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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17. 2024

생일상을 빕스처럼 집에서?

우리 집을 잘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생일상 차리기에 진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생일인 사람의 기호에 맞는 생일상을 차리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혼연일체 되어 생일상을 차린다.


하지만 매년 내 생일이 되면 나는 매번 망설이게 된다. 캐나다 입국 기념일, 크리스마스, 제야의 밤, 신정, 결혼기념을 거쳐서 연이어 거나하게 계속 먹고 나면, 내 생일쯤 될 때면, 뭔가 제발 가볍게 먹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름지고 럭셔리한 음식들을 그만 먹어야겠다 싶어서 생선회를 차려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아니면 내친김에 더욱 느끼하게 프랑스 식으로 차려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번 생일은 좀 간단하게 하고 싶었다. 보통, 남편과 딸과 우리 셋만 참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남편 자식들까지 모두 초대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또 간단히 먹지 못하는 건가?


딸아이는 바빠서 방학이라고 와있는 내내 일 하느라 방에서 나오기도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 엄마 생일상 차리느라 허덕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좀 그랬다. 그래서 뭔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을 하자고 했다. 예를 들면 월남쌈으로 해서 테이블에 펼쳐놓고 각자 싸서 먹으라고 하고, 쌀국수 끓여서 각자 퍼담아 먹는 그런 시스템으로 하자고 했다.


듣고 보면 간단한 것도 같지만, 그게 그렇게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아야 했다. 남편과 딸은 그렇게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딸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국의 맛을 기억하고 싶다면, 한국의 빕스나 애슐리 뷔페 같은 느낌으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남편과 딸아이는 나를 빼고 계속 꽁냥꽁냥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럿이 날짜를 맞추다 보니 생일 파티는 생일 다음날인 일요일에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생일 당일을 그냥 넘어가기는 서운하다는 이유로, 생일날은 점심에 미역국을 끓였다. 딸아이의 미역국은 수준급이었고, 국만 먹을 수 없으니 불고기를 곁들였다.



그리고 저녁때에는 해산물 저녁식사를 했다. 딸이 미국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딸이 좋아하는 해산물을 듬뿍 먹이고 싶었다. 나뿐 아니라 남편의 마음이 그랬다. 킹크랩과 점박이 보리새우, 연어회와 관자회, 그리고 마끼를 곁들여서 잘 먹었다. 


그리고 선물을 풀었다. 생일파티는 다음날이지만, 진짜 생일은 그날이었기 때문에 선물을 풀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딸의 주장 때문이었다. 딸의 선물은 은 앤틱 귀걸이였고, 남편은 내가 갖고 싶어 했던 은 냅킨링을 줬다.



사실 딸은 내가 갖고 싶어 하던 식기 세트를 별도로 구입해 놓았는데, 너무 급하게 오느라 그만 그것을 까먹고 온 것이었다. 그건 나중에 부쳐주겠다며 미안해하면서 귀걸이 이외에 집게 세트를 내놨다.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이렇게 많은 집게 세트가 필요하지 않은데, 뭘 이렇게 많이 샀을까? 2가지 사이즈로 자그마치 합이 16개였다. 하지만 딸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 


뜬금없는 집게 세트





다음 날 생일 파티로 분주해졌다. 


남편과 딸아이가 만든 메뉴판을 드디어 봤다. 남편과 딸이 세운 계획은 역시나 거창했다. 이걸 둘이서 어떻게 다 차린다고!!



나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딸과 남편 둘이서만 해내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막판에는 나도 팔 걷어붙이고 함께 만들었다. 


사람들은 속속 도착하고 우리는 간신히 음식을 다 만들었다. 


좀 더 근사하게 세팅을 하고 싶었지만, 부엌은 이미 아주 정신없었고, 자리와 시간은 부족했다. 결국 후다닥 세팅을 하고 사진도 거의 찍지 못했다. 내가 그나마 막판에 허둥지둥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제일 예쁜 훈제연어와 마지막 디저트는 한 장도 없었다! 


한국의 빕스라면 훈제연어가 꼭 있어야 한다는 딸아이의 주장에 따라, 집에서 만든 훈제연어가 준비되었다. 남편은 장미꽃 같은 훈제연어 서빙 사진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애통해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래도 다른 것들은 사진이 몇 장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편이 데크의 바비큐에서 닭꼬치, 돼지꼬치, 야채꼬치를 구웠다. 소스는 전부 고추장을 넣은 매운맛으로 준비했다가, 혹시 매워서 힘든 사람이 있을지 모르므로 부랴부랴 데리야키 소스도 추가했다.  그리고 더 매운맛을 원하는 경우를 위해, 추가로 소스를 바를 수 있도록 따로 준비해 놓았다.


꼬치에 바른 매운 소스가 아주 맛있었는데, 딸에게 레시피를 물었더니 며느리도 모른다고 했다! 자기도 계속 맛을 보며 추가했다고!



그리고 한쪽에는 한국의 인기 아이템인 고르곤졸라 피자를 구웠다. 서양배를 얇게 썰어서 함께 넣었고, 고르곤졸라를 아주 맛있는 것을 사서 얹은 덕에 피자가 아주 맛있게 되었다. 귀여운 항아리에 꿀을 담아 직접 뿌려 먹게 준비했다.


샐러드바에 빠지면 안 되는 상큼한 골뱅이 분짜 비빔국수가 등장했다. 소면을 사용하면 붇기 때문에 녹두면을 이용하여 분짜처럼 매콤 새콤하게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 소스가 매울까 봐 어느 정도 비벼놓고, 원하면 더 뿌려서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에 주문했던 쌀국수 코스가 준비되었다. 아무래도 뷔페이기 때문에 뜨끈한 국물로 토렴을 해줄 수는 없는지라 숙주는 미리 살짝만 데쳐서 준비했고, 면은 막판에 삶아서 돌돌 말아 진열했다. 그밖에 고기와 양파, 타이바질, 고수, 레몬, 고추 등등도 함께 준비해서 직접 국수를 말아먹을 수 있게 준비했다.


사진에 빠진 마카로니 치즈는, 못 먹는 음식이 많은 막내며느리를 위해서 추가로 얹은 간단식이 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월남쌈 재료를 깔았다. 쌀피를 담글 뜨거운 물과, 피넛소스 피시소스를 곁들여 월남쌈 재료들을 펼쳤다.



식구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매울까 봐 걱정했던 분짜 골뱅이 국수를 한 입 넣은 둘째 며느리가 "Nicy Spicy!"라고 외쳐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맛있게 맵다는 말을, 운율에 맞춰 센스 있게 해 준 것이다.


꼬치도 인기가 좋았다. 특히 고기뿐만 아니라 함께 꽂은 대파와 송이 등 여러 가지 재료가 전체의 맛을 살려주었다. 바비큐에 구워서 불맛도 살아있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맵기를 선택할 수 있었고, 가리는 음식이 있는 사람들은 원하는 재료를 빼고 선택할 수 있어서 자유로운 음식 선택이 되었다. 시끌벅적 즐거운 파티였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디저트로 슈크림을 내왔다. 이게 진짜 예뻤는데 왜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는지 모르겠다. 만든 것이 완판 되는 바람에 남은 것의 사진조차 나중에 찍을 수 없었다. 밀가루를 못 먹는 남편을 위해, 글루텐프리로 만든 슈크림이었다. 몽글몽글 구름처럼 예쁜 슈에, 마카데미아 밀크로 만든 커스터드 크림을 넣어서 산처럼 쌓고, 그 위에 파우더 슈거를 뿌렸다. 


슈크림은 내가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디저트였다. 


1970년대 초반, 어머니는 작은 전기 오븐을 할부로 구입하셨다. 그런 거 보면 내가 뭐든 새로운 것을 배우려 겁 없이 덤비는 것이 바로 어머니를 닮아서가 아닐까 싶다. 오븐 구입하며 배운 요리 강습을 통해 만들어주신 슈크림은 당시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아주 고급스러운 간식이었다. 몇 번이나 그걸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 꿈같은 맛을 두고두고 기억했다. 


유일하게 찾은 과거의 사진


그리고 아이 키우면서 몇 번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더 예쁘게 만든다고 백조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걸 이제 내 딸이 내게 해주었다. 몽글몽글 쌓아 올린 슈크림이 너무나 고급스럽고 예뻤다.




생일 파티는 근사하게 끝났다. 


디저트 후에는 생일 선물을 받는 자리가 다시 준비되었고, 가족끼리 웃음꽃이 피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생일이 축제가 되는 것, 딸은 그것을 엄마에게 주고 싶었고, 그래서 한동안 우리 셋 이만 하던 잔치를 모두의 잔치로 이끌었다. 



음식 사진마다 등장했던 생일 선물 집게는 바로 이 음식 잔치의 서막이었다. 이렇게 준비하기 위해 구입한 집게를 생일 선물을 슬쩍 끼워 넣음으로써 음식 준비가 어떻게 될지를 재미나게 예고했던 것이었다. 


큰딸은 직접 만든 도자기 컵을 선물했고, 시누이는 예술가에게 구입한 은 진주 귀고리를 선물했다. 둘째 아들은 재미난 카드를 직접 그려왔다. 미리 선물을 건네준 친구도 있고,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 아직 못 본 친구들도 있다.


생일이 되어 나이를 또 한 살 먹는다는 것이 꼭 그렇게 신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날들 중에 어떤 날들을 선택해서 축제를 만들 수 있고, 태어났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아주 행운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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