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원래 건강 열심히 챙기는 나인데, 봄부터 시작된 스트레스가 가을에 극도로 심해졌고, 내 인생의 큰 부분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지난 12월 들어서 모든 것이 해결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내 몸이 여기저기 탈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겨울이 되면, 원래 겨울이 이렇게 추웠었나 싶고, 여름이 되면, 여름이 원래 이렇게 더웠었나 싶다. 감기에 걸려서 앓고 있으니, 이게 원래 이렇게 아팠었나 싶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간 아프다 했던가. 그런데 사람 마음은 간사해서, 빨리 낫지 않는다고 성화를 하게 된다.
머리에 비를 맞으면서 한기가 들더니, 열이 오르고 감기에 걸렸다. 평소에는 가볍게 극복이 되었는데, 이번엔 뭘 해도 회복이 안 되는 것이었다. 밤에는 다시 오한이 들고, 기침하느라 못 자고, 아침에는 간신히 무거운 몸으로 일어났다가, 하루를 허송하듯 보내고, 그렇게 일주일 넘는 시간을 보냈다.
분명히 쉬는 것 같은데, 어쩌면 마음이 전혀 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크리스마스에 가 있었고, 연말에 하고 싶던 일들에 가 있었다. 누워있어도 머릿속은 계속 바빴다.
그러다 젊을 때 수첩에 늘 적어가지고 다니던 보왕삼매론의 구절이 떠올랐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내 마음의 욕심을 덜어내기 위해서 아픈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아직 덜 쉬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욕심을 비우고 진심으로 나를 쉬게 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아무리 심하게 아파도 결국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나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이제 그만 징징대고 그냥 앓자. 감기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