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도 아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지난번 leave 관련 글(https://brunch.co.kr/@lachouette/595) 마지막에서 나온 문장의 답변을 뒤로 미뤘더니 궁금하다는 독촉이 여러 건 들어왔다. 다른 글을 먼저 올릴까 하다가, 궁금하게 해 놓고 무책임하게 굴면 안 되기 때문에 그다음 이야기를 해보겠다.
Come on, it's time we left!
어서 가자, 우리 갈 시간이야!
이 문장이었다. 그냥 leave를 설명하다가 갑툭튀 한 이 문장은, 분명히 과거 시제를 사용했는데, 의미상으로는 과거가 아니란다. 우린 아직 안 간 건데 도대체 왜 과거를 썼을까?
만일 내가 이걸 "가정법이라서 그래."라고 대답하면, 다들 나를 미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정법은 이름만 들어도 짜증 나는 문법 용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는 가정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if도 없지 않은가? 사실 나도 가정법이라는 문법 용어로 정의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보다는 언어에 대한 감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영어는 한국어와는 상당히 다른 구조여서, 사실상 일대일 대응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
간단히 말해서 'apple=사과" 이 정도의 몇몇 단어만 일대일 대응으로 봐줄 수 있을듯하다. 그 말은, 문장이나 단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어에는 반갑지 않은 시제가 여럿 있다. 수강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시제는 가정법과 현재완료이다. 한국어로 딱 맞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고, 그 느낌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사실 나도 예전에 영어 못하던 시절에, 남동생이 누구랑 통화하면서 should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이상한 단어를 일상회화에서 쓰냐며 경악한 적이 있다. 이 알레르기 반응은 대부분의 영어 초보자에게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름만 들어도 싫은 가정법이다.
우리가 '가정'한다고 말을 하면, 한국어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떤 가정이든 문장이 다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어는 다르다,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가정인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몸이 새라면..."과 "내일 비가 오면..."은 그래서 다른 시제를 사용하게 된다.
즉, 사실이 아닌 것을 그렇다고 할 때, 그들은 그걸 그냥 일반 시제로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든 비틀고 싶은데,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과거형이다. 즉, 형태만 과거형이지, 이미 과거에 발생한 일은 아닌 것이다.
Nate: Where did you lose your list? (네 리스트를 어디서 잃어버렸어?)
Claude : If I knew it, I could find it. (그걸 알면 내가 찾을 수 있게?)
잃어버린 리스트를 찾아달라는 클로드의 말에, 네이트는 그걸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묻는다. 그러자 클로드는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고 "그걸 알면 내가 찾을 수 있겠지."라고 대답을 한다. 여기서 그걸 '알면'이라는 단어가 과거형으로 쓰였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의식 중에 이걸 과거로 해석을 한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찾을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아니다.
여기서의 knew는 문법에서 말하는 '현재 사실의 반대'를 나타내기 위해 과거형으로 쓰인 것일 뿐 과거가 아닌 것이다. '내가 알면'이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나는 사실 몰라."라는 이미지를 전송하고 싶다 보니, 현재형을 쓰지 못하고 과거형으로 가는 것이다.
반면에 내일 공원에 가기로 했는데, 오늘 보니 날씨가 끄물끄물한 것이다. 비 오면 어떡할까? 이런 감정이 올라오면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한다.
If it rains tomorrow, we can watch Netflix at my place.
내일 비가 오면 우리 집에서 넷플리스 봐도 되지.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현재형을 사용한다. 내일이어도 미래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건 한글도 그러니 패스. ('내일 비가 올 거면'이라고 하지 않음)
그럼 아주 비슷한 아래 두 문장을 보자.
① If you spoke Italian, you could come with me to this meeting.
② If you speak Italian, you can come with me to this meeting.
둘 다 문법적으로 완전히 맞다. 그리고 모두 현재 상황에서 쓸 수 있다.
①은 상대가 이태리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즉, 네가 이태리어를 할 줄 알면 이번 회의에 데려갈 텐데, 못해서 데려갈 수가 없다는 얘기다. 즉, 지금 못 데려간다는 것이지만 과거 시제를 쓴 것이다. 벌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②는 네가 이태리어 할 줄 알면 데려가주겠다는 말이다. 나는 네가 이태리어를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열린 가정으로 말을 한 것이다.
문법 용어로 가정법 현재, 가정법 과거, 가정법 과거완료... 이런 이름을 나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름들이 가정법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운 이름을 버리고 설명을 들은 분들은 의외로 굉장히 쉽게 가정법을 받아들인다.
나중에 가정법에 대해서 더 자세히 따로 다루겠지만, 일단 가정법의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가정을 하되, 그게 실현 가능한 가정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고, 그것에 따라서 시제를 맞춰서 넣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현 가능성이 없고, 현재 사실의 반대를 말하고자 할 때, 영어에서는 특이하게도 과거 시제를 사용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설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고민하던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Come on, it's time we left! = Come on, it's time to go!
그러면 여기서는 우리가 떠났다고 가정을 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작에 떠났어야 했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본다면, "우리가 이미 떠났어야 하는 시간이야."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time 앞에 about이나 high를 붙여서도 잘 쓴다. (대해서/높은 아니다.) "적당한 때가 되었다", "이제 정말 그렇게 할 때다' 이런 의미로 사용된다.
Come on, it's high time we left! / Come on, it's about time we left!
그럼 다른 문장으로 비슷하게 응용해보자.
It's time we went home. 집에 가야할 시간이야.
It's time you cleaned your room. 네 방을 청소할 때가 되었구나 (청소하렴)
It's high time I got a new phone. 이제 정말 폰을 바꿀 때가 되었네.
I think it's about time she told them the truth. 그녀가 그들에게 진실을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대체적으로 쉬운 단어들만 사용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해석이 될 것이다. 일상에서 정말 흔히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므로, 여러가지로 활용해보시기 바란다.
영어에서는 과거시제 뿐만 아니라, 미래시제가 꼭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시제가 꼭 현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가정법도 좀 더 살펴보면 좋겠고, 과거가 과거로 쓰일 수 없는 다른 것들도 더 둘러보면 좋겠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머리가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또 다음 기회에...
타이틀 사진 : Unsplash의 Hadija Sai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