 그걸 폐로 다 마셔야하는데, 정신이 있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래를 방안에 널고 자는 것도 잔유 계면활성제때문에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하는데, 일부러 그걸 물에 부어서 튼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내가 딱 잘라 말했다. 나는 이건 쓰지 않겠다고.
아이 아빠는, 그래도 이게 다 나라에서 허가해주고 파는 것이니 괜찮을 거라며, 날더러 유난을 떤다고 했지만, 그 유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은 몇년 후에 알게 되었다.
결국, 내 몸은 내가 지켜야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느 의사의 말도 맹신하지 않는다. 병원을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옷도 내게 맞지 않으면 입을 수 없듯이, 아무리 유명한 치료법도 내게 맞지 않으면 그저 독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건강법을 찾아 공부를 하다가 기능의학도 알게 되었다. 그때 만난 조한경 원장과 함께 하면서 나는 건강 주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그가 쓴 책 "환자혁명"은 출간되자마자 순식간에 건강관련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의 책은 참 쉽다. 그리고 참 명백하다.
내 몸의 주권은 내게 있다는 것이다. 병원의 약에 의존하지 말고, 의사가 건강을 챙겨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 몸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관리를 해야하는 이유를 아주 쉽게 설명해주기에, 건강에 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나는 지금 상당히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저절로 건강해지지는 않았다. 난 사실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매일 라면과 인스턴트 커피를 먹으면서도 늘 건강한 사람이라면 나처럼 조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건강 금수저로 태어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건강을 소홀히 하고 펑펑 써대도 금고 안에 여전히 여유가 많이 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평생 쓰고 남을 돈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다만 당장 금고가 바닥 나지는 않기에 얼마나 통장이 비었는지 모르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한 번 쯤은, 자신의 건강 통장을 들여다보고, 얼마나 남아있는지, 얼마나 더 써도 되는지, 아니면 얼마나 아껴써야 하는지를 가늠해본다면, 어느 순간 빈털털이가 되어 길에 나 앉듯이 건강이 무너져버리지는 않아도 될거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짬짬이 나의 비루한 건강관리법도 여기 브런치에 정리해볼 것이다. 모두 함께 건강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