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Dec 08. 2022

패딩 코트를 입은 온실

월동 준비의 마무리

마냥 따뜻하던 이번 밴쿠버 가을도 결국 저물어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가드닝이나 텃밭의 즐거움은 여름에 있지만, 가을의 수확 이후에도 마당에는 손길이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시즌을 마무리하는 정리일 것이다. 그래야 땅이 잘 쉬고 내년에 다시 활기찬 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명이 다한 식물들은 정리를 해주고, 겨울 동안 간직하여 봄을 함께 맞이하고 싶은 것들은 손질을 해서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한다. 작년에 고추를 실내로 들여와 무사히 월동을 했던 경험을 되살려, 올해는 더 많은 고추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고추나무들을 손을 봤다. 온실에 보관할 것들은 땅에서 파내서 그 흙을 그대로 이용해서 화분에 옮겼다. 거름흙이 넉넉했지만, 서늘한 곳에서 겨울잠을 자며 보내야 하는 식물들에게는 기름진 흙을 주면 안 된다. 잠자리에 보양식을 먹는 것과 같은 행동이 될 수 있다.


몇 개는 새 흙을 넣어 거실로 들여왔다. 작년에 했던 것처럼 잎을 떼어내고 가지치기를 심하게 했다. 어차피 오래된 잎들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년 겨울을 난 두 살짜리 고추는 흙만 얌전히 바꿔서 그대로 들여왔다. 한 살 더 먹어서 그런 것인지, 어쩐지 더 쌩쌩했기에, 시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몇 가지 일년생 화초들도 실내와 온실로 나눠서 보관하기로 했다. 실내로 들여와 그로우 라이트 밑에 자리 잡은 화초는 꽃을 피우며 자릿값을 제대로 내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의 삭막함을 확실히 달래줄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지금 글을 쓰면서도 내 눈은 수시로 그쪽으로 움직인다.



 

우리 텃밭은 무에서 창조되다시피 한 것이기에 지반이 상당히 약하다. 따라서 흙이 계속 가라앉는다. 즉, 매년 흙을 새로 넣다시피 채워줘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럴 때가 된 것이다. 문제는 더덕과 도라지였다. 얘네들은 거름흙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위에 그냥 20 cm 이상의 거름흙을 부어버린다면, 내년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썩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결국 나는 일 년 정도 더 키우고 싶은 이 녀석들을 파냈다. 


1살과 2살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제법 굵어진 더덕과 도라지


일 년 동안 얼마나 컸을까 싶었는데, 작년에 묻을 때와는 완전 다른 모습으로 제법 큼직하게 자라 있었다. 이렇게 탐스러울 수가! 나의 눈은 그야말로 하트 뿅뿅! 당장 이걸 구워 먹을까 하다가, 일단은 화분에 모시기로 했다. 씻어서 보관하면 보관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으므로, 거름기 없는 흙을 채운 화분에 꽂아서 보관하기로 했다. 딸이 오면 파내서 구워먹을 생각이다.


이제 겨울 준비 거의 완료다. 주문한 거름흙이 빈 텃밭에 수북하게 들어갔다. 꽃밭에도 가라앉은 부분을 덮어주고는, 그 위는 다시 우드칩 멀칭을 해줬다. 겨울 동안 땅이 얼어 뿌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순이다. 포근하게 겨울 코트를 입히는 셈이었다. 죽은 잎들과 줄기도 제거하고, 제대로 겨울 옷을 입은 정원은 훨씬 단정해 보였다. 


우드칩을 씌워서 따뜻하게 보온을 마친 꽃밭


마지막 작업은 온실이었다. 작년 겨울 동안에는 온실이 그냥 방치되었었고, 그 안에 넣어두었던 식물들은 거의 다 죽었다. 올해에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기에 작은 히터를 마련했다. 열효율이 높은 것으로 구매하면서, 온도 조절기가 별도로 달린 것으로 찾았다. 


작은 온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작동이 많이 되지 않아도 금세 따뜻해질 것이기는 한데, 그래도 난방비를 더욱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바깥에 에어캡(일명 뽁뽁이, bubble wrap)을 두르기로 했다. 구입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의 에어캡 파는 곳을 수소문하여 60cm 폭, 76m 길이로 된 두루마리를 하나를 사 왔다. 사실 사놓고서도 꽤 여러 날이 그냥 흘러갔다. 이걸 그대로 붙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겨울철에는 테이프가 무용지물이다. 


차고에서 작업중. 차고 옆에 아직도 장미가 피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줬다.


그래서 일단 비닐로 온실 모양대로 준비한 후, 그 위에 에어캡을 붙이자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이 작업을 하는 순간에도 테이프는 전혀 접착성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에어캡을 직접 온실에 스테이플러로 붙인 후, 그 위에 다시 비닐을 한 겹 덮고, 다시 얇은 나무막대를 붙여서 못으로 박는 과정으로 진행했다.


에어캡을 먼저 붙이고(왼쪽), 그 위에 비닐을 다시 씌웠다(오른쪽)


오후에 작업을 시작했더니, 해가 일찍 저물어 하루 만에 끝나지 못했다. 결국 양 옆과 뒤만 해놓고 철수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느라 또 오후에 다시 시작해서 앞면을 감싸고, 지붕까지 마무리하니 다시 어두워지고 말았다.


앞면을 붙이면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제법 훈훈하다(왼쪽). 지붕까지 작업하니 깜깜해지고 말았다(가운데).
낮에 열심히 불을 달아 놓은 덕에 저녁때가 되자 근사하게 빛이 났다


사실 에어캡으로 문까지 덮어야 완벽하게 되는 것인데, 문틈을 어찌 처리할지를 고민하다가 일단 여기까지만 작업하고는 그다음 날 눈이 내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만큼 작업을 해놓았더니, 온실 안은 제법 온기가 보존되었고, 전기 히터도 그리 자주 돌아가지 않고 유지가 되는 것 같았다. 



온도를 8도에 맞췄는데, 낮에 해가 드니 12도가 넘어 흐뭇했다. 히터 바로 앞쪽으로는 식물을 두지 않고, 양 옆으로 배치했고, 아마 문 가까운 쪽은 온도가 더 낮을 것이다. 그래도 한 5도 정도까지 낮출 생각이다. 


이 식물들은 겨울 동안 물도 조금만 먹고, 양분은 먹지 않으면서 겨울잠을 잘 예정이다. 그러고 나서 봄이 되면 다시 씩씩하게 살아나 주기를 기대해본다.


눈이 와도 괜찮아, 온실도 패딩 코트 입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당을 정리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