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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Nov 03. 2023

할로윈 코스튬을 사겠다고?

매년 그렇듯 할로윈이 다가왔다. 한국에는 있지 않은 행사지만, 이곳 캐나다에서는 재미난 놀이로 취급되는 날이다.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장난을 칠까? 아니면 맛있는 것을 줄래?"하고 묻으면, 집주인이 사탕을 한 움큼 집어주는 이 놀이는 사실 논란도 꽤 많다.


상술에 놀아난다든가, 몸에 나쁜 사탕을 잔뜩 주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 또, 장난을 치려냐고 협박하는 행위라든가, 귀신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이 경건하지 못하다는 등등 다양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해온 놀이이기 때문에, 이나라 사람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많이 있는 날이다.


우리 집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없지만, 남편은 여전히 이 날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줄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바쁘다. 어느 한 명도 사탕을 못 받고 가는 일이 없게 해주고 싶은 산타의 마음이랄까? 절대 인색하게 주고 싶지 않고, 한 움큼씩 집어주고 싶어 하는 남편. 그래서 이번에도 미리감치 100불어치 넘는 사탕을 샀다. 


티테이블을 가득 채운 과자 봉지들


다행히 월마트에서 많이 세일해서, 각종 인기 있는 사탕 과자들이 100개, 125개씩 들어있는 대형 봉지 9개를 과하지 않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올해는 어째 코스트코가 훨씬 비쌌다! 남편은 모자랄까 봐 걱정했고, 나는 남을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우리 동네는 아이들이 많이 살고, 오래된 이웃들이 대부분이라 새로 생긴 동네와는 다른 푸근함이 있다. 사탕 인심도 넉넉하기 때문에 애들이 있다면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내 수강생들에게도 연락해서 애들 데리고 오라고 했다. 큰길에 차 세우고 동네 한 바퀴 돌면 순식간에 사탕이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장식하는 집들이 많이 이사를 가서 올해의 꾸밈은 그저 무난한 편이었다. 사실 예전 같으면 동네 다니면서 예쁜 집들 사진도 찍었을 텐데 올해는 이것저것 마음 바쁜 일이 많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간단하게 성의를 보인 이웃집들


할로윈 당일이 되자 사탕을 바구니에 담고, 우리도 뭔가 입어볼까 하고 옷장을 열었다. 사탕을 주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우리도 꾸미고 있으면 아이들이 재미있어한다. 우리는 보통 집에 가지고 있는 것들로 대충 꾸미는 편인데, 이번에 옷장을 보니 작년에 구매한 반짝이 원피스가 보였다. 심하게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그걸 입고 위에 망토를 걸치면 그럴듯할 것 같았다. 


물론 집에 망토는 없었다. 남편은 늘 그렇듯 실크 잠옷을 걸치겠다고 했고, 나는 망토를 사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뭘 그렇게까지? 남편의 입장에서는 재미나게 꾸미는 것은 예전에 진작 다 해봤고, 그저 성의를 보이는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지라 나를 잠시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이런 거 제대로 해본 적 한 번도 없어. 그런데 한번쯤은 공을 들여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거기 파티용품 파는 가게 있잖아, 거기에 가면 있을 거야."


남편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외국의 문물이니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을 거라는 것을 생각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한때 남편은 얼굴에 피 흐르는 분장을 아주 그럴듯하게 하곤 했다고 했다.


나의 새삼스러운 시도가 귀찮을 수도 있건만, 남편은 기꺼이 나와 함께 상점으로 갔다. 가게에는 집을 꾸미기 위한 장식품과 변장용품이 하나 가득이었다. 우리는 재미있어 보이는 모자를 써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구경하며 웃었다. 그 자체가 놀이였다.


파티용품을 파는 가게는 환불이 불가하다. 파티 끝나고 환불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뭔가 그럴듯한 것을 사겠다고 갔지만 나는 역시 선택에 상당히 소심했고, 결국은 망토와 긴 장갑을 골랐다. 남편에게도 뭔가 얹어주고 싶어서 목에 두를 깃털 목도리를 구입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남편은 으스스한 소리를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차고의 스피커에 틀었다. 우리 집 할로윈 장식은 다소 귀여운 편이다. 



우리는 구매해 온 것들과 집에 갖고 있던 것으로 나름 분장을 했다. 얼굴에는 할로윈 느낌이 나는 문신스티커를 붙였다. 해골 그림의 티셔츠를 입은 남편은 오늘 사온 빨간 깃털을 두르고, 작년에 내가 썼던 모자를 썼다. 


나는 오전에 사 온 망토와 긴 장갑을 착용하고, 딸이 방에 두고 간 베네치아 가면을 썼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는데, 이 나일론 망토와 장갑이 제법 보온을 해줘서 입고 있을 만했다. 찾아오는 아이들이 우리의 코스튬을 좋아해 줘서 더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연달아 문을 두드리면서 우리는 바빠졌다. 수강생들도 찾아왔다. 이번 가을에 처음 온 가족은 아주 즐겁게 다니는 것 같았다. 기념촬영도 같이 하였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뛰어 들어온 친구도 있었다. 


할로윈 행사는 보통 5시 반 정도에 시작하여 8시에 끝난다. 특히 우리 동네는 딱 8시에 끝나는 이유가, 이 시간에 맞춰서 커뮤니티 센터에서 핫초콜릿을 제공하고 폭죽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한없이 늘어질 수도 있는 놀이를 제시간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탕은 딱 요만큼 남았다. 이 바구니로 가득 채워 4개를 준비했는데, 아주 딱 맞은 셈이다. 막판에 갑자기 많은 아이들이 동시에 들이닥쳐서 모자랄까 봐 약간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아주 적당한 양이었던 것 같다. 


사탕이 많이 남으면 불우이웃 돕기 푸드뱅크에 보내면 된다. 아이들도 일 년 치의 사탕을 얻어오곤 하지만, 그걸 정말로 다 먹을 양은 아니므로 역시 각 가정에서도 그렇게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셈이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남편이 말했다.


"쇼핑 가자고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억지로 따라간 게 아니라 즐거웠어."


부부간에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던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이제는 정말 편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참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었던 순간들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하루하루. 이렇게 또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했다.



한국에서는 작년의 사고로 인해서 마음이 무거울 텐데, 이 글을 올려야 하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또 그 나라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올립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들과 그 가족들께 다시 한번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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