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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08. 2023

금문교를 어디서 볼까?

얼마나 멀어도 보이는 거야?

샌프란시스코에서 뭘 하면 좋겠냐고 주변에 물으면, 금문교를 봐야 한다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온다. 금문교. 샌프란 시스코에 연결된 다리 중 하나인데, 세계 최초의 현수교이다. 이름과 달리 금색은 아니다. 


사실 금문이라는 것은 다리에서 원래 붙은 이름이 아니라, 금문교가 있는 해협의 이름이 금문 해협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금문교는 자전거를 빌려서 탄다면, 직접 건너가기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데, 졸렬한 체력에 그건 포기했고, 그리고 어쨌든 금문교 위에서는 금문교를 볼 수 없으므로 어딘가 뷰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어디서 보면 잘 보일까? 


자전거 대신 차를 타고 건너보기는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구세주같이 도움을 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내 남동생이었다. 삼십 년 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던 남동생의 추천이었으니 상당히 오래된 정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생의 머릿속에는 상당히 생생한 듯했다.


원래 이런 곳에 가려면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야겠지만, 우리는 그런 경건함 없이 방문했다. 여행 오면서 카메라는 안 챙겼기 때문이다.


남동생이 추천한 첫 번째 장소는 버클리 뒤쪽으로 올라가는 Grizzly Peak Wall(그리즐리 피크 월)이었다. 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마음도 가벼웠다. 금문교에서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딱 금문교만 본다기보다는 샌프란 시스코 전체를 내려다보는 뷰 포인트라는 추천이었다.


야경도 좋다니 밤에 가보면 어떨까 싶어서 퇴근한 딸과 남편을 부추겨 집을 나섰다. 원래 야경을 보려면 어두워지기 전부터 올라가서 해지는 하늘빛을 바라보며 깜깜해질 때까지 있는 것이 정석인데, 우리는 저녁 먹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그만 늦어져버렸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는 이미 완전히 깜깜한 시각이었다.


그래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나 때문에 우리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남편이 운전을 했고, 내가 지도를 봤는데, 구글지도에서 차선을 전혀 안내하지 않는 바람에 갑자기 갈라진 5차선 도로에서 우리는 오른쪽에 낑겨 있었고, 얼떨결에 Bay Bridge(베이 다리)로 향하게 되어버렸다. 


보통 길을 잘못 들어도 옆으로 슬쩍 빠져나가면 되지만, 여기서는 그냥 꼼짝없이 다리를 타게 된 것이다. 억울하게 다리 건너는 톨비까지 내고 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밤에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뭘 하지 싶기도 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옆으로 빠지는 길이 나왔다. 중간에 있는 섬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 섬의 이름이 왜 Treasure Island(보물섬)인지 모르겠지만, 내려가면 보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미 해가 다 진 시각이었고, 어딘가를 찾아가기엔 섬 자체가 무슨 공사 중인 곳처럼 보였다. 아마 밤중이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그냥 막연히 가다 보니 어딘가 구석에 처박힌 느낌이 들었다. 결국 허허벌판에 차를 세우고 밖을 내다봤다. 밖으로 금문교 대신 베이 다리가 보였다. 다리는, 어느 다리든 밤엔 다 예쁜 것 같다.


베이 지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는 다리인 베이 다리


그렇게 사진 한 장 찍고는, 그냥 다시 좀 더 가보자며 길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면서 작은 주택가 같은 곳에 소방차와 앰뷸런스들이 들이닥쳤다. 길이 작으니 빠져나갈 길도 없고, 그렇게 그곳에서 잠시 갇혀있었다. 


이쯤 되고 나니 의욕 상실. 그냥 마음이 피곤해져 버렸다. 결국 집으로 가는 길안내를 켜고 차를 이동했다. 가는 길에 보니, 저편으로 샌프란시스코가 보였다. 그래서 그냥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고 다시 구경을 했다.

 

노출을 바꾸니 전혀 다른 느낌의 사진이 나왔다


위치 상으로, 저 구석에 있는 다리가 금문교가 아니겠냐며, 오늘은 그냥 여기서 마무리하자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해변에 갔다가 다시 도전!



오른쪽이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 가운데가 얼떨결에 들른 보물섬, 그리고 왼쪽이 금문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다음 날은 알라미다(Alameda) 해변에서 기분 좋게 일광욕을 한 후, 저녁 먹기 전에 산책 삼아 그리즐리 피크 월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비록 야경은 아니지만, 우리는 꼭 야경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낮에 보자고 하며 떠났다. 사실 쓸데없이 간식을 해서, 저녁 먹기에 배가 안 고프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이번엔 틀리지 않고 제대로 길을 찾았다. 올라가는 길은 아주 구불구불한 산 길이었다. 날씨는 건조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그런 날씨였다. 산속이니 차를 세워놓고 근처를 산책할까 하는 기대는 턱없는 것으로 판명 났다. 우리가 기웃거린 산속 오솔길은 그늘에 가려져있지 않고 그대로 볕에 노출되는 그런 구조였다.


그리고 동생이 알려준 곳에는 완전히 주차금지였다. 그러나 그 근처 쪽으로 눈치껏 잠깐 차를 세울 수 있는 곳들이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세웠다. 


눈앞에 탁 트이게 펼쳐지는 경치는 탄성을 자아냈다. 



버클리와 에머리빌이 있는 베이지역이 한눈에 들어왔고, 샌프란시스코의 고층 빌딩들이 멀리서 잡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금문교도 확실하게 보였다. 이렇게 사진에는 보잘것없게 잡혔지만, 실제 눈으로 보면 이보다 선명했고, 가슴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경치였다.


하늘도 아름다웠고, 모든 빛깔이 다 멋졌다


금문교를 좀 줌으로 당겨서 찍어보았지만, 역시 디지털 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아련히 잡히는 것도 나름 매력 있지 않은가? 어쨌든 안개 같은 것으로 전혀 가리지 않은 금문교를 그대로 봤으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련히 보이는 금문교.


우리는 나무 그늘이 살짝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엉뚱한 것을 발견했다.


너를 지켜보고 있다!


딸이 저것 좀 보라고 소리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헉! 이게 뭐지? 처음엔 순간적으로 사람처럼 보여서 깜짝 놀랐다. 누가 저기에 저런 것을 매달아 장난을 쳤을까? 아마 나보다 심한 장난꾸러기임에 틀림없다. 산 위에 올라와서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이 마네킹. 세상은 요지경 아닌가!


금문교를 보여주겠다더니 저렇게 흔적만 보여주고 끝나냐고 한다면 좀 섭섭할 것 같다.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가까운 금문교는 다음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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