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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05. 2022

"노우"라고 말할 수 있다면

편히 받아들이고, 편히 거절할 수 있는 관계는 안전하다

얼마 전에 시누님 생일상을 한식으로 차렸다는 글을 올렸다. 브런치에만 올린 것이 아니라 오마이뉴스에도 올렸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인 데다가, 가족이 얽힌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조심스러웠다.


사실, 첫 제안은 남편이 한 것이었다. 그 주제로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색다른 이벤트가 재미있었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하지 않는 시누님의 삶을 실어도 될까 고민하다가 전화로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 뉴스 웹사이트에 사진과 함께 올려도 되겠냐는 나의 질문에, 웃으며 흔쾌히 허락을 해주시는 모습은, 뭔가 재미난 일을 또 경험하겠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 : 


그렇게 해서 소개된 글은 브런치에서 반응이 좋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는 오래간만에 악플이 달렸다. 요지는 내가 국뽕에 심취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한국 음식을 시누이에게 억지로 먹였다는 것이었다. 그 밑에 추가로 달린 덧글에는, 외국인들은 미끌거리는 질감의 미역국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시누이 성격도 좋다는 이야기까지 달렸다. 


나는 원래 악플을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기는 하다. 그거 신경쓰면 글 못 쓴다. 그렇지만 가족의 이야기니 즐겁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국뽕 심리가 없는 사람이다. 한국이 외국보다 못하지도 않고 더 잘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나라는 내게 소중한 곳이고, 남의 나라는 또 그 사람들에게 소중한 곳이다. 우리의 문화와 음식이 소중하듯 남의 것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고 여기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그 덧글에 반박을 하며 답 덧글을 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해 먹으며 즐겼다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 글을 행복하게 읽지 못하고 그렇게 읽어야 했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악플 다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답은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그 독자는, "서양사람들은 미끄러운 미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들어보았지만, 서양사람들은 먹기 싫은 음식을 좋아하는 척하며 억지로 먹지 않는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한국식 사고로 생각하면, 누군가 마음 써서 음식을 차려준다면 싫어도 좋아하는 척하면서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명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다.


나는 시댁에 차린 것이었지만, 반대로 시댁에서 차려주는 것이었다면 더더욱 아무 소리 못하고 먹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일수이다. 그러나 대부분 서양인들은 그렇지 않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을 한다. 만일 한국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려주겠다는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시누님은 정중하게 거절을 했을 것이다. 


물론, 무례하게 싫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스테이크를 해서 야채를 곁들여 먹을까 생각했어."라든가 뭔가 에둘러서 사양의 뜻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친구분까지 초대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싫은 것을 좋은 척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은 전혀 바른 행동이 아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며, 상대방의 감정을 기만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만일 시누이가 싫은 것을 좋은 척하고 먹었다는 사실을 내가 뒤늦게 알게 된다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는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하다가 화가 날 것이다. 차라리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한다면, 나는 애써서 준비할 필요도 없고, 모든 일은 단순해지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에 잠시 미국에 살 때 알게 된 노부부가 있었다.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었는데, 미국 아가씨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때 그분들의 아쉬움은 만날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나보다 훨씬 더 윗 세대이니 며느리 덕을 보고 싶으셨던 거다. 사분사분하며 문안인사도 드리고, 싫어도 좀 좋은 척하며 왕래를 자주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고 서운하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우리가 신세 진 것이 있어서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한식으로 차려진 식탁을 부러워하며 한숨을 쉬셨다.


그게 한국의 문화이다. 싫어도 좋은 척하고, 빈말도 적당히 하는 사람을 원하는 문화는, 그 당시보다 옅어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습관에 남아있다.


사실 나만해도 지금 남편과 결혼했을 때 초반에는, 남편이 하는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늘 그래 왔듯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마인드로 꾹 참고 넘기곤 했다. 나는 원래 싫은 것은 정중히 거절하는 성격이어서 때론 차갑다는 소리도 종종 듣던 사람이었건만, 그래도 가정생활에서는 "나만 참으면 집안이 평화롭다"는 한국 주부들의 사고가 습관처럼 튀어나오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때 남편이 내게 무척 화를 냈다.


내 생각으로는, 과거에 자신이 나를 섭섭하게 했으면, 지금에 와서 알게 된 마당에 좀 달래줘도 되련만 오히려 왜 화를 낼까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은, 내가 그때 사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내가 싫다고 했으면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섭섭할 일도 없었을테니 말이다.


이 생활에 적응을 하면서, 나는 이제 남편에게도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상대가 마음 상할까 봐 마음에도 없는 말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고,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척할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편에게도 예의 바르게 거절을 한다. 물론 남편도 그렇다. 유명한 영어 표현 "No, thank you."가 왜 있겠는가?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는 말은 상당히 일상적인 말인 것이다.


거절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 같지만, 늘 진실만을 말하게 되기 때문에 사이는 더 좋아진다. 가슴에 서운한 것을 담아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사이에서도 이것은 정말 명확하게 하는 편이다. 거절하면 당장 서운해도 결국 그 관계는 길게 간다.




나는 사실 시누님이 한식 생일상을 좋아할 줄 미리 알고 있었다. 일단, 우리 결혼식 때 집에 방문했던 시누님은 음식을 맛있게 먹었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문화와 음식을 즐기고, 또 신선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았다. 시누님 뿐만 아니라 남편의 큰 딸도, 우리 집에 올 때 뭐 해주려냐고 물으면 늘 한식을 선택한다. 


그 이유는 우리 집에 오면, 식당 밥이 아닌 진짜 가정식 한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식구들은 모두 문화와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양한 음식들을 즐긴다. 멕시칸 음식, 이탈리아식, 중국식, 인도식, 터키식, 그리스식 등등, 테마를 정해서 만들어 먹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시누님 댁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내 레시피로 월남쌈을 함께 해 먹으며 놀기도 했다. 그렇다. 그렇게 하며 노는 거다.


자동 번역된 오마이뉴스 메인 페이지


기사가 나간 후에 시누님의 친구분을 통해서 링크를 보내드렸다. 시누님은 휴대폰도 없거니와, 와이파이도 없는 곳에 사시기 때문이다. 친구댁을 방문하여 두 분이 자동번역의 기사를 재미있게 읽으시고, 시누님은 도서관에서 출력을 해서 갖고 싶다고 하셨다. 친구분은 자신을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전하며, 이제는 시내에 나가면 한식당에서 잡채와 녹두전을 주문해서 먹게 될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 또, 싫은 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은 행복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행동이다. 그리고 거기에 얹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며 노는 것은, 특히나 노년에 뇌를 즐겁게 하는 데에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삶이 늘 녹록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를 찾는다면 언제나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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