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일까? 아니면 내가 기분이 좋다는 뜻일까?
세상 쉬운 말이 전혀 뜻밖의 뜻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당황한다. 누구나 다 아는 기본 단어에다가, 들어본 적도, 심지어 써 본 적도 있는 문장이 허를 찌를 수 있다는 사실.
이 문장을 읽어보자
I'm good, thanks.
정말 어려울 게 없을 것이다. 좋다는 말이지 않은가. good이 좋다는 뜻이라는 것은, 심지어 영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다 아는데, 그러면 이 문장은 좋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기본적으로 좋다는 말은 맞다. 이렇게 주로 사용된다.
A : Hi, how are you today?
B : I'm good, thanks, how about you?
A : I'm okay, thank you.
집 앞에서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데, 강아지 산책시키는 이웃이 지나가다가 인사를 건네고, 그에 대답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대화이다. 실제로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도 서슴지 않고 인사를 나눈다. 한국에서는 누가 갑자기 길에서 인사를 하면, "아는 사람인가?" 하고 당황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때 당황한다. "뭐 기분 나쁜가?" 이런 기분이 들기 쉽다.
오늘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말에서의 "I'm good."은,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말을 뜻한다. 그야말로 영혼 없는 인사에 해당한다. 더 많은 질문이나 설명을 요하지 않아도 되는 인사말인 것이다.
아니, good 이면 좋다는 말이지, 왜 그럭저럭이냐고 따져 물으실지도 모른다. good의 기본 뜻은 "좋다"가 맞지만, 그렇다고 항상 그렇게 좋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학교 숙제에도 good을 받아온다면, 그것은 그리 좋은 성적이 아닌 것처럼.
학교에서 숙제 밑에 설마 나쁘다고 쓰는 선생님이 있을까? 그건 교육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피하는 편이다. 따라서 성적에 따라오는 문구는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물론, 낙제를 해서 F를 받는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Excellent - Very good - Good - Satisfactory (Passable, Competent) - Fail
위 단어들은 선생님들이 흔히 A-B-C-D-F 대신에 사용하는 문구이다. (선생님들마다 좀 다르긴 하다) 여기서 보면, good은 세 번째, 즉 보통, 알파벳으로 말하면 C에 속한다. 사실 보통에도 못 미친다고 할 수도 있다, 마지막은 낙제니까 말이다.
아니, 그러면 저기서 satistactory는 또 뭐냐고 황당해할 수 있다. 저건 사전에서 분명히 '만족스러운, 충분한'이라는 뜻인데, 그게 왜 저렇게 뒤에 가느냐고 말이다. 낙제 직전의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만족스럽다는 말은, 간신히 통과할 만큼의 성과를 겨우 냈다고 평가하는 말이다. 그래서 passable이라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competent도 사전에는 '유능한'이라고 나오는데, 문맥에 따라서 그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역시 성적을 매기거나 할 때에는, 겨우 통과할만한 선을 넘어섰고, 뛰어난 점은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실제로 원어민들은 정말 좋다고 할 때, good 보다는 great, wonderful, excellent, amazing, fantastic 같은 강력한 단어들을 사용한다. 이런 단어들은 다 진짜로 좋다는 의미이지, 그저 그렇다는 뜻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물론 반어법으로 사용되는 것은 예외이니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심지어, "It's good." 보다 "It's not bad."가 억양에 따라서 더 좋게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억양에 달려있다. 한국어로도 "좋아."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면, 어쩔 수 없이 동의한다는 뉘앙스를 갖게 되는 반면, "오, 이거 나쁘지 않네!"라고 외친다면 정말 마음에 들어서 하는 말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서, "I'm good."은 무슨 뜻일까? 그야말로 내 상태가 괜찮아서 더 이상 다른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 때 사용한다. 다음 예문을 보자.
Casher: Hi, would you like a bag?
John: I'm good, thanks.
교재에서 나온 대화이다. 물건을 구매 후에, "봉투 드릴까요?"라고 물었을 때,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No, thank you."라고 대답해도 된다. 그런데 원어민들은 위의 표현을 정말 자주 사용한다.
실제로 수강생 한 분이 카페에서 일을 하는데,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 테이크아웃 하는 커피를 건네주면서 손님에게 늘 반대로 제공을 했다고 고백했다. 커피컵 위에 플라스틱 뚜껑을 원하냐고 물었을 때, 손님이 "I'm good."이라고 말하면, 한국어로 "좋아요."라고 말하는 줄 알고, 언제나 뚜껑을 줬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손님은 자기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냥 받아가곤 했다는 것이다.
아마 손님은, 어차피 줄 것이었으면서 왜 물었을까 의아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고, 점원이 뚜껑 드리냐고 물었을 때, "Okay."라고 대답했더니, 점원이 "Yes or no?"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손님이 "I'm okay."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됐다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막상 표정은 어정쩡하게 달라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원은 혼란이 와서, "그래서 달라고? 말라고?" 이렇게 물어보게 된 것이다. 만일 뚜껑을 원한다면, "Yes, please."라고 명확하게 말해줘야 한다.
그러면 다시 비슷한 예문을 보자.
A: Would you like some coffee?
B: I’m good, thanks though.
한국에서는 미장원에만 가도 커피 드시겠느냐고 물어보지만, 여기서는 더 큰 거 사러 갔을 때 물어본다. 우리는 차 딜러샵 갔을 때, 살 거 같으니까 이 말을 하더라. "커피 한잔 드릴까요?" 이렇게 물어본다면 위 예문처럼 대답할 수 있다. 봉투와 약간 다른 점이라면, 뒤에 though를 붙였다. 안 먹을 거지만, '그래도'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A: Can I get you some coffee?
B: I’m okay, but thank you for asking.
같은 말을 이렇게 다르게 해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though대신에 but을 넣은 후, 구체적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지만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모든 언어에는 뉘앙스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하나의 표현이 꼭 하나의 의미만 갖지 않는다. 상황과 목소리 톤에 따라서 느낌은 정 반대로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전을 보면서 일대일로 단어를 암기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good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으니, 어디 가서 새초롬하게 "I'm good, thank you though."라고 한 번 말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