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샌프란시스코 여행 이후였다. 다녀온 지 이틀 후부터 남편의 한쪽 발목이 부어올랐다. 마지막 날 많이 걸은 것이 무리가 되었나 싶었고, 금방 가라앉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발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때 빠르게 치료를 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도 별 차도가 없자 드디어 의사를 찾아갔다. 우리는 많이 걸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의사는 혈전이 의심된다며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상으로 디다이머(D-dimer)가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그 말은 어딘가에 혈전이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결국 병원에 가서 다리 쪽의 CT스캔을 했으나 혈전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 의사는 다른 전문의를 연결해 주었고, 그곳에서 발목에 대한 치료를 받았다. 다만 그 전문의가 남편에게 폐가 불편한 것 같다고 말했고, 그래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라고 했다. 우리는 당황했다. 오래 담배를 피웠던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이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절대로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으니 운동을 잘하고 잘 관리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 이후에도 주치의는 혈전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계속 추적 검사를 시켰는데, 며칠 전 검사에서 이상할 만큼 높은 결과가 나왔다. 검사한 날 밤에,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은 긴급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의사는 다시 한번 피검사를 받아보라고 했고, 그 수치는 다시 두 배 상승하였다. 주치의는 황급히 다시 전화를 줬다. 이렇게 수치가 높다면 혈전이 있다는 뜻인데, 몸에 이상 징후가 없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남편의 컨디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다.
피검사의 다른 수치는 모두 정상이었다. 콜레스테롤도 높지 않았고, 당뇨도 없었고, 혹시나 싶어서 했던 전립선암 검사도 정상으로 나왔다. (남편에겐 가족력이 있어서 사실 남편은 이것을 가장 의심했었다)
의사는 이 상태에서 CT스캔을 예약하고 기다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고 하면서, 응급실로 가서 스캔을 받아보라고 추천했다. 사실 캐나다에서는 무슨 검사를 받으려면 보통 한 달씩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위급한 환자는 응급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응급실도 한국처럼 빠르게 조치를 취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오후 3시 좀 못 되어서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다시 피검사를 받고 의사를 만날 때까지 4시간이 걸렸다. 캐나다 응급실 대기 시간은 악명이 높다.
의사는 디다이머 수치가 그 사이 다시 수직상승하였다고 하면서, 증세를 물었다. 남편은 여전히 증세가 없었다. 진찰을 하면서 의사는 정말 미스터리하다고 말했다. 여러 군데를 의심해 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폐부터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CT 스캔을 받은 후 다시 두 시간이 흘렀다. 9시가 되도록 저녁도 못 먹고 있는 남편이 나는 몹시 걱정이 되었다. 결국 간호사에게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글루텐 알러지여서 아무 음식이나 먹지 못하니,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집에 가서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더니 알아봐 준다고 하고는 잠시 후에 의사가 왔다.
결론은 양쪽 폐에서 혈전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아무 흉통도, 숨 가쁨도 없었지만 갑자기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을 하면서, 도대체 증상도 없는데 왜 이 검사를 하게 된 것인지 놀라워했다. 아마 누군가가 당신을 더 살려두고 싶었나 보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주치의에게 초콜릿 한 박스라도 사가지고 가서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라는 의사의 말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혈전 용해제를 당장 받아먹고, 처방전을 받았다. 총 일곱 시간을 병원에서 있다가 들어온 우리는 몹시 지쳐있었고, 또한 공포와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도대체 왜 혈전이 생겼는지, 그리고 왜 폐에 모여있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주치의도 응급실 의사도 그저 미스터리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혈관 전문의와 폐 전문의에게 연결해 주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뭔가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은 살얼음판 같다. 우리 부부는 둘이 함께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한데, 발 아래쪽은 얼음판인 것처럼 수시로 조마조마하다. 뒤늦게 찾아온 행복이어서 더 그런 것 인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던 남편은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시작된 행복을 아직은 좀 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이 위험했던 순간에, 아무런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검사를 받고 이런 상황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평생 쌓은 덕이 우리를 위험한 순간에서 건져내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남편이 살면서 베푼 많은 사랑과 은덕이 그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줄 거라고...
표지사진 : 리시안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