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들뜨는 이유
며칠 전, 자려고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지나가다 화장실을 빠끔 들여다 보고는 미소를 짓는다.
"왜?"
"우리 결혼했잖아."
그날은 우리 결혼기념일이었다. 이번 연말연시에는 내가 계속 아팠기에 우리는 기념일들을 다 대략 넘겼다. 원래는 밴쿠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식사하고 하룻밤 외박을 하기로 계획했었는데, 다 취소한 상황이었다.
평소 같으면 남편이 근사한 저녁식사라도 차리겠지만, 그것도 하지 말자고 했다. 그냥 새해 메뉴로 만든 꼬리찜과 해파리냉채 등등 남은 음식으로 차려서 먹었다. 차려입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결혼기념일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었다.
남편의 그 기분 좋은 미소를 보며, 4년 전 결혼을 하루 앞두고 우리가 얼마나 들떠 있었는지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내일 드디어 결혼한다!"
결혼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아주 간단한 결혼 절차였지만, 그 전날 꽃을 준비하고, 옷을 입어보고, 그러면서 우리는 많이 설레었다. 내일이면 우리가 부부가 되는 거야.
부부가 되면 뭐가 달라지지? 옛날엔 결혼을 해야 비로소 초야를 치르기로 되어있으니 남자들은 첫날밤을 지낼 생각에 싱글벙글했었다.
첫날밤 때문에 떨려서 들뜬 남자를 나는 이미 경험해 봤다. 드디어 그녀와 같이 잔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미래를 함께 꿈꾸는 것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던 전형적인 구시대적인 결혼이라니. 이 여자와 매일 밤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신나는 것, 그게 결혼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결혼이 기다려진다는 것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서글픈 일이다. 결혼해서 바뀌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시작부터 이미 볼장 다 본 커플이었다. 우리의 첫 경험은 진작에 치렀고, 그것도 당연히 둘 다 이미 처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던 당시 우리는 이미 한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결혼 후 달라질 것은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저 설레고 신이 났다.
우리는 왜 결혼이 하고 싶었을까?
그냥 같이 사는 거랑은 뭐가 다른 걸까? 나도 잘은 모르겠다. 아마 서로에게 강한 소속감이 생긴다는 것이리라. 서로의 애인이기보다는 그의 아내가, 그녀의 남편이 되고 싶은 마음은, 가족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게 돌에 새기는 것도 아니고, 이혼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안 해본 것도 아닌데, 그런데 우리는 진짜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올해, 결혼 5년 차로 들어가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신혼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둘이 결혼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고맙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 결혼한 것 같다. 마음 놓고 소중히 대해도 되는 관계임에 너무 감사한다.
소중하게 대해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지 않고,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위해서 우리는 결혼을 꿈꿨던 것 같다.
소유욕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는 우리가, "나는 온전히 당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닭살스러운 멘트를 서슴지 않고 날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지.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고백한다.
"내 배우자가 되어줘서 고마워."
"내가 고맙지. 난 영원히 당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