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진 날씨에도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힘
한국을 방문하느라 한 달간 집을 비웠다. 처음 계획으로는, 캐나다는 가을이 되면 거의 매일 비가 오니, 정원이 저절로 굴러갈 것이라는 나름의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름이 늦게 시작된 것처럼 가을도 늦게 시작된 올해 밴쿠버 날씨는 9월 말이 되어도 도통 비를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출발 날짜는 다가오고 우리의 마음은 바빠졌다. 가물은 정원은 계속 손이 갔고, 가을 정리를 해버리기엔 날씨도 작물도 모두 너무 멀쩡했다. 결국 가기 전에 큼직한 호박을 딴 것 외에는 딱히 다른 정리는 하지도 못했다. 물론 이것저것 출발 전부터 신경 써야 할 일들로 분주했던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였다.
전에는 집을 비울 때면 이웃집 여인 소닐라가 우리 집 정원에 물을 주곤 했지만, 최근에 정규 출퇴근하는 직업을 갖게 되어서 자기네 정원 물 줄 시간도 없다는 것을 아는 터라 난감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텃밭 모임 중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분이 물을 주실 수 있다고 먼저 말씀을 꺼내 주셨다. 그때만 해도, 10월이 되면 비가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별로 자주 오지 않으셔도 되리라 믿고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그분 아니었으면 텃밭은 정말 다 완전히 말라버렸을 것이다. 10월 내내 뜨거운 가뭄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달리는 것은 수확해서 드시라고 했지만, 그분은 별로 드시지 않았던 것 같다. 이웃집 여인만 토마토와 몇 가지를 따먹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그녀가 보낸 정원 사진을 보니 마당은 잘 보존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 돌아오기 사흘 전부터 밴쿠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빛나게 유지된 정원을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비에 흠뻑 젖은 정원을 만났다. 투구꽃과 애스터의 전성기를 놓친 것이 안타깝지만, 빗속에서도 아름다운 빛깔을 보여주었다. 여름내 하얗게 빛났던 퀵파이어 목수국은 완전히 분홍으로 바뀌어있었다.
텃밭을 보니 10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오이도 조금 남아있었고, 옥수수는 알이 별로 없는 두 개가 남아있었다. 라즈베리도, 고추도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고, 덜 익은 토마토와 너무 익은 콩들도 주렁주렁 달려있었는데, 비를 맞아 좀 서글퍼 보였다. 그래서 결국 하루 쉬고는 그다음 날부터 텃밭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물 주셨던 분께 호박도 따서 드시라고 했는데, 그분은 그냥 가꿔주실 뿐 우리를 위해 일부러 따지 않고 두셨다고 했다. 농사짓는 사람의 수확하는 마음을 헤아려주신 것이다. 그 조선호박은 깜짝 놀랄만한 크기로 자라서 덤불 속에 숨어있었다. 아마 잘 눈에 띄지 않아 곰도 건드리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텃밭을 싹 정리하면서 꺼내왔는데, 그 크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길이가 50cm가 넘었고, 무게도 12kg가 넘었다. 다 익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서리가 내릴 상황이었으므로 호박을 따고, 줄기에 매달려있는 나머지 꼬마 호박들도 함께 거둬들였다.
껍질째 먹는 콩은 이미 너무 익어버려서, 깍지를 벌려 콩을 수확해서 말리기로 했고, 조그맣게 붙어있던 옥수수도 따 먹었다.
정리하려면 씨앗도 챙겨야 했는데, 사실 내가 쓸 씨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나눔을 할 때 필요한데, 이번에는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아서 그리 많은 씨를 모으지는 못했다. 가장 열심히 모아야 할 시간에 한국에 있었으니까. 그래도 도라지 씨앗도, 더덕 씨앗도 조금씩 챙겼다.
날씨는 차곡차곡 추워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계속 분주하다. 마당 정리는 하루 이틀에 끝날 문제가 아니었기에 급한 일부터 정리하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마무리 중이다.
아직 꽃 구근도 못 심었고, 마늘도 더 늦기 전에 심어야 하는데, 하루가 모자라는구나. 온실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하고, 겨울 동안 보존할 것들도 따로 챙겨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겨울맞이 준비 중!
텃밭 궁금해하시는 구독자 분들을 위해서 급히 적었습니다. 사실 정리하기 바빠서 사진을 별로 못 찍었더라고요. 마음이 무척 바빴거든요. 그래도 올해에는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으니 정리가 끝나면 다시 한번 글 올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