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21. 2024

캐릭터 눈사람을 만들다

Catsburrow의 The Snowman 팬아트

지난 수요일 밤, 폭설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밤부터 눈이 내릴 거라는 말에 남편은 은근히 들떠 있었다. 한밤에 나가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걷는 것은 정말 낭만적이고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열두 시 넘어 동네를 깔깔 거리며 다니고 누워서 스노우 에인젤을 만들던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그러나 일기예보와 달리, 열두 시가 넘도록 창밖은 고요하기만 했다. 눈이 올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 자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눈이 내리면 깨우라는 농담 어린 말을 끝으로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말 밤새 눈이 많이 와서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데크 문을 열고 나갔더니 이미 30cm는 쌓인 모양새였고,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종일 온다고 했다.


부엉이 집도 눈으로 덮였다


1월이 되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나면 바깥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모두 거둬내는 게 보통이지만, 남편은 눈을 기다리며 크리스마스 라이트를 모두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눈에 파묻힌 불이 알록달록 모양을 과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화단의 대부분이 눈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그 둘레의 크리스마스 라이트도 함께 묻혔다.


밖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고, 모든 학교들에 휴교령이 내렸다. 당장 둘이 놀러 나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오전에 영상수업이 있었다. 이 수업은 눈이 와도 휴교할 수 없지 않겠는가! 결국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나왔더니 남편은 눈을 치우고 있었다.


데크 화분 위에 눈이 높이 쌓였고, 남편은 계단을 치우고 있었다


나는 눈꽃 빙수를 만들겠다며 팥을 씻어 앉히며 부지런을 떨었다. 그리고 압력솥의 추가 내려가는 동안 우리 부부는 밖으로 나갔다. 이런 날은 반드시 산책을 해야 한다. 거리는 눈을 치울 엄두가 안 날 만큼 눈이 쌓여있었고, 여전히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동네는 산타마을 같았다. 걸으면 정강이까지 발이 푹푹 빠졌다. 



원래 우리 동네는 관리사무소에서 골목길 눈을 치워주는 곳이지만, 점심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눈은 쌓이고만 있었다. 그것은 큰길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우리 동네를 상징하는 거대한 나무들이 눈을 뒤집어쓴 채, 마치 하드 아이스크림처럼 보였다. 차는 거의 다니지 않았고,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은 집 앞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눈을 뭉쳐보았다. 나갈 때만 해도 뭉치지 않던 눈이 작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눈덩이를 굴렸다.


굴리기 시작하자 눈덩이가 제법 커졌다. 그렇게 몸통도 만들고, 얼굴도 만들었다.  남편이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서 팔을 꽂았다. 눈은 팥알을 사용했는데, 코를 만들 당근이 집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귤껍질을 까서 돌돌 말아서 코를 만들었더니 좀 짧은 코가 되었다.



완성! 


이렇게 해서 얼굴 작은 캐릭터 눈사람이 탄생했다. 왜 이렇게 얼굴이 작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이 눈사람이 바로 우리 딸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팬아트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랑 많이 비슷한가?


그리고 요건 스포일러!!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서, 완성된 눈사람에도 계속 눈이 쌓이고 있었다. 


24시간 동안 내린 최대치 눈 기록을 갱신한 이 날, 우리는 이러고 놀았다! 그리고 남편이 말했다. 딸한테 로열티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상을 빕스처럼 집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