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싱? 공주님 드레스랑은 상관없는 거야?
한국에서는 원래 일반적으로, 채소를 익혀서 나물로 먹거나, 아니면 김치, 겉절이 등을 만들어서 한 풀 꺾어서 먹었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식물이 가지고 있는 냉기를 꺾어줘서 몸을 차게 만들지 않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특히나 암환자나 몸이 냉한 사람에게는 그래서 샐러드보다는 나물을 권하는 편이다.
그러나 요새는 어쨌든 서구의 영향으로 샐러드는 우리나라에서 뺄 수 없는 기호 식품 중 하나가 되었다. 더구나 채식주의자가 늘면서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가 각광을 받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샐러드에 닭고기나 소고기 스테이크 등을 얹어서 한 끼 식사로 대신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나는 단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에 샐러드에는 보통 간단하게 올리브오일과 애플사이다 식초를 뿌리는 수준을 선호한다. 그런 옵션이 제공되지 않는 식당이라면, "소스 따로 주세요."라고 말하고, 아주 조금만 섞어서 먹곤 했다.
캐나다에 와서는 외식을 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집에서 샐러드를 즐겨 만들어 먹었다. 특히 여름철에는 마당에서 갓 딴 상추와 각종 야채들을 섞어서 만들어 먹으니 시원하고 상큼하였다. 거기에 예쁜 식용꽃까지 따서 얹으면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보통 함께 식사 준비를 하는데, 결혼 초기에 샐러드를 만들던 어떤 날이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무심코 물었다.
"소스는 당신이 만들래?"
"무슨 소스?"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소스라니, 샐러드를 먹는데 소스가 있어야지. 그런데 그건 소스(sauce)가 아니고 드레싱(dressing)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샐러드 드레싱이라는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늘 소스라고 하곤 했다. 그게 그거지 뭐!
영영사전에서는 엄연히 이렇게 나온다.
dressing : a sauce for salads, typically one consisting of oil and vinegar mixed together with herbs or other flavorings.
즉, 광범위하게 잡으면 소스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무도 소스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일반적으로 요리에서의 기준으로 보면 이런 차이가 있다.
소스(sauce)는 보통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뭉근히 졸여서 만든 것을 일컫는다. 스파게티 소스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건 소스가 맞다. 토마토소스, 알프레도 소스 등등, 소스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데, 다들 어떤 조리 과정을 거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돈가스 소스나 우스터소스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소스의 경우, 위에 뿌려주거나, 아니면 조리할 때 풍덩 담가준다.
드레싱(dressing)은 날재료를 사용한다. 오일과 식초를 넣고, 뭔가 다른 풍미를 얹어서 만든다. 우리가 랜치 소스라고 흔히 말하는 것도 랜치 드레싱(Ranch dressing)이다. 드레싱은 일반적으로 샐러드에 사용하고, 보통은 서빙하기 전에 채소에 골고루 묻혀서 나온다.
그러면 이왕 나온 김에 이 요상한 dress라는 단어를 좀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드레스(dress)는 옷이다. 만화에 나오는 공주가 입는 것 같은 레이스 달린 드레스, 유치원생들의 꿈의 의상이 드레스이다. 아니면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아름답고 치렁치렁한 그 의상이다.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옷으로 친다고 해도, 영어에서의 dress는 그냥 원피스를 통틀어서 하는 말이다.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나뉘지 않는, 한쪽짜리 원피스를 드레스라고 한다. 여자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입기도 하고, 직장인 여성들도 안에 짧은 드레스를 입고 위에 재킷을 걸치기도 한다. 여름철에는 리넨으로 된 시원한 드레스를 입는다.
그래서 dress를 동사로 하면, '옷을 차려입다'라는 뜻이 된다. 외출 시간이 다 되었을 때 흔히 옷을 갈아입지 않는가? 그런 것도 다 dress이다.
I should get dressed now. 나 지금 옷 (갈아) 입어야 해.
Go and get dressed. 가서 옷 입어. (보통 애들에게)
그러다 보니 옷이 아니어도 뭔가를 입히거나 씌울 때에도 사용한다. 특히 병원에서 환자에게 드레싱 해준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상처를 소독한 후, 그 부위를 감싸주는 행위를 말한다.
샐러드 드레싱이 채소들의 겉면에 소스를 골고루 묻혀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상처를 감싸주거나 옷을 입히는 이미지와 연결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단어는 이렇게 이미지로 익히는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런데 또 생각지도 못한 것이 훅 치고 들어온다. 왜 이걸 dress라고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캐나다인 남편도 모른다고 말했다. 생선이나 닭 같은 가금류를 잡아서 손질해서 요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dress(동사)한다고 부르는 것이다. 심지어 털을 뽑고, 겉껍질을 태우는 과정을 다 포함하여, 내장을 깨끗하게 제거하고 완전히 손질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 대표적 사오정 가정부인 Amelia Bedelia는 그림책 캐릭터인데, 주인아주머니가 닭을 dress 해놓으라는 말을 오해하고 번듯하게 옷을 입혀 놓았다. 사실 이 책에는 이것 이외에도 다양한 오해의 내용이 나와서 다의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그림책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러면 dressing이라고 명사로 쓰이면, 음식에서는 샐러드 드레싱만을 말한다고 했었는데, 혼란을 피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
바로, 이렇게 잡은 닭이나 가금류의 속을 채워 넣는 재료 또한 dress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stuffing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stuff는 뭔가를 채워 넣는다는 의미의 동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요리를 말할 때, 속 채우는 재료를 dressing 또는 stuffing이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stuffing은 날재료, dressing은 익힌 재료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왼쪽은 완전히 손질이 다 된 상태의 칠면조이다. 즉 안에 dressing 또는 stuffing을 받을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stuffing이 끝난 닭고기이다.
자, 설명을 듣는 동안 뭔가 이해가 되는 듯하다가 다시 머릿속이 복잡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단순하게 돌아가서, 꼭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보자.
1. 소스(sauce) : 돈가스 소스, 스파게티 소스, 홀런데즈 소스 등등
2. 드레싱(dressing) : 샐러드드레싱, 닭 등의 속을 채우는 재료
3. 딥(dip) : 살사, 과카몰리, 후무스, 마요네즈 등등, 찍어 먹는 재료
간신히 소스와 드레싱을 정리했는데 딥(dip)이 불쑥 등장했다. 우리는 흔히 딥핑소스(dipping sauce)라고 부르고, 심지어 구글 검색해도 그 단어가 나오지만, 사람들은 막상 이렇게 딥핑소스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주로 그냥 짧게 딥(dip)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사용하는 초고추장이나 쌈장도 이 딥(dip)에 해당된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광범위한 의미에서는 모두 소스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요리에 더해져서 그 요리의 맛을 최대로 살릴 수 있게 해주는 걸쭉한 액체 재료이니까. 그러나 각종 소스들이 따로 역할이 있고, 그것들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냥 다 소스인거지 그러는 게 어딨느냐고 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한식집에서 오이 찍어먹으려고 한다면, "쌈장 주세요."라고 말을 하지, 쌈장 소스 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오이 찍어 먹게 소스 주세요." 하지도 않을 것이다. 쌈장은 그냥 쌈장이니까.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마음대로 섞어서 쓰더라도, 외국에 가면 우리도 그에 맞는 단어를 사용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