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스코샤 시누님 댁을 방문하다
남편의 누님 댁을 12일간 방문했다. 2년 전 계획했던 일정이 코로나로 실패하고는, 올해 드디어 온 가족 대모임을 하러 멀리 동쪽 끝 노바스코샤로 움직인 것이다. 내가 시누님을 처음 뵌 것은, 우리가 막 연애를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를 만나러 한 달 예정으로 캐나다를 방문했는데, 우리에게 시간은 너무나 빨리 갔다. 그래서 한 달을 더 연장하려다 보니, 그 중간에 이미 이 남자가 누님 방문 계획을 잡아놓은 상황이었기에, 나는 얼떨결에 그를 따라 예비 시누이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이제 갓 시작된 우리 연애의 상황에서, 서로 콩깍지 씌어서 사랑하느라 정신없을 시기였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낯가림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긴장하고, 나름 눈치 보기 바빴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시누님은 고맙게도 우리를 참 편하게 대해줬다.
한국식으로 생각한다면, 예비 시누이 댁에 갔는데, 늦잠과 낮잠이 웬 말인가 말이다. 그러나 전혀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그분 덕에 두 주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짬날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아주며, 괜찮냐고 묻던 그가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4년 만에 다시 그곳을 방문했다. 이번엔 우리 부부만 간 것이 아니라, 남편의 아이들과 내 딸까지 모두 함께 갔다. 마침내 온 가족이 처음으로 모이는 자리를 만든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
캐나다의 동쪽 끝 노바스코샤에 있는 누님의 댁은, 정말 자연 속에 산다는 것 그 자체였다. 잘 가꿔진 정원의 느낌이 아니라, 문명과 동떨어진 대자연의 한 군데에 툭 놓인 느낌이었다. 마치 캠핑장에 도착한 것처럼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주차를 하고, 집까지 걸어 내려간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서면 거실을 통해 바다가 보인다. 이 창문은 마치 엽서 같다. 바다의 모습이 날씨에 따라 바뀌는 그런 특별한 엽서다. 흐린 날씨는 흐린 날씨대로 운치가 있고, 맑은 날은 또 그대로의 쨍함이 있다.
도착한 날은 짐을 풀고, 거실에 침대를 준비했다. 이층에 집주인의 침실이 있고, 아래층에는 손님방이 있지만, 그곳은 창고로 이용되고 있어서, 우리는 이곳에 오면 거실에서 잔다. 낮에는 소파, 밤에는 침대가 되는 가구를 사용한다. 이렇게...
이쯤 되면 어느 고급 호텔 부럽지 않을 듯! 실화냐 싶은 이 창문 앞에서 자면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아침 6시면 완전히 환해져서 더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며 무념의 상태로 앉아있게 된다. 명상이 따로 없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자리는 바로, 부엌의 작은 식탁 앞이다. 정식 다이닝룸은 아니지만 주인은 대부분의 식사를 여기서 해결한다. 창밖으로 벌새 먹이통이 달려있고, 작은 조명을 설치해놓은 너머로 푸르름이 가득한 곳이다.
첫 메뉴는 팬에 구운 해덕과 고구마, 양파 구이, 비트 줄기 볶음이 준비되었다. 술을 거의 안 하는 나를 위해 꼬마 와인잔이 놓였다. 결혼식 이후 3년 만에 다시 만났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같은 캐나다 땅이지만, 노바스코샤와 내가 사는 비씨주는 4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아침에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날씨가 흐렸다. 안개가 잔뜩 끼었는데, 맑았던 전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신비한 기분에 휩싸여 한참을 앉아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침에 눈을 뜬 후 한참을 폰에 매달리겠지만, 이곳에선 그것도 쉽지 않다.
아름다운 풍경도 한몫하거니와, 이곳엔 와이파이가 없다. 시누님은 컴퓨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 아날로그의 삶이다. 핸드폰도 물론 없다. 집전화를 사용하고, 전화를 못 받을 때에는 응답기가 받는 것이 당연하다. 빨리 연락하고 싶은 성질 급한 사람은 숨 넘어가겠지만, 느림의 미학이 그대로 실천되는 곳이다.
이 집의 또 다른 아름다운 곳 중 한 군데는 이층에 있는 화장실이다.
한국처럼 욕실 바닥에 배수구가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 방처럼 꾸며져 있다. 작은 가구가 있어서 손님이 와서도 자신의 세면도구를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은 책꽂이를 보면 이곳이 누군가의 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든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척 낭만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당연히 불편한 것도 많다. 지은 지 40년이 된 이 집은 수도 시설이 우물에 연결되어있어서, 가물 때면 물을 아껴 써야 한다. 안 그러면 샤워 도중에 갑자기 물이 끊길 수도 있다.
따로 난방 시스템도 없고, 겨울이면 벽난로를 땐다. 여름에 땔감을 구해서 미리 보관해두었다가 겨울에 사용한다. 아무렇게나 쏟아놓고 간 땔감을 정리하는 것은 오롯이 주인장의 몫이니 한시도 쉴 날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경치를 가지고 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가끔 바닷가 도로를 차 타고 지나가면서, 저런 곳에서는 누가 살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바로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팔라서 힘들거나, 눈이 와서 미끄럽다면, 바다 쪽 입구로 내려가는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다. 집의 데크 쪽 문과 연결된다. 노인이 사는 집이고, 방문객들도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차근차근 천천히 이동할 수 있는 이 계단이 인기가 좋다.
데크에서 바다를 향해 찍은 사진이다. 날씨가 어떻든 간에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 날씨는 여름에도 무덥지 않기 때문에, 그늘에만 앉으면 한없이 앉아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얼굴로 스치는 바닷바람도 시원하고, 푸르른 바다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계속 셔터를 눌러봤지만, 사진 안에 담긴 풍경은 실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역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탱자 탱자 노는 게 정답. 그네 의자에 가서 앉았다. 등까지 푹 안아주는 이 의자는 보기보다 훨씬 편하다.
바닷물은 밀려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하며, 때론 이렇게 모래사장을 내어주기도 한다. 물은 상당히 맑아서, 헤엄치는 미노 떼나 오징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물 밑바닥에 기어 다니는 게도 보인다. 수영을 하고 놀기엔 다소 물이 차지만, 딸아이처럼 이렇게 발을 담그고 놀기엔 더없이 좋다. 새까맣게 타는 것은 필수!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하늘이 붉게 물들며 또다시 카메라를 들게 만든다. 자연은 늘 참으로 크고 경이롭지 않은가! 인간이 아무리 뭔가 만들어도 역시 자연의 예술은 당할 길이 없으니 말이다.
우리의 일정은 거의 두 주일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조카들을 만나는 시누이는 흥분이 가득했다. 시종일관 뭔가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종종거리는 그녀를 보며, 가족이 갖는 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했다.
아이들이 도착하는 시각이 각각 달랐는데, 동분서주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은, 한국의 고모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이 시누이가 우리 딸과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기회가 되다 보니 그 설렘도 아주 컸다.
일정 중에는 시누이의 생일과 남편 큰딸의 생일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고모의 생일 선물로 카약을 준비했고, 시누이는 말할 수 없이 좋아했다. 본인 집의 바다에서 바로 탈 수 있는 카약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아이들은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기도 했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시누이 댁에서 보냈다. 무엇보다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짬을 내서, 최근 알게 된 지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고 (너무나 환대를 받았다!), 한나절의 시간을 내서 딸과 핼리팩스에서 오붓하게 단둘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다 함께 페기스 코브(Peggy's Cove)도 방문했다. 모든 시간들은 다 소중했다.
마지막 주말에는, 이 모임의 메인 행사를 했다. 근처에 사는 남편의 형수까지 모여서 모두 랍스터 파티를 한 것이다. 이 파티의 제목은 "Fianlly!"였다. 마침내 모두가 함께 모였다는 데에 그 의의를 갖는 자리였다. 전부터 함께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계속 미뤘던 자리가 드디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자리를 위해서 우리는 단체 티셔츠를 맞췄다. 바다에서 바라본 시누이 댁의 사진을 이용해서 딸이 디자인했고, Finally라는 글자를 함께 넣었다. 생각지도 못한 티셔츠를 선물 받고 모두 즐거워했다.
이 티셔츠를 입고, 남편의 특별 선물로 마련된 랍스터를 각자 한 마리씩 끼고 앉아서 먹는 이 파티는 밤의 모닥불놀이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가슴에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 시간들이었다.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지는 가족. 가족은 원래 태어는 것이라 했지만, 이렇게 합류되어서도 또한 가족을 이룰 수 있으니 삶은 참 신비롭다.
캠핑 같았던 시누이 댁에서의 두 주일이 지나고 돌아오면서, 혼자 남아 갑자기 텅 빈 집의 빈자리가 시누이에게 얼마나 클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보다 많은 추억을 나눴고, 더 이상 서먹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진 우리 관계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공항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감사와 아쉬움의 작별을 나눴다.
시누이가 부엌에서 내게 건넨 말이 가슴에 남는다. 함축적인 의미가 느껴지는 말이다.
"당신이 내 동생의 삶에 들어와 줘서 기뻐."
나도 그의 삶에 들어간 것이 기쁘다. 그리고 그도 나의 삶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기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