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발음의 가장 기본은 억양과 강세
영어 발음이 훌륭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듣기만 하면 된다고 지난번 글에서 강조를 했다. 발음이 나쁜데 상대가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강세를 잘 넣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영어는 한국말과 달리, 억양과 강세가 의사소통에 무척 중요하다. 우리 생각에는 그저 "묻는 말은 끝을 올리고, 대답하는 말은 끝을 내리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어의 억양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 억양까지 가기도 전에, 일단 각 단어별로 그 안에 강세가 따로 들어있는데, 그걸 틀리면 상대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 어렸을 때 재미나게 했던 놀이가 바로 "모나리자 놀이"였는데, 각 음절별로 강세를 달리해서 빨리 말하는 것이었다.
이 놀이의 묘미는, 묘하게 헷갈려서 빨리 하다 보면 실수를 하기 쉽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틀리게 발음하든 이 긴 단어의 의미는 전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놀이를 하며 자랐다. (이 놀이는 내가 구세대임을 증명하는 것일까? 하하!)
영어를 모국어를 하는 사람들이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강세를 어디에 주느냐에 따라서 단어의 뜻마저 바뀌어버리고,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전, 오타와에 가기 위해서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방을 예약하려는 의도였는데, 내가 오타와 호텔인 줄 알고 전화를 건 곳은 그 호텔 체인의 본점이었고, 당시에 불어가 영어보다 편했던 나는 불어로 예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다짜고짜 어느 도시에 갈 생각이냐고 묻는 바람에 내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다.
나는 불어와 비슷하게 해서 오타와라고 발음을 했고, 상대는 물론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계속 옥신각신 한 끝에 나는 결국 철자를 불렀고, 상대는 첫음절에 힘을 잔뜩 주고는 "아~라와!"라고 외쳤다. 그랬다. 강세는 첫음절에 있었고, 그러면서 오 발음은 아 발음에 더 가까웠다. 당시에는, "알아오긴 뭘 알아오냐"며 깔깔 웃고 끝났지만, 영어 강세에 대한 첫 경각심은 아마 그때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것은 사실 영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서양언어들이 단어별 강세를 다르게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슈퍼마켓을 찾다가 결국 "쑤뻬르마아아아아켓!"이라고 외치는 경찰관을 만났고, 그 이후로는 어디 가든지, 영어를 해도 이탈리아어 방식으로 "체크 아아아아아웃!"이라고 외치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무의식 중에 "커피이?"라며 끝을 올려 발음하는 순간, 상대는 새로운 단어를 마주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뭐냐고 묻는다. "커피라고, 이 사람아! 커피숍에서 커피 찾는 게 뭐가 어려워?!!!" 그러나 틀리면 틀릴수록 자신감이 줄어들어서 강세는 반대로 가게 되어있다.
따라서 영어 단어를 외울 때에는 반드시 강세를 맞게 넣어서 외워야 한다. 심지어 발음이 틀려도 강세만 맞으면 상황에 따라 눈치껏 알아듣기도 한다. 어떨 때 보면, 저 사람은 분명히 나보다 영어 발음이 구린 것 같은데, 저 사람 말은 원어민들이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혀도 구부리지 않고, 콩글리쉬로 분명하게 발음하는데 어떻게 알아들을까?
그런 사람들은 틀리는 와중에도 강세를 잘 줘서 발음하기 때문에 그렇다.
처음 농사짓기를 시작하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 모종을 파는 한인 농장을 갔는데, 루꼴라를 팔길래 사 왔다. 남편이 이게 뭐냐고 물어서 아루굴라(arugula)라고 답을 해줬다. 루꼴라가 영어로 아루굴라라는 말은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요리하는 우리 남편이 루꼴라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다그쳐봐도, 처음 들어본다며, 자기가 모르는 것인가 보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의문은 자그마치 한 달이 지나서 풀렸다. 내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설명을 하다가 포기를 하려는 순간, 다시 철자를 확인하려고 인터넷 창을 열었고, 거기 쓰여있는 것을 본 남편은 이렇게 외쳤다.
"Ah! Arugula!"
뭐가 다르냐고? 나는 이 아루굴라가 원래 이태리어니까 당연히 강세가 끝에서 두 번째 음절에 가리라 생각하고 "아루구울라!"라고 했었는데, 뜻밖에 이 단어의 강세는 두 번째 음절에 있었다. 그렇다면 "아루우굴라!"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번째 음절에 강세가 가는 경우, 문장 속에 들어가면 첫음절의 '아'는 사실상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을 따라서 두 번째의 '루'소리에 힘을 줘서 발음했더니, 이게 '루꼴라'라고 발음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게 들리는 게 아닌가!
아루굴라 발음은 다음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도대체, 아루우굴라나 아루구울라나 그게 그거지 뭘 그렇게 까다롭냐고 묻는다면, 그들의 귀와 발음구조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발음 그 자체보다도 높낮이나 강세로 소리를 구분하는 데에 익숙하다.
작년에 한국 갔을 때, 나는 한국의 내 짐을 정리하느라 무척 바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대표 중고 판매 앱인 '당근'을 사용했는데, 알림이 올 때마다 하이톤으로 "당근!"이라고 울리는 것이었다. 나는 당근 앱에서 나는 소리가 당근인 것이 웃기기는 했어도 순식간에 적응을 했다. 그러나 남편의 귀에는 내 전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뭔지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급기야 어느 날 밥 먹다가 내게 물었다.
"그 헨리(Henry)라는 소리는 뭐야?"
"무슨 헨리? 헨리가 어디서 나와?"
나는 그게 내 전화기에서 난다는 뜻인지도 몰랐는데, 남편이 바로 그 똑같은 억양으로 "헨리"를 외치자 깨달음이 왔다. 하이톤의 당근 알림 소리가, 본태 서양인의 귀에 Henry로 들렸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남편이 들은 것은 우리말로 어떻게 발음되느냐가 아니었다. 억양과 톤이었다. 그냥 평이하게 당근이라고 발음했다면 그렇게 듣지 않았을 것이다. 기묘하게 톡 튀는 소리와 억양의 느낌으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영어에서의 강세의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감이 오는가? 그러면 다음번에는 문장 안에서의 강세 이야기를 해보겠다.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Zach Dy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