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l 20. 2023

불편하지 않은 시월드가 되려면...

시누님이 두 주일을 머물다 가셨다. 시부모님이 안 계신 나의 유일한 시월드인 셈이니, 일부 주변에서는 말만 들어도 부담감을 팍팍 느끼는 것 같았다. 시누이와 어떻게 열흘씩 함께 지내냐는 걱정스러운 말들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인 나는 아무런 부담감이 없었다.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초대했는지 알기에, 그저 최대한 다정하게 잘해드리고 싶을 뿐이었다.


왜 나는 시누이가 힘들지 않았을까? 그건, 내가 천사처럼 착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분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힘들게 느끼지 않으려면 무엇일 필요할까?


생각해 보면, 나는 남동생 아내인 올케랑도 사이가 좋다. 서로 서슴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올케 입장도 정말 그런지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뭐라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먼저 스스럼 없이 연락하고, 자진해서 우리 집으로 놀러 와서 자고 가는 올케라면 어쨌든 크게 부담은 없다고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삼 남매인데, 결혼하면서부터, 형제간의 생일 선물을 금지했다. 내가 맏이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을 내려서 통보를 해버렸다. 부모님의 생신은 챙기되, 형제간의 생일은 말로만 때우며 축하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의 정서 상, 올케의 입장에서 시집 식구들의 선물을 사는 것은 엄청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받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센 것을 받으면 그만큼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고, 약한 것을 받으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우리는 농담 삼아 이걸 '선물 고문'이라고 부르곤 한다. 선물을 고르고 주는 일이 즐거워야 하는데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면, 이게 고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느 사회이든 새로 입장한 사람은 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받을 수밖에 없다. 스리슬쩍 눈치도 보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신경 쓰게 된다. 하물며 결혼해서 모든 멤버가 다 이미 가족인 곳에 들어온다면, 그곳에서의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어떤 기준을 통해 평가를 받는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무슨 행동 하나를 해도 그것이 관찰 대상이 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행위까지 이어지면 숨통이 막힌다. 엉뚱한 일로 트집 잡히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가기 싫어진다. 


시월드 노릇이라고 하는 것은, 집안에 들어온 새 식구를 어떤 '용도'를 정해놓고 관찰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올케가 우리 엄마에게 잘할까? 며느리가 내 아들에게 잘할까? 제사 때는 꼬박꼬박 와서 일을 바지런히 하려나? 행여나 용도에 모자라지는 않을지 도끼눈을 뜨고 바라본다면, 시월드에 가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함께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분은 어떤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으니까. 내가 무엇을 하든, 그건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뜻일 뿐, 아무런 다른 이유가 없다. 내게 바라는 것이라면, 당신 동생과 내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일 것이다. 


시누님 댁에 가도 피곤하면 낮잠도 자고, 더우면 끈나시를 입고,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아도 된다. 우리 집에 오셔도 마찬가지다. 아침은 준비해 놓은 것들로 알아서 꺼내 드신다. (이것은 누구든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은 모두 마찬가지이다.) 점심과 저녁은 차려먹지만, 시누이라고 해서 앉아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차리고 함께 치운다. 


부대찌개의 스토리를 흥미있게 들으셨다
한식만 먹은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로스트 치킨


나라의 반대편 끝에서 혼자 사는 나의 시누이는 그래서 더 잘 해주고 싶은 사람이다. 한국의 음식도 맛보게 해주고 싶고,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기분을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시기 전부터 매일의 식단을 짜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음식을 대접했다. 


집안일이 즐거운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사실 시집과의 불편함은 단지 전 부치는 일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인간적인 대우보다는 어떻게 활용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서 지치고, 하나하나의 행동에 지적과 판단과 조언(!)이 따라 나온다면 또 지친다. 듣기 싫은 소리를 안 들으려고 눈치 보고 애쓰다 보면 완전 녹다운 된다.


서로를 용도로 생각하지 않고, 소중한 가족으로 인정하고, 또 한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시집을 불편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정말 진심으로 서로에게 든든한 가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올케를 동생 같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 타이틀 : 시누님 모시고 김밥 싸가지고 갔던 소풍에서 찍은 호수 사진

*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나 한국적인 생일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