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석도 없는 정감 있는 소극장
최근에 남편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 다만 시간이 없어서 미루다 보니 그 기회를 영 놓친 것 같았는데, 우연히 검색하다가 아직도 상영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밴쿠버 전역에 몇 군데 안 되는데, 그중에서 가까운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나와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오펜하이머, 이 영화를 아직도 한다고?
상영 지역이 핏메도우라고 나오기에, 큰 쇼핑몰 있는 지역에 있는 아는 극장이려니 하고 대충 클릭도 안 해봤다. 다만 이상한 것은, 온라인으로 영화를 예매할 수 있다고 뜨지 않는 것이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는, 미션 임파시블, 엘레멘탈, 오펜하이머, 이렇게 세 가지였다. 왜 최신 영화는 없고 이런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했다. 이 극장이 망하려나?
그러다가 문득 극장 이름이 이상하다 싶어서 위치를 다시 확인했더니, 내가 생각했던 그 체인 극장이 아니었다. 그 극장보다 심지어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구식 극장이었다. 한때는 분명히 잘 나갔을 그런 극장 말이다. 현재는 체인극장에 밀려 그 화려함을 과시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찾는 사람이 있는 극장이었다.
영화는 6:30에 시작한다고 나와있었는데, 보통 극장이 시작 전에 한 30분 정도 예고편을 보여주니, 이 긴 영화가 끝나려면 10시는 되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원래 밤시간에 수업이 있는 것을 다 조정해서 미리 하고는 여유 있게 극장을 찾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극장의 사인이 눈앞에 들어왔다.
생일파티도 한다고 쓰여있는 외관이 소박해 보였다. 생일 파티를 예약한 이들의 이름이 Happy Birthday라는 글자와 함께 바깥에 쓰여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로비는 정말 작았다. 음료수와 팝콘을 파는 판매대가 보였는데, 거기서 영화표도 함께 팔고 있었다.
내 앞에서 티켓을 사는 사람이 그곳 직원인지 주인이지 모를 사람과 스몰톡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손님 : 오펜하이머 한 장 주세요. 사람이 별로 없네요
직원 : 뭐, 여름에는 많지만 지금은 시즌이 아니죠.
손님 : 그래도 이렇게 계속 극장이 유지되어서 기뻐요. 팝콘도 하나 주세요.
직원 : 버터 넣어드려요?
손님 : 네. 아, 잠깐 나갔다 올게요.
손님의 목소리에는 뭔가 아련함이 묻어 나왔다. 예전부터 오던 영화관이고, 이곳이 계속 잘 되어서 계속 방문하고 싶은 염원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직원인지 주인인지 모를 그 사람의 목소리에도 뭔가 이곳에 애착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냥 아르바이트생이 기계적으로 판매하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렇게 손님은 계산을 하고 나갔고, 직원은 팝콘을 봉지에 담은 후 그 위에 버터를 둘렀다. 내 차례가 되어 우리 둘의 티켓을 샀다. 영화 관람비용은 6달러(6천 원)였다. 시중의 체인 극장이 대략 10 달러 정도하는 것에 비교하면 현저히 저렴했다. 주문한 팝콘은 8달러였으니 팝콘이 영화보다 비쌌다, 하하.
남편이 약간 몸살기가 있어서 극장이 충분히 따뜻한지를 물었다. 그는 그럴 거라고 말하면서, 추우면 자기에게 말하라고 했다. 히터를 올려주겠다고.
그리고 영수증 주려나고 해서, 그냥 티켓이나 달라고 했더니, 알쏭달쏭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영수증 비슷한 종이였다. 왜 한 장을 주냐고 물었더니 종이를 아끼려고 그런다고 말했다. 종이에는 1관이라고 쓰여있었다. 지정좌석은 없었다.
약간 의아했지만, 사실 이 종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아무도 극장 입장하는 티켓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극장의 로비는 전체가 다 한눈에 보이는 구조의 작은 공간이었고, 표를 산 사람들은 알아서 극장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극장은, 위로 올라가서 영화를 내려다보는 구조가 아니라, 옛날식으로 스크린을 올려다보는 구조였다. 죄석도 구식이었고, 군데군데 사람이 앉아있었다.
사실 오래된 영화에 이런 작은 극장에서 이만큼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난 초여름에 엘리멘탈 보러 갔던 체인 극장보다도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화는 단 한 편의 예고편을 보여주고는 바로 시작되었다. 지나친 광고로 영화 전 30분 동안 기진맥진 예고편을 보고 나면 본편 시작할 때쯤 지쳐버리게 만드는 체인 극장과 큰 차이가 났다.
영화는 예상대로 아주 좋았다. 딸이 처음에 혼자 보고 왔다고 말했을 때, 영화가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크리스토퍼, 어쩌자고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 다른 감독들이 앞으로 영화를 어떻게 만들라고!"
그만큼 영화는 표현력이 좋았다.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전체적인 흐름도 훌륭했고, 디테일도 나무랄 데 없었다. 그리고 모든 연기자가 다 자기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감정에 깊게 빠져들게 되었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관점으로 스토리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확연히 보이는 드라마적 요소도 흥미로웠다. 물론 거지 같은 정치 이야기는 나를 확실히 짜증 나게 했고 말이다.
이 리뷰는 영화의 리뷰가 아니고 극장의 리뷰니까 영화이야기는 이 정도로만 하고, 다시 극장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결론은, 나는 다시 이 극장을 방문하고 싶어졌다.
체인 극장처럼 거대한 기계에 들어갔다 왔다는 느낌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에 가서, 사람에게 표를 사고, 극장의 온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사람의 모습으로 앉아서 영화를 감상하고 나왔다는 기분 때문이다. 예고편으로 사육당하지도 않았고, 원래 팝콘 같은 거 안 사 먹는 우리도 팝콘을 먹으며 편하게 관람을 했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앞으로 이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유심히 관찰하고 방문하는 걸로 오늘의 감상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