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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Dec 20. 2022

나눠먹는 겨울의 풍경

오늘, 눈이 펑펑 내린다. 밴쿠버는 원래 눈이 이렇게 많이 오지 않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렇게 심각하게 쌓이는 눈이 오기 시작했다. 원래는 밤새 눈 내리고 나면 아침부터 비가 오고, 오후가 되면서 싹 마르는 것이 전형적 밴쿠버 날씨인데 말이다. 한국에서나 만나던, 길 옆으로 쌓인 눈이 밴쿠버에서도 이젠 어렵지 않게 보인다.


눈이 쌓인 텃밭 풍경


한국에도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올 겨울은 어디든 눈이 많이 오려나보다. 마당을 즐기는 내게 있어서, 지금은 정원이 조용한 겨울이다. 한때는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줬던 곳이지만, 지금은 차갑게 가라앉아 생명을 느끼기 어렵다. 


식물들은 잠을 잘 자고 있겠지만 동물들은 먹거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동네 곰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아서 눈 속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과연 뭘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찍힌 발자국이 아름답다.


ⓒ Olga Ostrovsky from River Springs Community https://www.facebook.com/groups/242668555782034


다람쥐와 청설모들은 여름 동안 음식을 구해서 땅 밑에 숨겨놓았을 텐데, 눈이 오면 과연 찾아낼 수 있을지? 식탐이 많아서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이 챙겨 얄밉다 싶지만, 나중에 먹겠다고 하는 일이니 또 이해를 해줘야 하겠지. 얘네들이 깜빡 잊은 도토리와 밤 덕분에 나무들이 씨앗을 퍼뜨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새들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새 모이통을 챙겨도 막상 청설모들이 덤벼들기 시작하면 남아나지 않는다. 근처 화분 등에서 점프해서 도달하고는 거꾸로 매달려서 야금야금 먹는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새 통을 흔들어서 쏟아놓고 먹는다.


새 씨앗통을 흔들어서 다 쏟아놓고 신나게 먹는 청설모. 딱 걸렸어!


새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을 텐데 지금 같은 날씨에 먹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특히나 눈이 내리면 정말 아무것도 구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여름에는 대충 넘기던 씨앗 통도 겨울에는 열심히 챙긴다. 비어 가면 바로바로 채워둔다. 그러면 새들도 열심히 날아들어 챙겨 먹는다. 


씨앗을 먹는 새 말고, 꿀물을 먹는 새도 있으니, 우리 집 단골손님 벌새도 챙겨야 한다. 여름철에는 집안 마당에 가득한 꽃을 찾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즐겨 먹는 벌새. 그러나 겨울이 시작되면 꽃이 전부 사라지고 먹을 꿀이 없어진다.


우리는 늦가을부터 벌새용 설탕물을 준비한다. 진짜 꿀을 주면 안 되고, 설탕물을 줘야 안전하단다. 꿀에는 독성이 있을 수 있어서, 1년이 안 된 아가에게도 먹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벌새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꼭 완전 정제된 하얀 설탕을 줘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어떤 설탕도 상관없다고 한다. 물론, 고급 비정제 설탕은 너무 비싸서 그걸로 벌새 설탕물을 만들려면 손이 엄청 떨릴 것이다! 


벌새용 설탕물은 설탕:물=1:4의 비율로 충분히 녹여서 사용한다. 끓였다가 식혀도 되고, 그냥 잘 섞어도 된다. 그리고 설탕이 녹고 나면 상하기 쉬우므로 남은 것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깨끗하게 제공하여야 한다. 설탕물 통이나 새 모이통은 모두 깨끗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 병이 발생하고 전염되기 안성맞춤인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잠깐 설명하자면, 새들이나 벌새들이 이렇게 곡식과 설탕물만을 먹고사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설탕물에 영양분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말이다. 이런 새들은 놀랍게도 잡식성이고, 상당히 육식성이다. 따라서 모기나 거미 같은 곤충류를 80%가량은 먹어줘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모기들이 극성을 떨 때 나타나는 벌새는 무척 반가운 존재인 것이다.


좋아하며 찾아오는 벌새, 가을철


어쨌든 이 추운 겨울철에는 별달리 먹을 것이 마땅치 않으므로 설탕물을 내놓으면, 벌새가 너무나 좋아하며, 종일 살다시피 한다. 눈 내린 날 사진을 찍자니 추워서 밖에서 오래 못 버티는 덕에 설탕물 먹는 순간은 포착하지 못했지만, 벌새는 계속해서 날아와서, 먹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계속 창밖을 힐끔거린다. 한 녀석이 오고, 또 다른 녀석이 날아왔다가 가고, 큰 녀석도, 작은 녀석도 분주히 움직이며 영하 9도의 날씨에서도 체온을 유지하느라 애를 쓴다.


날이 추울 때에는 밤에 이 설탕물 통을 꼭 실내로 들여놓았다가 아침에 꺼내 놓는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추워서 낮에도 몇 번씩 들여다가 녹여주었다. 물통이 없어지자 당황해서 주위를 뱅뱅 돌던 벌새는 다시 놓인 빨간 물통을 보며 안심하고 다시 진정한다.


꽃바구니를 달았던 끈에 앉아서 쉬는 벌새
그 옆에 와서 친구를 해주는 박새(chickadee)
박새는 와서 씨앗을 먹는다


눈이 와서 꼼짝도 못 하는 추운 날씨에, 어디를 가지 않아도 그저 부엌 창가에서 누릴 수 있는 자연은 겨울에도 우리에게 위안과 평화를 준다. 우리의 이 보잘것없는 손짓이 그래도 이 자연이 유지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짜 도움은 늘 우리가 받고 있으므로,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벌새 관련 자료 참조:  https://joybileefarm.com/organic-sugar-hummingbi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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