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모자라서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어휘력, 문법, 발음. 이것들만 극복하면 좀 영어를 잘 할거 같은데, 정말 생각만 해도 공부하기 싫고 잘 되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역이다.
물론 이 세 가지는 모든 언어의 기본일 것이다. 이것이 갖춰지지 않으면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를 기본이라 말할 것인가? 우리는 때로 너무 엄격하게 선을 그어놓은 후 미리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이 세 가지 중에서 어휘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영어를 가르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자신은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단어집을 외우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물론 단어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단어만 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단어는 요리로 치자면 재료이다. 우리가 저녁 밥상을 차리려면, 식재료가 있어야 한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아, 먹을 게 없네. 우리 외식할까?" 이런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집에는 쌀도 있고, 김치도 있고, 참기름, 깨, 된장, 파, 마늘, 양파, 당근 등등 기본적인 것들은 물론이고, 꽁치통조림이나 냉동실의 고등어라든지, 달걀 등 뭔가 좀 얹을만한 재료들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막상 마음먹고 상을 차리려면 멀쩡하게 한 상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단, 이 재료들을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도를 알아야 한다. 달걀을 가지고 프라이를 할 수도 있고, 달걀찜이나 달걀말이도 가능하다. 김치볶음밥을 하면서 스크램블 해서 넣을 수도 있고, 호박을 썰어서 달걀을 씌워 전을 부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장고 안에 아무리 음식 재료가 가득 있어도 조리를 할 줄 모르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아무리 장을 봐온다고 해도, 아무리 고급진 재료를 사모은다 해도 음식 솜씨가 늘지는 않는다. 계속 그렇게 버티다 보면 냉장고 안의 음식들은 상해서 버리게 된다. 물론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 쌀이나 장류도 있지만 말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못하니 단어부터 외우겠다고 하면, 그 단어들은 장보기나 마찬가지다. 22000 단어 같은 것을 외워도 거기에 있는 단어들을 쓸 줄 모르는 한, 문장의 수준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냉장고의 재료들처럼 상해서 없어진다. 그래도 기본 단어는 언제나 남아있다. be동사라든가 get, have, about... 그냥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은 단어들만 남는다.
하지만 about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해도, 막상 이 단어를 맞는 상황에 쓸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달걀이 있어도 프라이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달걀찜 만드는 것도 배우고, 달걀말이도 배워야 한다. 막상 할 줄 알게 되면 이런 것들은 기본 반찬이 될 수 있다.
영어에서 필요한 것도 그것들이다. 실제로 원어민들이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대략 3000 단어이다. 그래서 맨날 3000 단어 정복이라는 타이틀의 책이 나오고, 롱맨이나 옥스퍼드에서도 이런 단어 리스트를 공개하고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롱맨 기본 3000 communication words:
https://www.lextutor.ca/freq/lists_download/longman_3000_list.pdf
옥스퍼드 기본 3000 words
이런 리스트를 읽어보면, 정말 모르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다. 뜻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 단어도 몇 개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들어봤던 단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3000 단어를 다 쓰지 않고, 더 기본적인 1000 단어만 가지고도 웬만한 대화는 다 나눌 수 있다.
실제로 일상의 문장을 들어보면 복잡한 단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런 문장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쉬운 문장도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일 예로, 누구나 아는 단어 speak, talk, say, tell... 전부 기초 단어지만, 이 단어를 이용해서 적절하게 문장을 만들려면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다. 전부 "말하다"인데, 왜 "Don't say me a lie."라고 하면 안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용법은 아래 링크 참조)
즉, 모든 동사에는 쓰임이 있다. 쓸 수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그리고 어떤 형태로 써야 하는지를 알아야 써먹을 수 있다. 요리로 치자면, 미역국에는 파를 넣지 않는다든가, 오이소박이를 할 때에는 부추가 궁합이 맞는다든가 하는 것을 알야 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해서 단어를 열심히 외웠다고 치자. 모자, 양말, 장갑, 바지... 그런데 이걸로 문장을 만들려니 동사를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우리는 모자를 입지 않고, 양말을 끼지 않는다. 쓰고, 신고, 끼고, 입는 이 동사들을 이 단어들과 매치시켜서 익혀야 한다.
즉, 본인이 어휘력이 모자란다고 생각된다면, 과연 정말 단어를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단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인지 한 번 구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습은, 단어가 아닌 문장을 통해서 하자.
그러면 가볍게 "잊지 말고 너네 언니한테 안부 전해 줘."라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어지도록 말이다.
Don't forget to say hello to your sister for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