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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23. 2019

시애틀에서 이산가족 상봉

추석은 역시 가족과 함께

지난번 일기에서 딸 만나러 간다고 신나서 글 올렸는데, 그러고 나서 갑자기 꼬이는 일이 발생했다. 남편 퇴근해서 같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녁 8:25으로 예정되었던 비행기가 9:54로 딜레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비행기가 곧장 시애틀로 오는 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서 11:05에 갈아타야 하는데, 엘에이 버뱅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그 비행기 출발 이후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귀신이어도 갈아탈 재주는 없는 것이다. 


아 진짜 이 비행기 여행이라는 것은 정말 꼬이면 일파만파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데, 우리 허니문 떠날 때도 시작부터 그러더니 이게 무슨 난처한 상황인지... 딸은 항공사에 전화를 해서 여러 가지 대안을 받았고, 그래서 공항 가는 길 도중에 버뱅크 공항에서 LAX 공항으로 급 변경하여 이동하기에 이르렀다. 엘에이에만 해도 국내선 탈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딸은 기차로 이동 중이었는데, 이미 기차에 결함이 생겨서 기차도 연착이 되어 여러모로 시간이 아슬아슬해진 것이다. 그쪽 옵션으로는 9:00에 LAX 출발해서 11:05에 기존 비행기로 갈아타라는데, 트랜짓 시간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거다. 그 앞에 7:50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딸이 잡기엔 너무 아슬아슬하고.. 기차에서 뛸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9시 것으로 변경이 되었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결국 공항에 도착하니 7:50 비행기도 연착이 되어 8:50에 출발을 하게 되어서 딸은 그것을 타게 되었고, 그다음 비행기도 또 연착이 되어서 새벽 1:25에 출발하는 것으로 변경이 되었다.


다행이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우리는 새벽 1시에 데리려 나가려 했는데 새벽 3시에 데리러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시작부터 완전히 날밤 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온다니 다행이고 감사한 것으로...


우리는 어쨌든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한 오후 5시쯤 집을 떠났다. 미국으로 넘어가는 보더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체될까 다소 걱정을 했었는데, 의외로 대기 차가 한 대도 없어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보더로 국경 넘어 미국 가는 것이 오랜만이다 보니 오피스 안으로 들어가서 지문이랑 사진 찍고 돈도 $6 내야 해서 남편이 깜짝 놀랐다. 캐나다인들은 이 과정을 하지 않으니까 이런 경우를 처음 본 것이다. 


국경을 넘어가니 폰이 안 되기 시작했다. 출발 전에 로밍 신청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사실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 신청을 안 했었다. 그런데 딸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가 없으니 사람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가는 길인 폭우가 퍼붓고, 마음이 완전히 신나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간식을 챙겨 왔지만 우리가 시애틀에 도착하면 식당이 문 연 곳이 없을 테니 가는 길에 뭔가를 먹자고 내가 제안을 했다. 남편은 패스트푸드를 전혀 사 먹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버거집에 가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맥도널드나 버거킹과는 비교가 안 되는 파이브 가이즈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미 국경을 넘기 전, 데이터가 있을 때, 가는 길에 있는 파이브 가이즈를 검색해두었고, 그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파이브 가이즈에 처음 와 본 남편은 마냥 신기해했다. 식전에 무료로 땅콩을 무제한 먹을 수 있는 것도 재미있었고 결정적으로, 먹어보더니 "맛있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파이브 가이즈는 한국에 체인이 들어와 있지 않지만, 냉동실 없는 버거집으로 유명하고, 인앤아웃이나 쉑쉑버거와 마찬가지의 수제버거 브랜드이다. 패티 두 개짜리의 버거를 깨끗하게 해치우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사실 나는 버거집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딸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곳은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속 답답한 나는 한국 폰을 살려서 로밍을 이용하기로 했다. (난 아직 한국폰을 최저가 플랜으로 살려두었다. 종종 본인 인증할 일이 생길 때 속수무책이어서) KT 국제 서비스 쪽으로 전화를 걸어서 11000원/24시간짜리 로밍을 이틀 선택하였다. 우리가 2박 3일이니 무난히 쓸 수 있을 테니까. 서비스로 30분 무료 통화가 딸려왔다. 접속이 되는 즉시 딸이 보냈던 문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가 새벽 3시까지 픽업하러 가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미리 예약한 Comfort Inn은 전에 딸 졸업식 갔을 때에도 묵었던 체인데, 방이 넓고 편안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선택할 수 있었다. 가격도 시애틀 다른 곳들에 비해서 다소 저렴한 편이었고, 당시에 가입했던 멤버십 때문에 약간의 할인과 포인트 적립도 되었다. 침대 두 개짜리 방을 빌렸고, 역시나 방은 넉넉한 사이즈였다. 위치는 약간 시내와는 동떨어진 곳이었지만 어차피 차가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조식 포함이니 신경 쓸 일도 적었다.


그렇게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딸과 대화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다. 큰 공항이었지만 주차장 안을 항공사별로 잘 분류를 해놓아서 적절한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흠! 너무 넓은데 어디로 가야 하지 하면서 두리번거리는데, 역시 두리번거리며 걸어 나오는 딸을 만날 수 있었다. 하하! 양쪽 다 어리바리하게 만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반가운 재회!

계속되는 연발 연착으로 인해 공항 식당이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쫄쫄 굶었던 딸아이는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표 송편으로 열심히 배를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곧 쓰러져 잘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잠이 확 달아나서 셋이서 한참을 함께 수다를 떨었다.  그냥 그렇게 밤을 새우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해 아침 6시쯤 잠깐 눈을 붙였다. 그렇게 두 시간쯤 잤을까? 신 나서 일어나서 호텔 조식 먹고 천천히 준비해서 시내로 나왔다. 사실 우리가 꼭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호텔 방안에서 수다만 떨면서도 며칠을 보낼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서두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퍼블릭 마켓에 가서 걸으면서 놀자고 하고 Pike Market으로 향했다. 우리가 이럴 때 잘 애용하는 앱이 Waze인데 주차장 안내까지 해줘서 편리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 주차장을 이미 꽉 차 있었고, 우리는 주위를 배회하며 주차장을 찾아 헤맸다. 결국 몇 군데의 시도 끝에 주차빌딩을 하나 찾아서 꼭대기에 주차를 하고 거리로 내려왔다.

주차장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시애틀 거리 / 우리가 이용한 주차타워

살살 걸어가니 멀지 않은 곳에서 퍼블릭 마켓이 나타났다. 마켓은 상당히 활기찬 분위기였고, 주말이어서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도로에 차와 사람이 가득했다. 사실 이곳이 시애틀 최고의 볼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에 스타벅스 1호 점도 있고, 유명한 가게들이 꽤 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해산물을 좋아하므로 해산물 구경을 실컷 했다. 꽃집도 있었고 과일가게도 있었는데 우린 왜 모두 이런 사진만 찍었는지... 하하! 민망!



점심 먹을 곳을 찾을까 했는데, 막상 그리 당기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오려다가 파이크 마켓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생선 던지기를 구경했다. 이 상점에서 생선을 사면 큰 소리로 외친 후 이렇게 안쪽으로 던진다. 그러면 안에서 손질하고 포장을 해서 판매하는 구조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 둘러서서 누군가가 생선을 사기를 기다리고, 던지는 순간 재빨리 사진을 찍는다. 사실 1초 만에 끝나기 때문에 그다지 진지하게 구경할 것은 없지만, 그만큼 활기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이다.

잘 보면 오른쪽 사진 공중에 생선이 보임


그다음에 간 곳은 역시 너무나 유명한 Beecher's Cheese 가게였다. 그곳에서 직접 치즈를 만들어서 판매하는데, 평일에 가면 치즈 제작과정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든 치즈로 마카로니 치즈(Mac'n Cheese)를 파는데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메뉴판을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김치 그릴드 치즈를 판매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걸 사 먹어? 말어?


우리는 일단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에서는 치즈 시식이 있었다. 두 치즈 모두 맛이 있었다. 오른쪽은 우유맛이 강하게 나서 귀여운 맛이었는데, 왼쪽 것은 진짜 구수하고 아주 맛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왼쪽 치즈로 선택했다! 치즈 사면서 물어보니 글루텐 프리도 맥 앤 치즈도 가능하단다. 다만 줄을 서야 한다고... 그래서 그 길고 긴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안타깝게도 그건 미리 따로 주문을 해야 하고, 그것도 바쁘지 않은 평일에만 된단다. 그 김에 김치 맥 앤 치즈도 먹어볼까 했는데 그냥 발길을 돌렸다. 


건너편에서는 유기농 애플사이더를 판매한다고 쓰여있었다. 노르망디 지방에서 먹던 애플사이더라니 어찌나 반갑던지! 게다가 유기농이라 하지 않은가? 그래서 한잔을 구입했다. 주인아저씨는 빈 컵을 하나 주면서, 모든 것들을 조금씩 따라서 맛을 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서 채워 담으라고 했다. 오! 시식을 겸하는 서비스로구나! 신이 나서 정통 맛을 따라서 마셨는데! 에고, 실망했다. 진짜 애플사이더가 아니고 일종의 사과주스였다. 블루베리가 섞인 것도 있고, 체리나 복숭아 등등 다양한 맛이 있었는데 전부 설탕 무첨가였지만 주스니까 달았다. 잠시 진짜 애플사이더를 생각했던 것이 바보 같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애플사이더는 알코올 음료에 해당되는데 길에서 이렇게 팔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생각지도 않게 달달한 주스 한 잔을 마신 셈이었다. 하지만 진짜 숙성된 주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 먹을만한 음료라고 보인다.



연달아 두 군데에서 실망을 하고 나니 뭔가 보상이 필요했다. 여기 유명한 빵집 Panier가 있는데 뭔가 우리를 기쁘게 할 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들어갔다. 역시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있었는데, 주인은 좀 불친절한 편이었고 글루텐프리 빵도 없었으며, 크롸상은 설탕이 뿌려져 있었고, 마카롱도 우리가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마카롱과 커피를 주문해서 잠시 먹고 나왔는데, 앉을자리도 부족하고... 그냥 투덜투덜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 뭔가를 진짜 먹어야지! 하고 유명한 차우더 집을 찾아갔다. Pike Place Chowder. 파이크 플레이스의 또 다른 명소이다. 역시 기나 긴 줄은 필수였다. 주말에 그곳을 방문한 이상 어디 가든 줄을 서야 했다. 원래 이곳은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가 있고, 그러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사서 테이크아웃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이 날은 너무 바빠서인지 인터넷도 먹통이었다. 그리고 괜스레 받아서 어디서 먹겠다고 헤매겠는가 싶어서 그냥 수다를 떨면서 서서 기다렸다. 


결국 우리 차례가 되어서 주문하고 간신히 자리를 잡아 앉았다. 기본 클램 챠우더와 맨해튼 스타일 차우더, 글루텐프리 스모크 새먼 차우더를 먹었고, 샐러드도 하나 주문했다. 오래 기다렸지만 차우더는 진짜 맛있었다.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함께 준 포크와 포장지가 모두 compostable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연분해되므로 음식쓰레기와 함께 버려도 된다는 뜻이다. 도대체 뭘로 만들었길래 그런지 신기했다.



먹고 나니 서늘함도 좀 가시고 다시 구경할 힘이 났다. 일단 그 입구에 있는 위 가게부터 들어가서 엽서랑 냉장고 자석도 사고 구경하면서 장난도 쳤다. 그리고 다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쪽으로 걸어왔다. 흠! 그랬더니 다른 먹거리 판매하는 곳들도 보였다. 이곳의 피시 앤 칩스도 맛있어 보이고, Three Girl's Bakery라는 곳도 맛있어 보였다. 다음에 온다면 이곳에서 차우더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책 좋아하는 우리 세 사람은 서점에 들어가서 정말 한참 놀았다. 중고서점이어서 재미난 책들이 많이 보였는데, 신기했던 것은 서점이 정리가 진짜 잘 되어있었다. 보통 중고서점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있어서 마치 보물찾기 하듯이 모든 것을 뒤져야 하는데, 이곳은 분야별 작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 물론 그 덕에 가격은 생각보다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구경하는 재미는 아주 좋았다. 딸은 전부터 사고 싶던 책이라며 Jame JoyceDubliners를 두 권 집어 들어서, 둘 중 어떤 버전으로 사면 좋을지 물었고, 두 사람은 꼼꼼히 뒤적이다가 결국 한 권을 골랐다.



계속 돌아다니고 놀았더니 다리도 아프고, 어딘가에 앉아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떨면 좋겠다 싶었다. 마켓 근처에도 커피숍이 몇 군데 있고 유명한 스타벅스도 있었지만, 관광객 북적이지 않는 좀 한적한 곳에서 놀면 좋겠다 싶어서 시내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정착한 카페는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점이었다. 하지만 앞에 테이블이 몇 개 있어서 길거리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유롭게 노닥거릴 수 있는 곳이었다. 글루텐 프리 간식이 있어서 하나 사보고, 커피도 마시고, 가족스러운 한적한 수다를 즐겼다.


여행을 다닐수록 느껴지는 것이, 어딘가에 가서 뭔가 유명한 것을 보는 것보다, 그 모든 시간에 함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적당히 선선한 거리에서,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꾸밈없이 가식 없이 숨김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다.



그래도 그냥 이러고 호텔로 들어가기는 아쉬우니까 한적한 뷰 포인트 두 군데를 가보기로 했다. 그래 봐야 또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전부일지라도... 


그래서 찾은 곳이 알키(Alki) 비치. 바다 저편으로 시애틀 시내가 보이고, 중간에 떠있는 배들도 보이고, 그리고 생각보다 북적이지 않아서 여유로운 곳이었다. 

저 안에 있을 때보다 밖에서 보니 더 아름답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바다색도 하늘 색도 달라 보인다. 왼쪽에 조그맣게 스페이스 니들도 보인다.



잠시 앉아서 노닥거리다가, 딸은 혹시 여기서 배달받아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까 검색하고, 나는 바다 쪽으로 나있는 둑길을 따라서 걸어보았다. 



결국 배달음식은 마땅치 않았고, 우리는 그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당 안 보다 경치가 더 좋은 이 벤치로 들고 나와서 먹기로... 약간 분식집 같은 분위기의 식당은 가격이 아주 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닷가 치고는 저렴했고, 간단한 요기로 적당했다. 김치볶음밥 같은 것도 메뉴에 있었다! 신기하여라! 아무튼 여기서 앉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노닥거리다가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다른 뷰 포인트를 가보자고 다시 일어섰다.


우리가 뷰 포인트로 지정했던 곳보다 더 시내가 잘 보이는 곳은 바로 달리는 길 한복판! 차 안에서 나름 시애틀 시내를 잡아보았다. 어스름한 초저녁 빛이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나는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 같다. 어디를 가도 이 시간 때에는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게 보인다. 황량한 길도...

그래서 이런 길들을 쭈욱 달려서...


주택가 언덕 위에 도착했다. 케리 공원(Kerry Park). 주차는 길가에 적당히 할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주택가였다. 경치 좋은 동네여서 그런지 부자동네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늘 관광객이 들끓으니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동호회 사람들이 와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진지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으나 우리는 아무도 카메라를 안 가져와서 그저 폰카에 의지했다. 딸도 참 아쉬웠다, 카메라 가져올걸! 그래도 일반인보다 사진동호회 사람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좀 잘 찍지 않을까 싶어서 부탁해보았다. 역시 적당히 배경을 잘 살려서 찍어주었다. 일반적으로 사진 부탁하면 뒤 배경에서 중요 부분 싹둑 잘라버려서 대체 이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 모르게 찍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도면 상당히 양호하지 않은가! 셋이 다녀도 셋이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가 풍경. 색이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하루 꽉 찬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각각 씻는 동안 빈둥거리고, 누워서 폰으로 사진도 나누고, 재미난 포스팅도 보여주고, 그렇게 낄낄거리다가 기분 좋게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은 왜 이렇게 일어나기 싫은지... 그래서 조식 챙겨 먹고, 객실에서 게으름을 있는 대로 떨었다.


12시가 체크아웃 타임이니까 최대한 늦게까지 버티자... 하다가 11시쯤 샤워를 하려니 갑자기 더운물이 안 나오는 것이다. 데스크에 말했더니 옆 객실에서 씻으라고 키를 줬다! 이렇게 객실도 많은 호텔에서 설마 더운물 탱크가 다 각자 있는 것인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옆방에서는 더운물이 나왔다. 


그렇게 객실을 최대한 활용하고 우리는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제법 큰 바닷가 식당인 Ivar's Clams라는 식당을 찾았다. 마침 바로 앞에 주차를 할 수 있었기에 (일요일 무료) 비가 와도 많이 불편하지 않았다.



배들을 구경할 수 있는 창가에 앉아서, 애피타이저로 조개를 주문했는데 아주 맛이 좋았다. 우리는 재료로 뭐가 들어갔을까를 열심히 고민했다! 집에서도 해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만들게 되면 레시피 공유 예정)


차우더는 3가지였는데, 남편은 노스웨스트 시푸드 차우더를 주문했고, 우리는 세 가지 맛 모두 들어있는 샘플러로 주문했다. 색이 진한 것은 스모크 새먼(훈제연어) 차우더이다. 셋 모두 맛있었다.



그에 비해 본식을 맛이 좀 떨어졌다. 그냥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었는데, 왼쪽 딸아이 것은 양이 좀 부족했고, 남편 것은 별로 풍미가 없었으며, 내 것은 좀 달았다. 특히 밑에 깔린 라따뚜이가 달아서 식욕을 저하시켰다. 그리고 가격도 캐나다 쪽보다 비싸서 실망스러웠다.  아마 다음에 오게 된다면 차우더만 먹을 것 같다. 



2일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정말 휘리릭 흘러갔고, 식당에서 일어나면서는 정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 짧은 시간, 아이에게 충전이 되었으리라 믿고 공항에서 눈물의 이별을 하였다. 헤어지는 것은 왜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인지... 익숙해질 때도 된 거 같은데...


아이를 보내 놓고 폭우 쏟아지는 거리를 달려 중간지점인 벨링헴에 도착해서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트레이더 조에서 장 보고 올라왔다. 국경은 우리가 갈 때와 달리 너무나 대기가 길었고, 그래서 아마 딸이 더 먼저 집에 도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논스톱으로 딜레이 없이 타고 간 딸은 공항에서 교통체증으로 한 시간 이상 잡혀있었고, 결국은 집에 가는 기차를 놓쳐서 우버를 타고 귀가하였다고 했다. 기차표는 이미 왕복으로 사놨었는데, 날리고... 그다음 날은 약간 감기 기운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래도 이틀간의 만남이 힘을 줬는지 목소리에 에너지가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결국은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무엇을 했는지조차 어느새 기억이 희미하지만 가슴속에는 따뜻함이 잔잔히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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