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을 일궈서 마늘을 키워보기로 했다
3년 전부터 마늘을 조금씩 심어서 키우고 있다. 엄청난 일일 거라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 사실 별로 손이 안 가는 것이 마늘농사다. 물론, 판매할 실한 마늘을 키워야 한다면 또 다른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 먹을 마늘이라면 이렇게 마당 한 귀퉁이에 심어서 키우면,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풍미가 좋은 무농약 마늘이 탄생한다.
문제는 내가 마당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발생했다. 심어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보니 마늘을 심을 곳이 마땅치 않아진 것이다. 가을부터 시작해서 여름 직전까지 밭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어야 하다 보니, 봄 농사를 할만한 텃밭에 심어버리면, 다른 봄 농사를 못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꽃밭의 장미 옆에 심어봤다. 해충들이 마늘 냄새를 싫어해서 진딧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있었기에 더욱더 얼씨구나 하고 심었다. 그러나 장미의 진딧물은 마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창궐하였다. 그리고 장미꽃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마늘은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다. 뭐, 둘이 속궁합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겉보기엔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이번엔 어디에 심을까 고민스러웠다. 사실 이 고민은 이미 작년에 한 것이다. 마늘은 가을에 10월 경에 심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을 나야 쪽이 갈라지면서 제대로 마늘의 모양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부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고, 결국은 뒷마당 바깥쪽에까지 마수를 펼치게 되었다.
우리 집 뒷마당 경계선은 산으로 연결되는데, 이 산은 입구가 없어서 행인이 없다. 아무도 오지 않는 산인 것이다. 방문객이라고는 매일 산책처럼 지나다니는 곰과 들짐승들이 있을 뿐이다. 하긴, 뭘 심기에는 땅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돌밭이다. 욕심이 들어서 파 보았지만, 파도 파도 돌만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돌 밑은 거의 비어있는 듯했다. 물론 사이에 미세하게 흙이 섞여있긴 하지만, 그 흙들은 야생 블랙베리가 이미 장악하고 있어서, 그 질긴 뿌리를 끊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땅은 마땅치 않고, 양지바른 뒷산 자락은 계속 눈에 밟히니, 나는 결국 돌밭 매기를 시도하였다. 제법 큰 돌도 섞여있고, 돌끼리 서로 엉켜있어서 거둬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서 몇 날을 고생해서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거름흙을 날라다 채웠다. 흙이 제법 많이 들어갔다. 버켓으로 여러 번을 날라서 채우고 나니 그럴싸해 보였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마늘을 가지런히 심었다. 그게 작년 10월 말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확인 삼아 올라가 봤더니 들짐승들이 와서 파헤친 흔적이 있었다! 헉! 누가 마늘을 먹겠는가! 사슴도, 다람쥐도, 곰도 먹지 않을 것이다. 글쎄, 설마 캐나다 곰이 사람이 되겠다고 마늘을 훔쳐다가 동굴에서 먹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자세히 보니 먹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이 뭔가 묻었던 것 같으니 궁금해서 파본 것 같았다. 파놓은 마늘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그냥 도로 적당히 아무 데나 묻어놨다. 또 며칠 후에 보면 다시 두세 개가 뒹굴고...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안 좋은 냄새를 풍겨 쫓으려고 베이비파우더를 주변에 뿌려주고, 낙엽으로 덮어 놓고는 겨울이 되었다.
지난겨울은 많이 추웠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세월이 갔는데, 2월 들어서 올라가 보니 또 한 번 파헤친 흔적이 보였다. 나는 굴하지 않고 또 묻어놨다. 와중에, 뒹굴고 있는 마늘에서 조그마한 싹이 보여서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마늘 싹 올라온 것 봤느냐고. 정말 마늘 싹들이 귀엽게 조금씩 올라와있었다. 파헤쳐진 마늘은 대충 아무 데나 밀어 넣었더니, 두 개가 바짝 붙어서 나온 것도 있고, 전혀 가지런하지 않았지만 무척 예뻤다.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마늘은 쑥쑥 자랐다. 여전히 추운 밴쿠버 마당에는 4월에도 눈발이 날리고 아침이면 서리가 내린다. 하지만 그래도 개나리는 꽃망울을 터뜨리고, 꼬마 데이지는 산을 채워간다. 그리고 마늘도 즐겁게 자라 오르고 있다.
뒷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마늘이 이제는 제법 굵고 튼실하다. 마늘밭에서 집 쪽을 내려다보니 여기만 봄이 무성한 것처럼 보인다. 텃밭에는 자잘한 새싹들이 돋아있지만, 이곳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 마늘이 정말 얼마나 잘 자랄지는 모른다. 비록 돌을 다 파내고 거름흙을 채웠지만, 뽑아버린 야생 블랙베리 뿌리는 옆에서 다시 진입하여 밭으로 들어갈 것이 뻔하다. 야생의 식물들은 생명력이 정말 강하니까. 하지만 우리 마늘들도 겉 보기엔 그 어느 해보다도 튼실해 보인다.
해도 잘 들고, 이젠 동물의 간섭도 없다. 들짐승들도 포기를 한 듯하다. 도시의 시멘트 아파트 속에서 살던 내가 호미를 들고 돌밭을 캘 줄 누가 알았던가! 하지만 이젠 쭈그리고 앉아 능숙하게 돌을 고르고, 흙을 다듬고, 식물들을 건사하니 인생은 하루 앞을 모른다는 것이 정말 맞는구나 싶다.
돌밭 매애는 아아나악네에에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한국의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내니 이렇게 노랫가락이 화답으로 왔다. 노래처럼 설움이 들어 밭을 매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에도 또 흙을 일굴 것이다. 돌밭이든, 콩밭이든 호박밭이든, 올해도 또 땀 흘려 열심히 흙과 살아가며 한국의 것들을 키워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알맹이에서 이렇듯 생명이 솟아오르는 것이, 초보 농부인 내게는 몇 년이 되어도 신비롭고 감사하다. 그리고 이런 생명체를 통해 고향과 연결이 될 수 있으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