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정원을 담다
한국에 살 때에는 늘 탁상달력을 사용했다. 작업하는 책상 옆에 세워두고, 할 일이나 약속도 적어서 일정을 체크하며 지냈다. 디지털 세상을 좋아해도, 이런 것은 나는 어쩐지 아날로그가 편하다. 그냥 당장 쉽게 손에 잡히길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언제나 예쁜 탁상달력을 구매하곤 했다. 보통 앞면엔 글씨만 있고, 뒷면에 있는 그림을 보는 일은 별로 없지만, 달력을 넘길 때 보게 되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그런 탁상달력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한인마트에서 연말에 나눠주는데, 각종 광고가 넘쳐나며, 그나마도 타이밍을 놓치면 구하지 못해 낭패가 되는 것이다. 구매를 해보려고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여기 사람들은 달력을 별로 안 쓰는 것 같다.
우리 남편만 해도 집안에 달력을 두지 않는다. 그냥 전화기와 컴퓨터에 들어있는 달력만 사용한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답답했다. 고개만 돌리면 한 달이 눈에 쏙 들어오는 삶을 살다가 매번 달력을 찾아서 확인을 해야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벽걸이 달력을 사서 걸어보기도 하고, 한인마트 달력을 구해서 사용해보기도 했는데, 흡족한 기분이 든 적이 없었다.
올해에도 각종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봤지만 마음에 드는 탁상 달력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생각하니, 그냥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한국에서 달력을 하나 사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또 검색! 하지만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디자인을 기웃거리다가 지쳐버렸다. 그림이 마음에 들면, 글씨가 마음에 안 들고, 둘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사이즈가 맞지 않고...
그러다가 우연히 맞춤 달력 웹사이트 홍보글을 보았다.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시판 달력을 하나 사는 가격이면 나만의 달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달력 속에 핀 더덕꽃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그 비밀은 디지털 출력에 있었다. 기계가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디지털 인쇄도 꽤나 잘 나오기 때문에, 최소 100부씩 찍어야 하던 과거 옵셋 인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물론, 출력을 해놓고 비교해보면 여전히 옵셋 인쇄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나처럼 그냥 집에 하나 두고 쓰려면, 한 권만도 뽑을 수 있는 이 시스템이 딱 좋은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작품 팸플릿 인쇄를 보고 자란지라 디지털 인쇄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지만, 내 마음은 벌써 나만의 달력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몇 군데 검색 끝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되어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곳을 선택했다.
가격도 국내배송비 포함해서 만원이면 되니 그까짓 거 망쳐도 한 번 해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달력의 표지, 우리의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선정했다.그러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사진을 뭘로 넣을까가 최고 관건이었다. 흔히 가족사진을 넣는 것 같은데, 어쩐지 얼굴을 넣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버린다면 찝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생각하니, 내게는 예쁜 꽃 사진이 많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하게 된다지?
그래서, 꽃 사진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포맷을 여러 가지로 바꿀 수 있어서, 페이지별로 넣는 사진 수를 다르게 선택했다. 사진을 고르는 일이 은근히 쉽지 않았다
각 달에 피는 꽃들로 모아서 정리를 했다. 겨울 동안 가드닝을 못 하지만, 다시금 일 년간의 꽃 사진들을 보니 즐거웠다.
날짜의 아래쪽에는 우리의 기념일들을 미리 챙겨 넣었다. 가족들의 생일과 한국 명절, 캐나다 공휴일도 넣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로 끼워 넣을까 하다가, 그래도 이런 것은 함께 의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작업한 것을 미리 보여줬더니 남편도 무척 좋아했다.
생각해보니 주변에 선물해도 좋을 것 같았다. 평소에 고맙던 지인들과 가족에게 주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같은 달력에 날짜 입력만 바꿔서 디자인을 새로 뽑았다. 휴일이 각기 다르니, 한국용과 캐나다용을 구분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도착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찌나 조마조마한지! 인쇄 질이 너무 떨어지면 어쩌나 애를 태웠다. 언제 오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고, 열어보니 안에 들은 달력이 아주 단정하게 예뻤다. 종이 질도 괜찮았고, 출력 결과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보고, 또 보고... 이런 게 소소한 기쁨이라는 것이겠지? 달력 값보다 배송비가 더 들었으니 결코 싼 달력은 아니었지만, 이걸로 일 년 내내 즐거울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더 넉넉히 구매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배송료 때문에 최소한으로 맞춘 게 아쉽다. 그래도 한국의 친구들에게는 선물할 수 있으니 좋구나. 여기서 뭔가 사서 보내는 것보다 저렴하고, 또, 우리 집에 초대하는 기분으로 우리 마당을 담은 달력을 나눈다는 기분도 좋다.
이 달력을 보며 일 년 내내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다. 나도, 지인들도 모두!
* 혹시 이 달력을 원하시는 분 계시면 덧글 남겨주세요. 제 정원 이야기를 즐겨 주시는 모든 분들께 무료로 보내드리고 싶지만, 그럴 형편은 안 되므로, 한국에 계신 분들에 한해, 배송료 포함 만원으로 보내드릴게요. ^^ (원래 원가가 9900원인데 100원은 계산하기 편하게 수고비! ㅎㅎ)
* 그리고, 아무래도 죄송해서, 이벤트... 덧글 신청하신 구독자 중에 두 분을 추첨해서 선물로 보내드릴까 해요. 원하시는 분은 12월 15일까지 덧글을 남겨주세요. 단, 한국으로만 배송이 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이랬는데 아무도 탐내지 않으면 민망해서 어쩔까나?)
★ 추첨 결과 올립니다 ★
저 민망하지 않게 덧글들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추첨을 할까 고민을 했어요. 사다리타기도 생각했는데, 아래쪽에 당첨 글씨를 어디 넣는게 좋을지 몰라서 포기했어요. 그러다가 검색을 해보니 온라인에서 추첨을 해주는 사이트가 있더라고요. ^^
덧글 주신 분들 중에서 관심을 표하신 분들의 성함을 순서대로 넣고 추첨하기를 눌렀더니 1초만에 결과가 나왔어요. 그래서 당첨하신 분들은 황미옥님과 캐리소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캐리소님과 황미옥님은, 제 페이지에 있는 "제안하기"버튼을 눌러서, 주소와 전화번호, 성함 3종 세트를 보내주세요~ ^^
그리고 비록 당첨은 안 되었지만 실비(만원)로 구매 원하시는 분들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제가 이거 판매하여 수익금 내는 것이 아니니, 절!대!로! 부담 갖지 마시고요! 정말 원하시면 연락주세요. 추첨에 참여했으니 어쩐지 팔아줘야 할거 같은 마음 가지실 필요가 전혀 없는 거 아시죠? 그냥 저의 정원을 달력에 담에 함께 즐기고 싶은 분들만 신청하시면 됩니다~
이상, 이 추첨 놀이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